달마이야기·이규행

11. 도견왕의 참회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5:33

 

 

도견왕의 참회

스님께서 이토록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견왕의 사과를 받은 바라제는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제왕이 승려에게 머리 숙여 잘못을 비는 경우란 흔치 않은 일이기에 더욱 지극하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예가 지나치십니다.”
그러나 도견왕은 막무가내였다.

“내가 덕이 모자라 큰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부디 스님께서 불법의 요체를 일러 주시어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십시오!”바라제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에 걸린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무성한 대나무숲을 비추고 있었다. 바라제는 그런 풍광과 촛불에 비치는 도견왕의 얼굴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대왕께 제가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지요. 우리가 모시는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생에 대차국(大車國) 국왕의 셋째 아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국왕께서 세 왕자를 데리고 산골짜기로 놀이를 나갔더랍니다. 그 곳엔 호랑이 한 마리가 새끼를 일곱 마리나 낳고 나서 이레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해 앙상하게 뼈가 보일 정도로 말라서 헐떡이고 있더랍니다. 그런 광경을 본 첫째 왕자는 호랑이가 배고픔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새끼라도 잡아먹을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둘째 왕자는 굶주린 호랑이를 구해 주긴 해야겠는데 도와 줄 방법이 없다고 한탄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셋째 왕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버지와 형들이 한참을 앞서 갔는데도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서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생령은 다만 자기 몸만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대자대비란 그런 것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남을 돕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고 몸마저 내놓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 왕자는 큰 서원을 세운 듯 굶주린 호랑이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옷을 다 벗은 맨몸이 되어 호랑이 앞에 엎드려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고 합니다. ‘나는 법계중생을 위하여 무상의 보리를 구하려고 뜻을 세웠도다. 큰 자비심을 일으켰지만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니 이제 마땅히 범부의 몸을 버리려 한다.’ 셋째 왕자는 호랑이가 잡아먹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는 왕자의 장엄한 행동에 놀랐는지 한 발짝도 움직이질 못했습니다. 왕자는 호랑이가 너무 굶어서 기력이 쇠잔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 여기고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 호랑이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던져 먹이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왕자는 옆에 있는 대나무를 꺾어 죽창을 만들어 자신의 목을 찔렀습니다. 목에서 피가 흘러나오자 비로소 호랑이는 그것을 혀로 핥기 시작했습니다. 피 맛을 본 호랑이는 거침없이 왕자의 몸을 다 먹어 치웠고 왕자는 뼈만 남게 되었답니다. 이 때 하늘에선 꽃송이가 비처럼 쏟아지고 대지가 진동했답니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놀란 국왕과 두 왕자가 되돌아와서 보니 호랑이 주위로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뼈만 이리저리 흩어져 있더랍니다. 국왕과 두 왕자는 너무나 슬퍼 한없이 통곡하며 유골을 수습한 뒤 탑을 세우고 공양했답니다. 셋째 왕자의 남을 위해 자기를 버리는 이런 정신이 바로 불교가 지향하는 보시(布施)의 전범(典範)인 것입니다. 이러한 보시야말로 최고 경지의 보시이며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생사고해(生死苦海)를 넘어서 불성(佛性)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도견왕은 바라제가 들려준 고사에서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셋째 왕자는 귀하신 분인데도 불구하고 조금도 교만하지 않았고 하찮은 짐승조차 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구제하려고 자기 몸을 던지지 않았는가. 그러한 숭고한 정신과 행위에 비추어 볼 때, 내가 지금까지 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단 말인가.

도견왕은 생각할수록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지난날을 사죄하는 뜻에서도 삼보(三寶)를 진심으로 받들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는 바라제에게 몸을 굽혀 몇 번이나 절을 하며 말했다. “스님께서 이토록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여쭈어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느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계시는지요?”바라제는 도견왕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흐뭇해 했다. 그러나 도견왕을 올바로 교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보리달마 말고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바라제는 한참을 뜸 들이더니 나직하게 대답했다.

“제가 지금 모시고 있는 스승은 바로 대왕숙(大王叔)이신 보리달마이십니다.”도견왕은 보리달마의 이름을 듣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치 얼이라도 나간 듯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제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천학비재한 몸으로 욕되게 왕위를 계승하고 삿된 것을 좇아 바른 것을 내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존경하는 대조사이신 숙부조차도 잊고 있었으니 이보다 죄가 더 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청컨대 스님께서는 이 불경스런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왕숙께 말씀드려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어느 곳에 계신지, 당장 왕숙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좋습니다. 대왕의 청을 받아들이지요. 이것도 다 인연이 아닙니까.”바라제가 말을 마치자 한 줄기 바람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구름이 일고 안개가 피어 올랐다. 그 속으로 바라제는 몸을 날려 표표히 사라졌다.

도견왕은 무엇에 홀린 듯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바라제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예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도견왕은 정신을 가다듬어 칠흑같이 어두운 사방을 돌아보았다. 밤의 고요함이 몸 속으로 스며들어 마음까지 숙연해졌다. 거듭 반성하는 속내가 그의 등줄기 구석구석에서 땀방울로 흘러내렸다. 바라제는 청봉산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때마침 보리달마는 여러 제자들과 함께 예불을 끝마친 상태였다. 바라제는 기쁜 얼굴로 보고했다.

“도견왕이 사신을 보내서 성조(聖祖)를 모셔가기로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보리달마는 흐뭇해하면서 치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도견왕이 비속한 인간이 아닌 것은 누구보다도 보리달마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있는 사람을 만나 심요(心要)의 강설을 들으면 다시 삼보(三寶)를 숭배하고 불교를 빛내는 길에 들어서리라고 확신했었다.

보리달마가 바라제와 함께 뭇 제자들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려고 할 때 멀리 산 아래서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바라제가 말했다.

“벌써 사신들이 당도한 것 같습니다. 조사께서는 준비를 서두르시지요.”보리달마는 제자들이 말하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자신이 절을 비운 동안의 모든 일을 바라제에게 맡기며 꼭 해야 할 일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보리달마는 사신들의 안내를 받으며 왕궁을 향해 떠났다. 도견왕은 왕궁 10리 밖까지 향을 피워 보리달마를 영접했다. 도견왕은 새삼스럽게 숙부인 대조사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보리달마의 얼굴은 밝게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표정은 장엄했고 걸음걸이는 느린 듯싶었으나 장중했다. 온 몸에선 성스런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도견왕은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숙부는 진정한 활불(活佛)이시구나!’
도견왕은 땅에 꿇어 엎드려 눈물을 흩뿌렸다. 자기의 잘못을 빌면서 숙부께 참회의 기도를 올릴 것을 다짐했다.

보리달마는 두 손으로 도견왕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담담히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조카는 진심으로 참회하시오?”
“제가 어찌 실없는 소리를 감히 겉치레로 할 수 있겠습니까?”
도견왕은 몸을 굽혀 절하면서 대답했다.

“그럼, 좋소이다!”
보리달마는 웃음을 거두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일찍이 부처님이 한 비구(比丘)에게 이렇게 말한 일이 있습니다. ‘스스로, 나의 법대로 참회하는 자는 곧 많은 보탬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계율을 범한 사람이 참회하는 길을 제시해 준 것입니다.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려면 우선 그 마음을 깨끗이 하고 생각을 거두어 고요히 해야 하며,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엄숙하고도 공손한 태도를 보여야 함은 물론이고 안으로 참회하는 마음이 가득하고 밖으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드러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보리심을 발하여 일체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이 모두 해탈하도록 서원하는 그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이밖에 여법(如法)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잘못을 고백하며 중생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죄업이 사라지고 과거의 잘못이 녹아 없어져서 심령이 정화되는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이 훈계를 듣는 순간 도견왕은 전날 밤 쫓아버린 종승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를 모욕하며 내친 것이 못내 마음 아팠다. 자기도 모르게 참회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보리달마에게 말했다.

“숙부님의 훈계를 어리석은 조카는 삼가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제가 깊은 참회와 함께 또 한 가지 용서를 빌 일이 있습니다. 숙부께서도 짐작하시겠지만 종승 대사를 내쫓은 일이 있는데 그 대사를 불러 와서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숙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보리달마는 엷은 웃음을 입가에 보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견왕은 즉시 신하들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그대들은 속히 총림(叢林)으로 가서 종승 대사를 찾아 모셔와라.”
이때 신하 한 사람이 꿇어 엎드려 아뢰었다.

“삼가 아뢰옵니다. 신이 듣건대 종승 대사는 왕궁에서 쫓겨난 뒤 절벽에서 투신하여 이미 죽었다고 합니다.”“악!”
그 소리를 들은 도견왕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비명을 질렀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그 죄값을 무엇으로 치러야 한단 말인가. 그는 황급하게 보리달마에게 자문을 구했다.

“종승 대사의 죽음은 모두 저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저의 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는지 여쭙고 싶습니다!”보리달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카는 너무 놀라지 마시오. 소문은 종승이 죽은 것으로 나 있지만 내가 짐작하건대 그는 아직 죽지 않았소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산 속의 암자에서 쉬고 있는 것이 분명하오. 지금이라도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 보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를 불러 오는 것은 별 문제 없을 것이오. 왕명에 따라 곧 올 것으로 믿소이다.”도견왕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보리달마를 궁성 안 후궁으로 안내하여 조용히 쉬도록 모셨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속히 종승을 찾아 오라고 명했다. 비록 대조사의 말씀이긴 했지만 신하들은 당혹스러웠다. 종승은 과연 살았는가, 죽었는가? 살아 있다면 지금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