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취산 대법회
각지에서 몰려온 승려들로 안팎이 꽉 찼다
보리달마가 법단으로 올라갔다
세속을 초탈한 佛祖답게
온몸에서 기품이 풍겨나왔다
달마선법의 핵심은 벽관(壁觀)과 좌선(坐禪)으로 집약된다. 벽관은 벽을 향해 앉는, 이른바 면벽(面壁) 수행법을 말한다. 그러나 벽관은 단지 면벽하는 행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수행자의 마음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벽같이 되지 않고선 진정한 벽관이랄 수 없다. 나아가서 벽관은 마음과 벽이 하나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안심(安心)을 찾을 수 있는 법이다.
벽관에서의 관(觀)은 물론 견(見)과는 뜻을 달리한다. 견이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을 뜻하는 데 반해 관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벽관은 마음의 눈으로 벽을 본다는 뜻이 된다. 벽을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벽관은 내가 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벽이 나를 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달마선법의 좌선은 흔히 결가부좌의 앉음세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보리달마가 스승인 반야다라에게서 전수받은 좌법은 이른바 궤좌법이었다. 좌선에서는 결가부좌를 하든 궤좌를 하든 지켜야 할 두 가지의 원칙이 있다. 첫째는 앉음세 자체가 피라미드처럼 중심이 바르게 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좌선할 때 반쯤 감은 눈은 코끝을 보게 하고 코는 다시 마음을 보게 함으로써 마음이 고요함으로 들어 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마음의 눈으로 본다
보리달마는 천축 즉 인도에 있을 때 이미 세 차례나 벽관수행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벽관수행을 통해 밖으로는 모든 인연을 끊고 안으로는 마음을 밝고 깨끗하게 닦음으로써 옥처럼 티가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도견왕의 병을 고쳐 주기 위해 보리달마는 줄곧 왕궁에 머물렀다. 이 날도 내전에서 참선을 끝내고 나오는데 숙직하던 스님이 합장하며 아뢰었다.
“영취산(靈鷲山)에서 곧 대법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대조사께서도 참석하시는지요?”달마는 며칠 있으면 2월 8일날 큰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께서 출가한 날인 동시에 세존께서 염화시중(拈華示衆)하여 가섭에게 법을 전한 날인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천축 불교계는 오랜 전통에 따라 10년에 한 번씩 영취산에서 큰 법회를 열어 왔다. 이날 불교계의 여러 종문과 종파의 스님들은 모두 영취산에 모여 법을 논하는 자리를 갖는다. 각 종문과 종파가 교의(敎義)와 법지(法旨)를 교류하고, 그 이치를 밝히는 데서 의의를 찾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석가모니가 출가한 날과 세존이 전법(傳法)한 날을 함께 기념해 왔던 것이다.
세존께서 염화미소로 가섭에게 전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진법(眞法)을 이어받은 보리달마가 어찌 이런 법회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이번 법회는 스승 반야다라로부터 법통을 이어받은 뒤 갖게 되는 최초의 행사이기도 했다.
2월 8일. 드디어 10년만에 열리는 영취산 대법회가 시작되었다. 영산정사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승려들로 안팎이 꽉 찼다. 법단 앞은 물론이고 정원 구석까지도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러나 질서정연했다. 모두가 차분하게 열 번의 종소리가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영산정사는 영취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었다. 정사 주변으론 오래된 전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정사로 향하는 길목 양 옆엔 역대 조사(祖師)들의 부조 석상이 세워져 있고 정사의 우측엔 종루(鍾樓)가 우뚝 솟아 있었다. 종루 사방의 여덟 군데 모서리에는 풍경이 걸려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땡그랑거리며 산 속의 운치를 자아냈다. 정사 중앙에 위치한 법단의 문 위에 걸려있는 영산법계(靈山法界)라는 네 글자의 금박 편액이 유난히 돋보였다.
“댕! 댕! 댕! ….”
장엄하면서도 맑은 종소리가 드디어 10번 울렸다. 10년만의 모임을 상징하는 10번의 종소리와 함께 붉은 가사를 몸에 걸친 보리달마가 손에 염주를 굴리면서 법단으로 올라갔다. 참석자들의 눈길은 일제히 달마에게 쏠렸다. 과연 세속을 초탈한 대조사답게 비범한 기운이 온몸에서 풍겨 나왔다.
한데 일부 참석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 곳에 모인 승려들이 모두 보리달마를 숭앙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인 듯싶었다. 사실 달마가 내세운 대승선(大乘禪)을 인정하지 않고 반대하는 고승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보리달마는 그런 반대를 극복하고 인화(人和)를 통해 선법을 널리 선양하는 것이 그가 해야할 일이라고 여겼다.
냉정을 잃지 않는 달마
법단에 좌정한 달마는 도도하게 흐르는 대하(大河)처럼 선종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설파했다. 수 천명의 승려들은 설법의 한 구절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달마선법의 클라이맥스는 입세수행(入世修行)과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참뜻을 말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법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쪽 구석에서 갑자기 “닥치시오!”하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리가 들려온 쪽에서 회색 가사를 입고 검은 색 신을 신은 대화상(大和尙)이 벌떡 일어나더니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달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당신이 말하는 입세수행과 견성성불은 이단의 사설에 속하는 것이오. 그런 설법은 걷어 치우시오. 우리가 수행하는데 꼭 입세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소. 그리고 꼭 입세해야만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소.”대화상은 자못 강경하게 힐문했다. 그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어났다.
“당신의 설법은 불문(佛門)을 더럽혔소. 이게 석가모니 부처님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그러나 보리달마는 이런 상황에서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태연자약했다. 그는 손에 쥔 염주를 굴리며 ‘아미타불!’을 외쳤다. 그런 다음 다시 설법을 계속했다.
“여러분이 이 곳에 모인 것은 각기 자기의 의견을 펼쳐서 부처님의 법륜(法輪)을 빛내고 넓히기 위해서 입니다. 빈승이 비록 선종의 가르침을 말하고는 있지만 여러 동문에 대해서 한 번도 천박하게 여기거나 경멸한 적이 없고, 더욱이 억지로 남을 설복하려고 한 적도 없소이다. 지금 천축의 불교계에는 여러 종파가 함께 존재하고 있으며 각 종파가 서로 격려하며 절차탁마(切磋琢磨)하고 있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바이오. 각 종파의 가르침과 방법에 비록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목적은 하나로 일치될 것이라고 믿고 있소이다. 모든 중생을 고해(苦海)에서 구해 내고자 하는 목적 말이외다.”“옳은 말씀이오.”
“참 훌륭하신 말씀이오.”
여기저기서 칭찬과 찬탄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란을 피우던 승려들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머쓱해서 침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그들이 어찌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자기 종파의 승려들을 선동하여 큰 소리로 외쳐대기 시작했다.
“석가모니 부처께서 전하신 법은 한 가지의 일문일종(一門一宗) 뿐이다. 어찌 너희같이 불법을 왜곡해서 별도로 선종을 세우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마땅히 법문(法門)에서 축출해야 한다. 다시는 사도(邪道)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달마를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세력들이 우르르 법단 앞으로 몰려들었다. 법단 주변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달마를 추대하고 숭앙하는 승려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계속해서 “업보로다, 업보로다”하며 탄식해 마지않을 뿐이었다.
그러나 보리달마는 냉정을 잃지 않고 의연했다. 석가모니 부처의 옛날 규율을 철저하게 받들어 온 승려들은 그가 어느 종파에 속해 있든 간에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더군다나 얼핏 독창적이라 여겨질 수도 있는 선견(禪見)의 사상(思想)을 억지로 받아들이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천축 불교계의 폐단으로 지적되어 온 종파의 분쟁이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6대 종문을 설득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승려들의 소란은 수그러들기는커녕 점점 커져만 갔다. 심지어는 보리달마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할 기세까지 보였다. 그의 머리엔 문득 스승인 반야다라 조사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조사로부터 이어받은 하나(一)의 진법이 동쪽 땅에서 무르익게 될 연고때문에 오늘날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만약 동녘 진단(震旦)에서 진정으로 불법이 꽃피고 그것이 되돌아와 천축에 영향을 주게 되는 날이면 종파와 파벌의 다툼도 없어지고 하나로 통일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웃으면서 대답했다
보리달마는 천축에서의 인연이 잠시 끊어질 수밖에 없음을 절감했다. 그는 법단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무리들을 향해 합장한 채 “아미타불. 잘들 하는 짓이오. 잘들 하는 짓이오”하고 탄식했다. 그리고 법단을 내려온 다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가 없소이다. 바라건대, 여러 대화상들께서 알아서 이 모임을 원만하게 진행하여 주기를 부탁하는 바이오. 빈승은 이만 작별 인사를 해야겠소이다.”보리달마는 몸을 돌려 훌쩍 나가 버렸다. 소란에 앞장 섰던 승려들은 더욱 기세 등등했다. 달마의 속마음은 모른 채 이치에 몰려 도망가는 것이라고 여겼다. 과격한 몇몇 승려는 달마의 앞을 가로막고 노기 띤 목소리로 힐난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오늘의 모임인 영산논불(靈山論佛)에서 아직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는데 어째서 스스로 패하여 물러가는 것이오?”달마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오늘의 영산논불은 불교 각계가 의견을 교류하여 서로 깨우치자는 데 뜻이 있는 것이지 결코 자웅을 겨루어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느냐를 정하는 그런 모임은 아니지 않소.”“당신은 오늘의 모임이 끝나기도 전에 도중에서 법단을 떠나 우리를 모욕하고 있소.”승려들은 노기를 뿜으며 달마의 코앞까지 대들었다. 달마는 한 발 물러서며 대답했다.
“법단에서 내가 불법을 말할 때 조금도 불손한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런 소리를 하시오. 오히려 내가 무시당하는 느낌이오.”달마가 부드럽게 대하자 승려들도 차츰 기세가 꺾이는 듯싶었다. 승려 가운데 한 사람이 나서서 물었다.
“이렇게 가시다니…, 이제 어디로 가려고 하시오?”
“빈승은 인연이 동쪽 땅 진단에 있어 그곳으로 가려 하오.”
출처:붓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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