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15. 동녘으로 출발하다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5:46

 

 

동녘으로 출발하다

달마의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날까’
환송나온 사람들을 향해 합장

비록 동녘 땅 진단으로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달마의 심정은 편치 않았다. 조카 도견왕의 간곡한 말과 행동에 새삼 혈육이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더군다나 남천축에서 태어나 이 곳의 물을 마시고 이 곳의 곡식을 먹고 자란 터에 어찌 향토에 대한 일말의 애정조차 없을 수 있겠는가.

도견왕은 기왕 떠나기로 한 숙부를 위해 정성을 기울여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그러나 그냥 떠나시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내관에게 종이와 붓, 먹과 벼루를 갖고 오라고 명했다. 숙부께 가르침의 글을 한 수 남겨 주실 것을 간청했다. 달마는 흔쾌히 청을 받아들였다.

도견왕은 친히 먹을 갈았다. 방 안 가득 묵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달마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살며시 눈을 감았다. 이윽고 눈을 뜬 그는 승복을 걷고 힘차게 붓을 잡았다. 일필휘지로 ‘계정혜(戒定慧)’라는 세 글자를 써 내려갔다.

“이른바 계(戒)는 그릇된 것과 악을 방지하여 일종의 평안함과 상서로움 그리고 조화로움의 생활을 지키는 것이고, 정(定)은 마음이 깨끗하여 어떤 환경 아래서도 마음의 평정을 지키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또한 혜(慧)라는 것은 진리를 실증하여 의혹이 없음이니, 여러 경계에 대한 감수(感受)와 이해 능력을 단련하는 것입니다.”도견왕은 마치 생동하는 불과(佛果)를 듣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더욱 밝아지고 눈이 더욱 맑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흥분과 감사의 마음에 휘감겨 숙부 앞에 부복했다.

“좋은 글 영원히 간직하겠나이다. 날이 저물었으니 숙부께서는 이제 그만 편히 쉬시지요. 내일 떠나시는 데 차질이 없도록 모든 준비를 하겠습니다. 되도록 큰배를 준비하게 할 것입니다. 저도 여러 신하들을 데리고 바닷가까지 전송하도록 하겠습니다.”달마가 합장을 하며 읍을 했다.

“조카를 너무 수고스럽게 하는군요. 아미타불!”

드디어 새벽이 밝았다. 멀리 수평선 너머로 우유빛이 감돌았다. 그 우유빛은 순식간에 분홍의 둥근 원으로 변하여 빛을 발산한다. 금빛 찬란한 햇살이 바다의 수증기를 뿜어 올리며 붉게 타올랐다. 파도는 마치 합창하듯 고요를 깨트린다. 바닷가에 정박해 있는 한 척의 나무배는 햇빛과 파도의 합창을 감상이나 하듯 율동을 거듭한다. 배 안에는 벌써 말린 과일과 병(餠)이 가득 실려 있었다. 큰 물통마다 깨끗한 식수가 채워졌다. 이제 수척 길이의 돛만 올리면 떠날 준비가 모두 끝나는 셈이다.

이윽고 아침의 정적을 깨고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달마와 국왕 일행이 바닷가 목선 앞에 도착했다. 왕숙을 동쪽으로 떠나보내는 준비 못지않게 의식도 대단했다. 왕과 태자뿐만 아니라 대소신료들도 모두 관모를 쓰고 화려한 관복 차림으로 전송 의식을 장중하게 치렀다. 보리달마는 배에 오르기에 앞서 도견왕과 신하들에게 인사말을 했다.

“국왕과 여러 대신들께서 이렇게 멀리까지 나와 소승을 배웅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소. 이제 그만 돌아가시지요.”도견왕은 갑자기 마음이 뭉클하여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숙부님께서 이번에 가시는 저 바닷길은 광대하고 풍랑 또한 거셉니다. 각별히 몸조심하십시오.”중신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면서 입을 모았다.

“조사님 가시는 길에 내내 평안하시기를 간절히 비옵니다.”
절을 끝내고도 도견왕은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그때 갑자기 바다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마치 포효하듯 파도가 모래사장을 덮쳤다. 바닷가 바위에 묶여 있던 목선의 밧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풀렸다. 미처 달마가 배에 오르기도 전에 목선은 파도를 따라 바다로 미끄러져 나갔다.

“큰일났다!”
도견왕이 놀라서 소리쳤다.

“빨리, 빨리 밧줄을 잡아라!”
대소신료들은 몸을 돌보지 않고 밧줄을 잡으려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신하 한 사람이 겨우 밧줄의 끝자락을 잡는 데 성공했다.

이런 광경을 보며 달마는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이 얼마나 착한 조카고, 이 얼마나 훌륭한 대신들인가! 또, 얼마나 착한 백성들인가!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달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합장하며 말했다.

“여러분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디 몸 건강히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소승은 이만 떠나겠습니다.”보리달마는 껑충 몸을 날려 배에 올랐다. 파도에 밀려 요동치는 배에 사뿐히 내려서는 달마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전송하던 모든 사람이 새삼 혀를 내둘렀다. “정말 예사로운 어른이 아니시다.”
“살아있는 부처님이 틀림없으시다.”

달마는 배에 오르기가 무섭게 돛을 한껏 펼쳤다. 돛에 한껏 바람을 받은 목선은 쏜살같이 바다 한가운데로 미끄러져 갔다. 목선은 어느새 해안에서 멀리 떨어졌다. 배웅 나왔던 도견왕과 여러 신료들의 모습이 마치 한 점 그림자처럼 희미해져 갔다. 망망대해 위의 일엽편주라고 했던가. 목선은 바람에 밀리고 파도에 흔들리면서 흘러 흘러 동녘 땅 진단을 향해 나아갔다. 아직 갈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보이는 것은 오직 수평선뿐이었다. 그 수평선은 영원히 끝이 없는 듯싶었다. 배는 서남풍에 실려 계속 해 뜨는 방향으로 전진해 갔다. 그러나 바다의 해류는 일정치가 않았다. 때로는 역류(逆流)를 타 하루 종일 항해했는데도 제자리에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거대한 파도는 마치 높은 산의 절벽처럼 목선을 때리기도 했다. 이럴 땐 배가 파선 직전까지 몰리기 일쑤였다. 광풍에 돛이 갈기갈기 찢기고 돛대마저 부러질 지경에 이른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달마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두려워하거나 조급해 하지도 않았다. 오랜 세월에 걸친 면벽과 참선을 통해 달마는 이미 모든 것을 초탈해 있었다. 곧은 성품과 조용한 마음은 모든 어려움을 이기는 바탕을 이루었다.

폭풍이 몰아쳐 오고 거센 파도가 배를 덮쳐도 달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달마 자신이 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바다가 고삐 풀린 야수처럼 언제든지 배를 삼킬 수 있다는 것을 달마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비록 달마는 해탈을 얻게 되겠지만 동토에 가서 법을 펴고 선종을 빛내는 일은 영원히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하지만 달마는 믿음이 확고했고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침착하게 물길을 살피면서 육지에 상륙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꼼꼼하게 검토했다. 그는 해 뜰 무렵이면 언제나 선실 안 나무 판벽에 금을 그었다. 항해의 일정과 시간 계산을 위해서였다. 식량과 식수의 절약에 특히 신경을 썼다. 때로는 며칠씩 단식을 하기도 했다. 달마의 단식법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좌정하고 조식을 올바로 하면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이게 된다. 이 침을 일컬어 금진옥액(金津玉液)이라고 하기도 하고, 감로수(甘露水)라고 하기도 한다. 이 침을 입 안에서 호흡에 버무려 단전으로 내리면 조금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

바다위에서 어언 일 년의 세월이 흘렀다. 도견왕이 준비해 준 마른 음식과 열매 그리고 대나무통에 저장해 둔 식수는 아직도 반 이상이나 남아 있었다. 그만치 달마의 계획은 치밀했다. 달마는 앞날의 광명과 희망을 꿰뚫어 내다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고생과 고통은 행복과 즐거움으로 승화되고 있었다.

겨울과 여름이 어느덧 세 번이나 바뀌었다. 이 날도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달마는 선미(船尾)에 앉아 한 손으론 방향타를 잡고 한 손은 돛을 올리는 밧줄을 꼭 쥐고 있었다. 파도의 물벼락에 휩쓸려 달마의 온몸은 흠뻑 젖어 처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달마는 애써 배의 균형을 유지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럴 때마다 배는 파도에 놀아나듯 곤두박질쳤다. 이 바람에 달마는 몇 번이고 바다 속으로 던져질 뻔했다.

달마가 뱃길을 떠난 후 이번처럼 호된 시련을 겪은 일은 일찍이 없었다. 악천후는 기세가 사그라지기는커녕 점점 드세졌다. 바위덩이같은 달마의 마음도 잠시 흔들렸다. 일말의 불안과 초조가 그를 허둥대게 했다. 그러나 달마는 곧 마음을 집중했다. 방향타를 꼭 쥐고 바다 한가운데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다행스럽게도 바람이 조금 약해지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달마는 성난 파도 때문에 잃어버린 방향감각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언제 그랬냐싶게 햇빛이 내리 쪼였다. 달마는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을 등지고 동쪽으로 방향타를 잡았다.

그러나 밤이 되자 날씨는 더욱 더 무섭게 표변했다. 빗줄기는 계속 굵어지고 바람 또한 더욱 거세졌다. 밤은 마치 악마처럼 검었다. 갑자기 태산같은 파도가 밀려왔다. 배는 순식간에 파도 속에 자취를 감췄다. 큰 돛대는 우지끈 소리를 내며 두 동강이가 나고, 방향타마저 온데간데없었다. 배는 균형을 잃고 파도에 말려 회돌이쳤다. 침착하고 용의주도한 달마조차도 대처할 겨를이 없었다.

달마는 어떻게 해서든 밧줄을 잡고 배의 나무판에 자기 몸을 묶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한 무더기의 파도가 다시 한 번 배를 강타하자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배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고 달마의 몸통이 파도에 실려 날아갔다. 실로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달마는 시커먼 파도 속에서 분명히 죽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끝장이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아미타불!”
달마는 계속 “아미타불!”을 입 속에서 부르짖었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여기서 죽음을 맞이하여 곧 극락세계로 가서 왕생정토(往生淨土)하게 될 것을 염원하기 위함이다.

이른바 극락세계란 즉 ‘정토’를 일컫는 것이다. ‘아미타경’에서 말하기를 “서쪽으로 불토 십만억을 지나면 한 세계가 있는데 그 이름이 극락이며 그 땅에 부처가 있어 아미타불이라 칭한다”고 했다. 그리고 극락세계의 아름답고 신묘한 경치를 묘사해 놓았다. 또한 아미타불을 믿고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거나 관상(觀想) 혹은 염불(念佛)하면 죽음 뒤에 부처의 원력과 감응으로 왕생정토되어 “여러 선인들과 한 자리에 모여 지낼 수 있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정토는 함부로 왕생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 세상에 남아 업보를 더 치러내야 하는 것인지 파도는 달마를 삼키지 않았다. 거센 파도에 실려 달마의 육신은 갈색의 암초 위에 던져졌다. 달마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