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17. 법성사(法性寺)에 주석하다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5:49

 

 




(17) 법성사(法性寺)에 주석하다

“천축 조사님을 환영합니다 아미타불”

“기다리던 보람이 있었구나
이렇게 그분이 오시다니
절문 활짝 열어 환영하도록…”

광주는 장안(長安)에 버금간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다. 뒤로는 산이 마치 병풍처럼 감싸고 앞은 바다가 탁 트인 그런 곳이다. 기후는 일 년 내내 온화하여 식량 걱정이 없고, 시가지는 꽃으로 뒤덮여 사계절이 늘 향기로 가득했다. 풍수지리상으로도 보배로운 땅으로 이름난 곳이었다. 게다가 절들이 숲처럼 늘어서 있어 독경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달마가 광주 성문 안을 들어섰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뒤였다. 등불로 밝혀진 광주의 시가지는 화려함이 한결 돋보였다. 뭇 사람들로 번잡한 밤거리였지만 달마의 모습이 워낙 이채로워 금방 사람들 눈에 띄었다. 시커먼 눈썹에 왕방울 같이 생긴 눈에다 기골이 장대한 불골선풍(佛骨仙風)의 이방인을 사람들이 놓칠 까닭이 없었다. 달마의 주변엔 삽시간에 구경꾼들이 들끓었다. 이 사람이 바로 천축의 28대 조사인 보리달마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소식은 지체없이 광주 관아로 전해졌고 자사(刺史)인 소앙(蕭昻)에게도 보고되었다.

자사 소앙은 매우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그는 천축의 불교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조예가 깊었다. 향지국의 셋째 왕자인 보리달마에 얽힌 세세한 일화까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큰스님이 멀리 바다를 건너 양성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들은 그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했다. 넓고 넓은 저 바다를 건너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왔을까. 날개를 가진 새라도 오기 힘든 거리인데 그것을 건너온 것을 보면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불법을 체득한 조사가 틀림없을 것 같았다. 그는 생각이 이에 미치자 마음이 급했다. 즉각 영을 내려 달마를 관아로 모셔 오게 했고, 주요 관원들을 대동하고 문 밖까지 나가 직접 영접했다. 그리고 달마 조사를 성 안에서 가장 유명한 법성사(法性寺)로 모시도록 했다.

법성사는 양성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절 문은 서쪽을 향해 있고, 누런 담장에 푸른 기와가 잘 어울렸다. 날아갈 듯한 처마 밑에는, 세로로 ‘법성사’란 주련이 걸려 있었다. 오래 전에 천축의 고승 법다라(法多羅)가 쓴 글씨라고 하는데 방금 쓴 것처럼 생기가 감돌았다.

대웅보전은 금빛과 푸른빛으로 휘황찬란했다. 대웅전은 벽 전체에 향나무 가루와 옻을 섞어서 만든 특수 도료(塗料)가 발라져 있었다. 게다가 대들보와 기둥도 모두 향단목을 써서 대웅전 안이 온통 향나무의 그윽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곳에 쓰인 향단목은 백 년 이상된 거목들로 금은보다도 값지다고 회자되었다.

절 안에는 수십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꾸불꾸불한 구곡(九曲)의 회랑(回廊)이 규모의 장엄함을 돋보이게 했다. 절 한 구석에는 종고루(鐘鼓樓)가 높이 솟아 위엄을 뽐냈다. 이 누각 안의 청동종은 무게가 엄청났다.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북도 둘레가 두 자가 넘었다. 새벽에는 종을 치고 저녁엔 북을 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 소리는 양성의 성 안 뿐만 아니라 주변 백 리 밖까지 울려 퍼졌다.

법성사의 주지는 학덕 높기로 이름난 광지(廣智) 법사였다.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전국에서 스님들이 몰려들었다. 법성사는 건강(建康)의 동태사(同泰寺), 보화산(寶華山)의 융창사(隆昌寺), 천태산(天台山)의 광조사(廣照寺), 낙양(洛陽)의 백마사(白馬寺)와 함께 중국 5대 사찰의 반열에 들었다.

법성사의 종고루에서 저녁 북소리가 울린 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다. 절 안은 어둠의 심연(深淵)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광지 법사의 방은 노란 커튼이 드리워졌고 촛불과 단향의 가는 연기가 어울려 춤을 추었다. 주지 스님은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동안(童顔)인 스님은 눈을 감은 채 합장하고 입 속으로 경전을 외우는 것 같았다. 지극한 나이를 나타내듯 머리엔 희끗희끗 학(鶴) 같은 기상이 엿보였고 흰 눈썹은 인자한 마음씨를 드러내는 듯했다.

주지 스님의 방문이 반쯤 열리면서 젊은 스님이 광지 법사 옆으로 조심스레 다가왔다. 큰절로 예를 갖춘 다음 나지막이 고했다.

“주지 스님께 아룁니다. 관아에서 큰스님 한 분을 모시고 오셨습니다.”일단 말을 마친 젊은 스님은 한쪽 구석으로 물러갔다. 분부가 있을 때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절 안의 법도였다. 그러나 광지 법사는 아무 소리도 못 들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경전 외우기에 빠져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젊은 스님은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대로 한참을 기다렸다. 거의 반 시각이나 흐른 듯싶었다. 그대로 기다리다간 자칫 낭패를 볼까 두려웠다. 젊은 스님은 다시 주지 스님 옆으로 가서 절을 한 다음 아뢰었다.

“양성 자사 소대인의 서찰도 있습니다.”
두 손으로 서찰을 받들어 올렸다. 그제야 광지 주지는 두 눈을 살며시 뜨면서 서찰을 받았다. 서찰을 촛불에 비춰 읽어 내려가던 주지의 얼굴에 갑자기 경련 같은 것이 일었다. 무엇 때문인지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제 정신이 아닌 듯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바로 그 분이란 말인가?”
젊은 스님은 일찍이 주지가 그토록 놀라는 것을 본 일이 없었다. 어쩔 줄 몰라서 황급하게 말했다.

“천축에서 온 큰스님이라고 들었습니다.”
경련을 일으키던 주지의 얼굴이 환희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웃음 머금은 눈으로 젊은 스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가 기다리던 보람이 있었구나…. 이렇게 그 분이 오시다니. 절 문을 활짝 열어 천축의 달마 조사를 크게 환영하도록 하라.”달마 조사라는 소리에 젊은 스님도 기절초풍할 뻔했다. 비로소 이 밤중에 관아에서 군졸들이 호위하여 모셔 온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젊은 스님은 자책하는 마음을 떨칠 길이 없었다. 공부하는 처지에 있는 몸으로 조사를 직접 보고도 조사인줄 몰랐다는 것은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눈은 있으되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을 갖고서 어떻게 수행승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스님은 정신 없이 이곳 저곳 선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이 사실을 알렸다. 북과 종을 함께 치고 향을 올리고 폭죽을 터트리게 했다. 최대의 예를 갖추어 천축의 달마 조사를 맞을 차비에 부산했다.

한밤중의 정적을 깨고 절 안팎은 순식간에 물 끓듯 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분주함에 속사정을 잘 모르는 사미승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부산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모든 준비가 끝났다. 또 한 차례 북과 종소리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이어 절 문이 활짝 열렸다. 광지 주지는 모든 중들을 대동하고 ‘八’자형으로 열 지은 다음 엎드려 일제히 소리 높여 인사했다.

“천축 조사님을 환영합니다. 아미타불.”
오랜 시간을 절 문 밖에서 기다리던 달마 조사는 문이 열리자 주저하지 않고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모든 스님들은 예외 없이 달마의 모습을 훔쳐보기에 바빴다. 달마의 쑥대머리, 땟국으로 얼룩진 얼굴, 걸레 같은 홑겹의 옷. 게다가 맨발인 모습에 모두들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꾀죄죄한 스님이 천축의 28대 조사란 말인가?그러나 광지 주지의 혜안(慧眼)과 지혜는 남달랐다. 그는 알고 있었다. 사람은 외모로 보아서는 알 수 없고 물은 말로 잴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달마가 비록 남루한 몰골을 하고 있지만 그의 눈매에서 산천의 수려함을 읽었고, 그의 가슴에 천기가 숨어 있는 것을 느꼈다. 광지 법사는 승려들의 앞줄에서 한 걸음 나와 큰절을 다시 올리면서 아뢰었다.

“소승은 법성사 주지 광지입니다. 성조님께 삼가 인사 올립니다. 아미타불.”달마는 ‘광지’라는 이름으로 인사하는 주지에게 눈길을 보냈다. 광지의 넓은 이마와 붉은 얼굴빛으로 미루어 법중용상(法中龍像)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답례로 합장하면서 말했다.

“광지, 광지, 광지라…. 선한 일을 광대하게 맺고 지혜를 깊숙이 품고 있는 이름이로다. 주지께서 이렇게 지나친 예를 갖추니 이 늙은이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일어나세요.”달마는 손을 내밀어 광지를 일으켜 세웠다. 이어서 엎드려 있던 스님들을 차례로 한 사람씩 일으켰다.

달마의 말소리는 정중하면서도 진주알이 구르는 소리 같았다. 모든 스님들은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그 목소리에 새삼 놀랐다. 겉모양을 보고 잠시나마 달마를 멸시했던 스님들은 얼굴이 뜨거웠다. 범태(凡胎)이기에 잘못 본 것을 깨달은 스님들은 다시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조사께서 자비를 베푸소서. 아미타불.”
달마는 스님들의 마음 속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 합장으로 회배하며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엎드린 스님들을 일일이 일어나게 했다. 스님들은 달마 조사가 이미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기에 더욱 몸둘 바를 몰라 했다.

그 날 밤 달마는 주지의 배려로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늦은 저녁 공양을 마쳤다. 달마가 안내된 정사(精舍)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달마는 한동안 법성사에 머물러 있을 작정이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참선과 독경, 강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달마가 온 뒤로 절 안의 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불조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승려가 잠시도 나태하지 않고 불지(佛旨) 연구에 전념했다.

보리달마가 법성사에 주석하고 있다는 소식은 날개 단 듯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유명 사찰의 고승 강백은 말할 것도 없고 고관과 귀인 그리고 거부 거상(巨富巨商)에, 일반 백성들까지 끊임없이 찾아들었다. 조용하던 법성사는 양성의 시가지 마냥 번잡스럽게 되었다. 법성사의 살림도 덩달아 풍족해졌지만 이런 광경을 바라보는 달마의 마음은 개운하지가 않았다. 달마는 이런 것으로 중생을 널리 제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달마는 광지 법사에게 중생을 광도(廣度)하는 방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그의 의견을 좇아 우선 법성사 안에 경단(經壇)을 높이 쌓아올리고 법회를 갖기로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광범위하게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광지 법사는 지체하지 않고 주부(州府)에 경단 설치를 신청했다. 이 신청을 받고 누구보다도 반가워한 사람은 자사 소앙이었다. 그는 벌써부터 불조의 법요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의 광주에는 법회를 공개해서 하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법성사에 찾아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자사의 처지에선 오히려 겸양해 오던 터였다. 이미 봄철도 무르익어 얼마 있으면 4월 초파일이 된다. 이 날을 이 곳에선 욕불절(浴佛節)이라고 불렀다. 자사 소앙은 이 날을 잡아 법회를 갖도록 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