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19. 양 무제의 조서(詔書)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8:21

 

 

조사로부터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가

삼년동안 고생하며
바다를 건너온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양 무제는 무승 철타의 충성심에 크게 만족했다. 자기를 위해선 암기를 써서라도 신명을 바치겠다는 말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옳아, 옳은 생각이야. 짐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것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자비라고 할 수 있도다.”철타는 무제의 과분한 칭찬에 몸둘 바를 몰라 했다. 무제는 철타에게 암기 시범을 명령했다. 철타는 여러 가지 암기를 신기(神技)에 가까울 정도로 훌륭하게 시연(示演)했다. 비도를 던지는가 싶더니 어느 틈에 비전을 던지고, 이어 눈 깜짝할 사이에 비표를 던지는 솜씨가 보는 이의 얼을 빼놓았다. “고수야, 과연 고수야.”
무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대 같은 무승을 호위로 삼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야.”
시간은 훌쩍 정오가 되었다.

무제는 이쯤 해서 궁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막 문지방을 넘는 순간 이상한 기운이 참례전을 감도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무제는 눈을 비비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햇빛이 눈이 시리도록 밝게 비치고 있었고 정원에선 흰빛이 참례전 주위를 휘감고 있었다. 마치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듯 흰빛이 나선형으로 휘감기면서 상승하더니 이내 북쪽으로 사라졌다.

무제는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각아, 법광아. 실로 보기 드문 광경이도다.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구나….”시신(侍臣) 정각과 법광도 정원에서 서광이 상승하는 것을 감지했지만 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황제의 물음에 대답을 찾기 위해 아지랑이 같은 기운의 흐름을 눈여겨보았다. 참례전 꼭대기에서 맴돌던 상서로운 기운은 자금전(紫金殿) 상공을 감도는 듯하더니 북쪽으로 사라졌다. 참례전은 황제가 예불하는 곳이고 자금전 또한 황제가 머무는 곳이니 이것은 길조가 분명한 것 같았다. 정각은 몸을 굽혀 두 손 모아 대답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저 빛은 구름을 뚫고 내려와 황궁을 휘감고 승천하니 길조가 틀림없습니다. 훌륭한 귀인께서 찾아오실 예조가 아닌가 싶습니다.”법광도 역시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말했다.

“저는 생전에 이런 서기(瑞氣)어린 천상(天象)을 본 일이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반드시 큰 복을 얻으실 것입니다.”

참례전 휘감은 흰빛

무제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도다. 이것은 이 나라의 축복이로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정각과 법광은 한 목소리로 축송했다.

무제는 다시 고개를 들어 서기의 방향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미 그 빛은 허공에 사라져 흔적도 찾기 어려웠다.

왜 흰빛이 내궁을 감돌고 북쪽으로 갔을까? 무제의 머리에 박힌 의문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막 이런 물음을 두 시신에게 하려고 할 때 무승 철타가 급한 걸음으로 황제 앞에 나서더니 종이 한 장을 올렸다.

“폐하께 삼가 아룁니다. 지방에서 급한 상소문이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무제는 영문을 몰랐지만 상소문을 받아 들고 읽어 내려갔다. 무제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눈꼬리에 웃음이 일기 시작했다. 천축에서 큰 스님이 오시다니 좀 전의 천상은 그것을 예고한 길조인 듯싶었다.

무제는 광주 자사 소앙이 올린 상소문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다. 상소문에는 천축의 28대 조사인 보리달마가 동쪽으로 건너와 양성에 머물면서 홍법한 경위가 상세히 쓰여 있었다. 아울러 무제께서 달마를 금릉으로 초청하여 만백성을 위한 법회를 크게 열도록 주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무제는 참례전 정원에서 목격한 신비한 빛과 보리달마가 천축에서 왔다는 소식을 연관지어 이것은 하늘의 계시라고 여겼다. 조금도 머뭇거릴 까닭이 없었다. 즉시 궁궐로 돌아가 용상에 앉더니 묵과 종이를 가져오게 하여 친필로 조서(詔書)를 써 내려갔다.

삼가, 천축 28대조 보리달마 선사께 청합니다. 짐은 삼보를 존숭(尊崇)하고 불교에 귀의하여 항상 대승의 법을 펼쳐 정법(正法)을 호지(護持)하고자 했습니다. 조사께서 멀리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오시어 심오한 불법을 자상하게 가르치시고 불교를 널리 펼치시어 어리석은 이들을 계도하시니 승속(僧俗)이 모두 흠모하고 우러르고 있나이다. 생각건대 이는 이 나라의 큰 행운이라고 하겠습니다. 도성(都城)과 조야(朝野)가 모두 조사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수많은 대중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주 자사가 주청한 대로 조사를 모시어 공업(功業)을 함께 이루고자 합니다. 청컨대 곧 출발하시어 하루속히 경도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천축에서 오신 큰스님

무제가 조서를 내렸다는 소식으로 경도 금릉은 금새 술렁거렸다. 게다가 궁성 안에서 환한 빛이 감돌았다는 소문은 날개를 단 듯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천축의 달마 대사가 이 땅에 큰 복을 내리기 위해 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 기뻐했다.

무제가 조서를 내려 달마를 초청했다는 소식은 재빠르게 양성으로 전해졌다. 법성사에도 알려져 광지 주지와 달마 조사의 귀에도 들어왔다. 무제가 불교를 숭상하고 있다는 사실에 달마는 진작부터 마음 속으로 은근히 기대가 컸었다. 이 곳 양성 광주가 비록 불교로 번창하고 있긴 하지만 넓은 진단의 한 모퉁이에 불과하지 않는가. 만약 왕도로 들어가 불법을 편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욱 크게 퍼질 것이고 세세 대대토록 밝게 드러나 천하의 모든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렇게 되면 천축에서 십 년 면벽하고 삼 년 동안 고생하며 바다를 건너온 것이 결코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달마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깊은 명상에 들어갔다.

이 날 저녁. 법성사 안은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승려들뿐만 아니라 속가의 불제자들도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황제가 달마 조사에게 조서를 내렸다는 소문에 모두 안절부절못했다. 한편 기쁘기도 했지만 큰 스승을 떠나 보낼 일을 생각하면 섭섭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저녁예불이 끝났는데도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법당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달마 조사는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광지 주지는 불상 앞에 향을 계속 피우고 등에 기름을 채우라고 당직 스님에게 이르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광지 주지는 옷을 벗고 침상에 누웠다. 그러나 두 눈을 감고 있어도 좀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 무제의 부름을 받고 달마 조사가 금릉으로 떠날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새삼 만감이 교차했다. 사실 달마 조사가 이 곳에 온 것은 그로서는 일생일대의 큰 복이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조사로부터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가. 게다가 조사가 온 이래로 법성사가 흥창한 것은 얼마라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광지는 그 동안 조사의 심요(心要)를 깊이 이해하여, 널리 중생을 제도하고 하루속히 정과(正果)를 이루어야겠다고 서원했다. 그러나 이제 조사가 떠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그의 나이 이미 고희(古稀)가 넘었기 때문에 또다시 조사를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광지는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답답한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마치고 조사가 머무르는 유화선실(流花禪室)로 갈 채비를 했다. 달마 조사 앞에서 가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터놓고 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방문을 나서려고 할 때 동자승이 달려와 아뢰었다.

“자사 소대인께서 조정의 어사(御使)와 함께 이미 절 안에 당도하셨답니다. 주지 스님께 만나기를 청하십니다.”광지 주지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소대인과 조정의 어사가 너무 빨리 당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물쭈물하고 있을 형편도 못되었다. 소앙과 어사가 벌써 출입문을 들어서고 있는 것이었다.

주지는 황망히 두 손을 합장하며 예를 표했다.

“소대인께서 오신 것을 미처 모르고 마중 나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소앙은 답례하면서 말했다.

“주지께 여쭙겠습니다. 달마 조사께서는 일어나셨는지요?”
“조사께서는 아침저녁으로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면서 엄격하게 계를 지키고 계십니다. 이 시간에는 당연히 일어나 계실 겁니다. 지금쯤이면 아침 공부를 하시고 계실 시간입니다.”주지 광지는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좋소. 우리 함께 찾아뵙도록 합시다.”
소앙은 바로 옆에 서 있는 어사를 주지에게 소개하면서 말했다.

“달마 조사를 도성으로 모시라는 황제 폐하의 조서를 갖고 오신 분입니다.”“네. 네. 알겠습니다. 조사가 계신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광지 주지는 앞장 서서 유화선실로 향했다. 유화선실은 절 뒤편 유화산 아래에 특별히 지어진 곳이다. 작은 개울이 선실 잎을 흐르고 개울 위엔 나무다리가 놓여 있었다. 선실은 다리를 건너야만 갈 수 있는데 다리에 이르는 길 양쪽으론 꽃밭이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다.

주지가 말했다.

“여기가 바로 달마 조사께서 계시는 유화선실입니다.”
자사 소앙과 어사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선실 문은 꽉 닫혀있고 창문만 약간 열려 있었다. 안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람의 인기척이라곤 느낄 수조차 없었다.

소앙과 어사가 망설이자 주지가 말했다.

“조사께서는 이미 입정에 드신 듯싶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방 안에서 마치 종소리 같은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밖에 오신 손님들은 들어오시지오.”
그러나 광지 주지는 감히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몸을 굽혀 아뢰었다.

이제 조사가 떠나면…

“조사님, 자사 소대인과 조정 어사께서 뵙고자 합니다. 황제 폐하의 조서도 와 있습니다.”선실의 문이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열렸다. 달마가 문고리를 제치며 맞으러 나왔다.

광지 주지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면서 고개를 조아리며 합장했다. 자사 소앙도 몸을 굽혀서 읍했다.

“제가 세속의 업무 때문에 바빠서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죄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함께 온 어사도 예를 갖추었다. 달마는 합장으로 답례하면서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황제께서 조서를 내려 노납을 부르신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소앙은 황급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