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18. 법성사의 욕불절(浴佛節) 성회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5:51

 

 

법성사의 욕불절(浴佛節) 성회

눈빛에 빨려드는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사람공부가 먼저입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릴줄 알아야”



자사 소앙은 고을마다 관첩(官帖)을 내렸다. 법성사에서 열리는 달마 조사의 대법회에 될수록 많은 사람이 참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때맞춰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참선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 소앙의 일념이었다.

법성사의 욕불절 성회는 그야말로 장관(壯觀)이었다. 절 안팎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등이 내걸렸고 오색으로 채색된 띠가 사방 팔방에 펄럭거렸다. 소식을 듣고 곳곳에서 찾아온 스님들로 절 안엔 머물 곳조차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수많은 대중들까지 몰려들었으니 법성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절 경내엔 천 명이 넘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지만 이미 빈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돌로 높이 쌓아올린 강경대에는 제단이 설치되고 그 위엔 커다란 구리향로가 놓여 있었다. 향로에선 세 줄기 향불이 실같이 피어 올랐다. 제단 앞 연화보좌엔 노란색 방석이 깔려 있었다. 이윽고 달마 조사가 그 자리에 앉았다. 굵은 눈썹, 날이 우뚝 선 코, 노인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우람한 체격은 만장을 압도했다. 달마 조사는 오늘 따라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손에는 검은색 염주를 쥐고 있었다. 강경대에서 좌중을 둘러보는 그의 눈에선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는 그 눈빛에 빨려드는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달마는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대중들을 둘러보면서 합장했다. 이 땅에서 최초로 펼치는 대규모 법회이기에 분위기는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찍이 석가모니께서 지혜의 횃불을 높이 들어 길 잃은 중생을 구하고 우주를 밝혀 준 이치를 달마 조사는 숨돌릴 사이도 없이 설파했다. 나아가서 오늘날의 불교가 여러 갈래의 종파로 나뉘어 분쟁하는 실상을 지적하고 진정으로 정(淨)과 오(悟)를 숭상한다면 그럴 수 없는 일이라고 꾸짖었다.

달마는 많은 예화(例話)를 들면서 구슬을 굴리듯 선종의 법요를 강론했다. 어떻게 입정(入定)에 들어가고, 어떻게 깨달음을 얻으며, 어떻게 마음을 비워 모든 장애로부터 벗어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끊을 수 있는지를 가슴에 와 닿게 설명했다. 천여 명이 넘는 청중들은 숙연했다. 감격과 존경의 눈빛이 일제히 달마 조사의 몸에 꽂혔다. 한바탕 강론이 끝나자 청중들은 약속이나 한 듯 머리 숙이며 소리 높여 외쳤다. “조사님, 조사님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대중들의 외침소리가 한참 동안 절 경내에 메아리쳤다. 달마 조사는 미소 머금은 얼굴로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조사의 강론이 시작되었다.

“여러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데 있어서 사람 공부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맹목적으로 숭배할 수는 없습니다. 설사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그 진가(眞假)를 가릴 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는 전언(傳言)에 휘둘릴 까닭이 없습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그는 힘주어 말하면서 맞은편의 흰 벽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러분 보십시오. 눈처럼 깨끗한 벽이 아닙니까. 마치 거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그림자도 비춰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그림자를 보려면 우선 이 벽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바른 자세로 앉아서 조용히 사고해야 합니다. 오로지 조용한 생각만이 자신의 그림자를 정확히 보게 하고, 그래야만 비로소 도를 깨닫아 부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달마 조사의 설법은 듣는 이의 살갗을 파고 들어갔다. 목소리가 살갗에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몸 속을 관통하는 것이었다. 말씀과 소리의 현묘함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일찍이 이처럼 생동감 있는 선 공부를 한 적이 없었기에 청중들 사이에선 더할 수 없는 감동이 물결쳤다.

달마 조사 옆에 앉아 있던 광지 법사는 크게 뉘우쳤다. 젊은 시절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와 계를 받은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 동안 고행도 하고 가부장좌(長坐)도 했지만 자기가 해 온 일은 부처님의 힘을 빌어 인간 세상의 고해(苦海)에서 자신만을 구하려고 했던 게 고작이었다. 안으로는 부처님을 찾지 않고 내재적인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았는데 어찌 공덕을 원만히 쌓을 수 있으며 득도할 수 있단 말인가. 비록 몸은 속세의 풍진을 벗어났다고 할지라도 마음 속의 풍진은 속세에 있는 것이나 진배없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광지 법사는 면벽 정려(靜慮)하는 것만이 진정 수선(修禪)하는 길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자사 소앙과 관원 일행들도 달마 조사의 설법에 감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두 깊은 명상에 빠져 움직일 줄 몰랐다. 달마는 설법을 마무리 지으면서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참선이나 예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법(心法)이오. 만약 그 심지를 열지 못하고 단지 외계(外界)의 주입(注入)에만 의지하면 모순만 낳게 되고 영원히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 것이오. 오로지 몸으로 이행하고 마음에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오.”대법회가 끝난 뒤 자사 소앙은 특별히 달마 조사를 찾아뵙고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신심이 깊다는 것과 그 곳으로 모시도록 장계를 올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달마는 이미 양 무제에 관해서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앙의 뜻에 적극 동의했다. 자사 소앙은 지체하지 않고 제도(帝都)인 금릉(金陵)으로 파발을 띄웠다.

때는 양 무제 대통원년(大通元年), 즉 단기 2860년 서기 527년이었다. 4월의 어느 날 금릉의 황궁 내원(內苑)에선 새로 지어진 참례전(參禮殿)의 준공식이 열렸다. 참례전은 양 무제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참선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양 무제는 이 곳에서 하늘과 통하고 부처의 경지에 이르기를 소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궁전 안의 어떤 건물보다도 크고 위엄 있게 지었다. 건물의 기상이 하늘에 닿게 하려는 듯 높이는 백 척이나 되었고 전각은 사방이 삼십여 길이나 되었다. 건물 안에는 거대한 석가모니 불상이 안치되었다. 자비스런 기운을 발산하는 불상의 양쪽 옆으론 십이지(十二支) 제신이 조각되었다. 그리고 벽면엔 불교경전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재현해 놓았다. 입구엔 참례당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천장엔 용과 봉황의 그림이 보기 좋게 어울렸다. 무제가 참선하는 곳을 상징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무제는 이 건물을 건립하기 위해 엄청난 공사비를 투입했다. 요즘 말로 하면 거의 국고를 탕진했다시피 했다. 그러나 무제는 부처님을 받드는 정성과 위의(威儀)를 표시하기 위해 어떤 대가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양 무제의 이름은 소연(蕭衍)이고 자(字)는 숙달(叔達). 남남능(南濫陵) 즉 오늘날의 강소성(江蘇省) 상주서북(常州西北) 사람이다. 제(齊)나라 옹주(雍州) 주둔 장군으로 있을 때 내란을 틈타 군사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국호를 양으로 바꾸고 무제라고 자칭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불교를 믿고 펴는 데 앞장섰다. 일찍이 세 번이나 동태사(同泰寺)에 출가했을 정도로 불연 또한 깊었다.

이 날도 양 무제는 조회를 끝내자마자 서둘러 참례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좌시(左侍) 벼슬의 정각(正覺)과 우시(右侍)인 법광(法光)이 뒤따랐다.

무제가 참례전으로 막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바람 가르는 소리가 안에서 들려 왔다. 그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정각과 법광 두 사람의 시신(侍臣)은 임금이 갑자기 놀라는 바람에 크게 당황했다. 얼른 몸을 날려 뛰어들어가려고 했다. 무제는 두 손으로 그들을 제지했다. 그리고 눈짓으로 전각 안을 살펴보라고 시늉했다. 안에선 젊은 스님이 혼자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빠른 속도로 도는 팽이처럼 왼쪽으로 굴렀다가 오른쪽으로 날곤 했다. 그때마다 바람소리가 “쌩쌩”하고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무제는 이 젊은 스님이 누구인줄 곧 알아차렸다. 동태사에서 불러온 무승(武僧) 철타(鐵咤)였다. 무술이 뛰어난 이 스님은 아침 단련에 여념이 없었다. 한참 동안 지켜보던 무제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훌륭하다, 훌륭해. 정말 놀랍도다.”
철타는 전각 밖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자 무술 연마를 즉각 멈추고 땅에 엎드려 인사했다.

“소승, 황제 폐하께서 행차하신 줄도 모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벌을 내려주시옵소서.”무제는 만면에 웃음 띈 얼굴로 말했다.

“어서 일어나시오. 내가 알리지도 않고 왔는데 무슨 죄가 될 수 있겠소. 그대가 이렇게 전력을 다해 무공을 연마하니 정말 가상한 일이오.”철타는 얼른 일어나서 한쪽으로 물러가 읍 하는 자세로 섰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황제에 대한 결례가 마음에 걸린듯 사죄의 뜻을 거듭 아뢰었다.

“소승, 아직도 공력이 부족하여 폐하께서 오시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무제는 그 소리에 크게 웃으며 흡족해 했다.

“내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무얼 그렇게 신경을 쓰나? 한데 아까 몸을 날리면서 무엇인가 던지는 동작을 하던데 그건 무슨 무공인가?”철타는 두 손을 모아 절하면서 대답했다.

“폐하께 감히 아뢰겠습니다. 소승이 연마한 것은 암기(暗器)를 쓰는 것이었습니다.”“암기가 무엇이란 말인가?”
“암기란 몸에 몰래 지니고 다니는 일종의 무기입니다. 예를 들면 비탄(飛彈) 비도(飛刀) 비표(飛 ) 비석(飛石)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은 무술의 기교와 힘이 부족할 때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쌍방의 무술 실력이 비슷하여 적을 이길 수 없을 때 상대방의 방어를 뚫고 승리하기 위해선 암기이상 가는 것이 없습니다.”무제는 박장대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은 이제서야 암기가 무엇인지 알겠네. 앞에서 오는 창은 쉽게 피할 수 있지만 등 뒤에서 쏘는 화살은 피할 수 없는 법이 아닌가. 암기는 바로 등 뒤에서 쏘는 화살 같은 것이 구먼.”“그렇습니다.”
철타는 또다시 몸을 굽혀 절하면서 말했다.

“무장(武場)에서 이런 암기를 사용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엔 그다지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군자가 취할 일도 못 됩니다. 그러나 소승은 이런 암기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써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연마를 거듭하는 것입니다. 만일 황제 폐하께서 위험에 빠지신다면 소승은 신명을 바쳐서 모든 수단을 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