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스님

부처님 오신 날의 기쁨

通達無我法者 2008. 11. 25. 19:54

 

 

부처님 오신 날의 기쁨

글· 광덕 큰스님

2002년 5월호


불자 형제 여러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 새 봄날에 광덕큰스님의 법음을 전할까 합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우리 부모님들이 정말 마음껏 푸른 하늘을 제 가슴에 안고 활기 있게 큰 꿈을 실현해 가는 그러한 자랑스런 어린이가 되도록 염원하시고 밤낮으로 또한 돕고 계실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희망을 심어주고 긍지를 심어주고 자부심을 심어줘야겠다는 것입니다.

옷 사주고 재미있는 데 놀러 보내주고 그렇게 해서 활기 있게 키우는 것도 중요한 교육요건이고 교육행위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역시 불자 집안에 있어서는 커가는 아이들한테 정말 밝은 태양을 안겨주고 푸른 하늘이 가슴에 가리워지지 않도록 항상 키워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 형제들의 가정에 모든 아이들이 정말 밝게 정말 크게 정말 싱싱하고 바르게 되기를 특별히 관심가져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들에게 긍지와 희망을


무엇보다도 우리 불자 어린이들이 마음속에서 다지는 것이 있어야겠으며 이것을 우리 부모님들께서도 이해하고 그런 방향으로 키워야겠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희망과 밝음, 큰 긍지와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불자, 부처님의 은혜를 받아 진리에서 났다. 나는 죄에서 왔거나 불행에서 왔거나 어둠에서 온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은혜를 받아서 부처님의 은혜에서 오고 부처님의 진리에서 온 생명이다. 나는 불자다”하는 자랑스런 긍지와 희망을 가슴속에 먼저 심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앞날에는 무궁한 발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 앞날에 빛나고 있는 밝은 희망과 평온을 심어줘야겠습니다.

그 전에 한때 로마 카톨릭에서 연구하여 발표한 미래 문제에 대해서 1900년도 금세기 20세기 말년에 가서는 거의 우리 삶의 여건들이 대량 파괴를 입어서 살기 어렵다 하는 어둡고 비관적인 보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마는 사실 불행과 어둠을 품고 있어서는 우리 앞날에 불행과 어둠을 막기가 힘들 것입니다.

밖이 아무리 어둡더라도 자신 속에 태양을 머금고 있는 한 어둠은 내 가슴을 어둡게 하지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앞날에는 무궁한 발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빛나는 평온을 아이들한테 깊이 의식, 무의식 중에 심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슬기로운 부처님 나라의 역군이니 우리 나라의 평화와 통일과 그리고 세계의 번영은 장차 우리가 맡아서 한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그런 희망과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줘야겠습니다. 이 굳건한 희망과 긍지와 자부심이 있는 한 어떤 어려움도 어떤 주변의 거치른 유혹에도, 어떠한 때묻는 환경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씩씩하게 굴하지 않게 커 갈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없으면 어둠과 타협하고 혼란 속에 함께 맞아 들어가서 자주적인 자기 세계를 잊을 염려가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 되시는 여러 형제들께서도 아이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겠지마는 더 밝은 어린이, 더 굳센 어린이, 희망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나가는 어린이들이 되도록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어떨까 하고 마침 어린이날이 다가오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씀을 드립니다.


어둠 속에 빛으로 오신 부처님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 동안 우리 형제들이 전법을 통해서 혹은 법등 활동을 통해서 부처님 오신날의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시느라고 많이 정진하고 계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또 최근에는 다들 이곳에 모이셔서 연꽃잎을 비비고 연등을 만들고 정말 깊은 정진을 해주시느라고 다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부디 부처님 오신 날을 계기로 정말 부처님이 오신 기쁨을 온 이웃에 전해주는 것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이웃에게 부처님 오신 기쁨을 전해주며 또 우리의 환경이 부처님의 오심을 맞이하는 그런 기쁜 환경이 되도록 서로 힘써야 하겠습니다.

열반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마는, 부처님의 탄신은 어두운 밤중에 횃불을 들고 나타나신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말 고난과 불행과 어둠 속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범부 중생 앞에 부처님은 진리의 횃불을 들고 나타나시어서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주시고, 우리의 재능과 능력을 열어주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마당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외롭고 대립된 존재가 아닌 참으로 따뜻하고 화목하고 서로 엉겨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부처님은 보여 주셨습니다.

부처님이 오셨다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진리에 어두운, 사는 길에 어두운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참으로 우리 생명을 값있게 키울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신 빛으로 오셨다는 점을 우리가 생각한다면 이 기쁨은 우리들 가슴속에서 먼저 받아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 주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으로 하여금 값있는 인생, 능력있는 인생, 그리고 희망과 큰 꿈을 성취시킬 수 있는 행복한 인생이라는 것을 전해주어야 하겠고, 서로가 한 형제이고 한 이웃이고 한 핏줄이라고 하는 따뜻한 신뢰와 우정과 존중과 협동이 행해지도록 우리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부처님 오신 기쁨을 전하자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면서 모든 생활과 모두의 만남이 기쁨을 전해주는 그리고 우리 이웃, 우리 시대가 보다 밝아지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불자, 우리 불광 형제들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통해서 부처님의 법을 전해서 부처님의 법이 이 땅에 머묾으로써 우리가 지혜스러워지고 우리가 밝아지고 우리 환경이 빛나진다고 하는 이러한 구체적인 것을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밝아지고 기뻐지고 성취해가고, 우리 집안의 환경이 밝아지고 기뻐지고 성취해가고, 우리 사회가 밝아지고 기뻐지도록 행동을 함으로써 그렇게 해서 증거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의 법이 있어서 이 나라 이 땅이 밝아지고 평화해집니다. 대립 갈등하고 있는 이 땅이 평화와 화합과 존중과 협동의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서로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즈음하여 우리 불자가 오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는 존재의 이유를 보여주고, 존재 사실을 증거해주는 그런 불자의 행동이 있는 불자가 되어야겠다는 것을 다시 생각합니다.


영원한 현재의 부처님


부처님은 아시다시피 정법계신 즉 진리의 몸이십니다. 법 자체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이 둘이 있을 수 없고 진리가 둘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둘이 계실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한 부처님일 뿐입니다. 다만 이름이 여러 가지 있을 뿐입니다. 아미타불, 약사여래, 보승여래 등등 수많은 부처님이 있어도 그것은 때와 사람에 맞춰서 중생에게 보이신 모습일지언정 그것은 겉 거짓된 모습입니다. 그 근원인 즉슨 오직 부처님이 있을 뿐입니다. 법이신 부처님이 있을 뿐입니다.

이 부처님께서 대비이신 고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온갖 방편으로 나투셔서 수많은 과거 역사 속에서 중생에게 몸을 바치고 혹은 깨닫게 하시느라고 수고하신 과거 일들이 나타나고, 그 사이에는 어느 부처님도 계시고, 또 연등부처님도 계시어서 어떠 어떠한 사람에게 “미래에 성불해서 너는 석가모니불이라고 하리라” 할 정도로 수기를 주시는 일도 벌어지지만 그러한 연등불조차도 근원인 즉슨 석가모니불입니다.

진리가 둘이 없고 부처님은 진리이고 법이신 까닭에 오직 한 부처님이 있을 따름입니다. 부처님께서 대자비인 까닭에 수많은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이해가 될 때, 부처님이 나시고 부처님이 멸도에 드시고 하신 것이 다 무엇인가. 원래는 나고 멸함이 없는 완전한 그리고 영원한 현재로서의 부처님뿐입니다. 달리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심이 없고 가심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원한 현재의 부처님, 영원히 자비한 부처님, 이 부처님을 모르는 까닭에 이 부처님이 모두의 생명의 뿌리인 것을 모르는 까닭에 알게 하기 위해서 그들이 보고, 그들이 알 수 있는 거리 속에, 알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시려니까 오시는 것이 있고 가시는 것이 있고 그 가운데에 수행도 있고 설법도 있고 열반의 모습도 거기 있는 것입니다.


중생교화를 위한 방편시현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여러 부처님이 나오지만 그 가운데 칠불에 대한 얘기가 부처님 역사 가운데 등장하는 과거 부처님 명호라고 보아집니다. 제일 비바시불(毘婆尸佛), 제이 시기불(尸棄佛), 제삼 비사부불(毘舍浮佛), 제사 구루손불(拘留孫佛), 제오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제육 가섭불(迦葉佛), 제칠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이 부처님들조차도 하나의 진리가 부처님이라고 생각할 때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시현이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은 명확하게 법화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도솔천에 호명보살로 나시기 전에 가섭불 부처님의 회상에 머무셨고, 거기서 지내시면서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고 끊임없이 수행을 닦으시다가 도솔천에 나셨습니다. 이 도솔천은 욕계천의 한 하늘입니다. 우리 마음상태에 상황하는 이 국토 인간세계, 이 지구가 이렇게 나타나 보이지만 우리 마음상태가 바뀌어 버리면 바뀐 세계가 또 나타나는 것입니다.

보다 밝고, 보다 착하고, 보다 안정된 마음상태를 가지고 있을 때, 인간보다 초월한 마음상태를 가지고 있을 때 초월한 세계가 나타나며 그 초월한 세계가 천상조직입니다. 그러니까 천상에도 정도의 차이에 따라서 여러 가지 차별이 있는데 욕계라고 해서 근본적으로 탐욕심과 같은 욕심이 뿌리가 되어 있는 중생, 그 욕심이 담박하고 욕심이 적고 그 욕심이 자기 중심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는 그러한 좋은 마음,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많은 사람들이 천상에 태어나며 천상에도 그에 따라서 차별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욕심이 심할 때는 인간 이하의 축생도 되고 또 욕심이 담박하면 천상도 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도솔천은 인간계를 중심으로 하면 인간보다 가까운 천상은 사왕천이라 하고, 그보다 위는 도리천이라 하고, 그 위는 야마천, 그 위가 도솔천, 그 위가 화락천, 또 그 위가 타화자재천, 욕계육천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4천이 도솔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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