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이야기·지묵스님

조주 “노화상께서 내 질문에 대답을 못하네”/지묵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12. 11. 21:09

 

 

조주 “노화상께서 내 질문에 대답을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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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좌 “본인 스스로가 깨우치지 못했을 뿐”

스승 남전스님이 선방에 올라가시자 조주스님이 여쭈었다. “스님, 밝음이 맞습니까? 어둠이 맞습니까?” 남전스님이 그냥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다.

조주스님이 선방에서 나오면서 말하였다. “노화상께서 나의 한 질문에 대답을 못하시나 보네!” 이때 수좌 스님이 일렀다. “스님, 노화상의 묵언을 탓하지 마십시오. 상좌 본인 스스로가 깨우치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조주스님이 수좌 스님을 장군죽비로 내려치면서 말하였다. “차라리 이 장군죽비는 당두(堂頭)의 늙은이(남전스님)에게 가야 하는 것을!”

강설 명두합(明頭合) 암두합(暗頭合)은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말이다.

밝음이 맞는가? 어둠이 맞는가?

사족을 달아본다. 소위 사타화(四打話) 법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1. 밝음이 오면 밝음으로 친다.

2. 어둠이 오면 어둠으로 친다.

3. 사면팔방에서 오면 회오리바람으로 친다.

4. 허공에서 오면 도리깨로 친다.

임제스님과 동시대의 선승인 보화(普化)스님의 법문이다. 보화스님은 연극을 멋지게 하고 떠난 교화 방편의 달인이라고나 할까? 보화스님은 선종의 하나인 보화종(普化宗)의 종조이다. 육조(六祖)-남악(南岳)-마조(馬祖)-반산(盤山)-보화(普化)의 법맥을 이룬다.

보화스님이 한때 절 밖으로 나와 시정거리를 누비고 다닐 때였다. “밝음이 오면 밝음으로 치고, 어둠이 오면 어둠으로 치고, 사면팔방에서 오면 회오리바람으로 치고, 허공에서 오면 도리깨로 칠 것이다!” 사타화를 노래 가락으로 외치고 한 손에 든 요령을 짤랑짤랑 흔들었다. 보화스님이 기인 행적을 연출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눈푸른 임제스님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자기 자신은 부주인공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였으니 그 뜻은 대자비심에 있다.

임제스님이 보화스님을 점검해 보려고 시자를 시켰다. “떡 하니 다가가서 다짜고짜 멱살을 잡으란 말이야! 그리고는 이렇게 물어. 아무 것도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화스님은 이 순간을 당하여 시자를 밀어내고 말하였다. “내일 대비원(大悲院) 절에 대중공양이나 하러 가야지!”

이 소식을 전해들은 임제스님이 찬탄하며 말하였다. “아차, 여태까지 이 어르신을 의심해 왔는데!”

임제스님에게 방장 자리를 내어주고는 보화스님은 이렇게 미친 사람 흉내를 내고 떠돌아 다녔다.

어느 날이다. 보화스님은 떠날 때가 됨을 익히 알고 한 불자에게 말하였다. “산승의 옷 한 벌을 지어주시구려!” 불자가 승복 한벌을 정성스럽게 지어서 보화스님께 드렸다. “이건 산승의 옷이 아니냐!”

보화스님이 승복을 물리쳤다. 임제스님이 이 소식을 듣고는 관을 하나 짜서 보냈다.

보화스님이 어린애처럼 신이 나서 관을 지고 네거리에 나와 말하였다.“내일 해가 떨어질 때에 동문 앞에서 죽을 것이요!”

동문 앞에 구경하려고 나온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보화스님은 말하였다. “내일 해가 떨어질 때에 남문 앞에서 죽을 것이요!”

이번에도 죽지 않고 남문 앞에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일 해가 떨어질 때에 서문 앞에서 죽을 것이요!”

서문 앞에서 다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일 해가 떨어질 때에 북문 앞에서 죽을 것이요!”

이번 북문 앞에는 모여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보화스님에게 여러 차례 속은 탓이다.

보화스님은 손수 관 뚜껑을 열고 관 안으로 들어가 누워서 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여보세요. 이 관 뚜껑에 못을 쳐주시오!”

이때 보화스님은 입적하였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구경꾼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왔다.

자, 속이는 말이 맞는가? 참말이 맞는가?

한번 생각해 보시라.

지묵스님 / 장흥 보림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