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이야기·지묵스님

“그대는 왜 바보가 됐는가”/지묵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12. 12. 02:43

 

 

“그대는 왜 바보가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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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님이 여쭈었다. “어떤 사람이 정신이 좀 모자란 바보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이 노승은 너만 못하느니라.”

학인이 말하였다. “노스님을 이길 수 없는데요.”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정신이 좀 모자란 바보가 되었는가?”

 

한 스님 “어떤 사람이 바보입니까”

조주스님 “이 노승은 너만 못하다”

학 인 “노스님을 이길수 없는데요”

조주스님 “그대는 왜 바보가 됐는가”

강설 / 제가 바로 바보인 줄 모르는 사람의 질문.

중생인 줄 모르고 사는 중생은 남을 평가하기를 좋아한다. 그런 까닭에 남을 꾸짖는 소리가 높아진다. 실수를 감싸주는 아량도 적다. 게다가 남을 평가할 때에는 부처인양 완벽한 자를 들이댄다.

이번 수련회 때에 좋은 법문을 들었다. “돈 몇 천원만 잃어버려도 바삐 주머니를 뒤져서 찾느라고 애쓰는데, 정작 자기 자신을 찾는 데에는 얼마나 신경을 쓰는가?”

한 스님이 여쭈었다. “至道無難(지도무난,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唯嫌揀擇(유혐간택, 이것일까, 저것일까, 간택하는 것만을 버릴지니라) 이 말씀이 금세기 사람들의 병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누가 진즉 산승에게 물었지만 오년이 지나도 분별하지 못하였느니라.”

 

강설 / 병입니까? 병이 아닙니까? 이 물음 역시 간택에 떨어진 질문이다.

한 산중에서 일어난 이야기. 묵언을 하는 스님에게 왜 말씀을 하지 않는가를 묻자, 묵언을 하는 스님이 말하였다. “산승은 묵언, 묵언중입니다!”

어떤 관원이 물었다. “단하(丹霞) 스님이 목불(木佛)을 불태운 일화입니다. 이때 원주(院主) 스님은 무엇 때문에 눈썹이 빠졌습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관원의 집 안에서 불태워 날 것을 익히는 사람은 누구십니까?”

관원이 대답하였다. “소사가 있습니다.”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소사 그 사람 솜씨가 좋네!”

강설 눈썹이 빠졌다는 말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 벌로 눈썹이 빠진다는 속어. 단하스님은 사리를 얻기 위해 목불을 불살랐다고 대답한 스님이다.

원주는 목불에서 어떻게 사리가 나오겠느냐고 대드는 스님이다. 누가 옳은가? 유위법에서는 원주의 말이 이치에 맞다. 유위법을 깨우쳐 주려는 단하 스님의 행위도 그럴듯하다. 허나, 조주 스님은 직접 대답을 하는 대신 딴 말씀을 하신다. “집안에서 불태워 요리하는 소사의 솜씨가 좋구먼!”

한 스님이 여쭈었다. “비목 선인(毗目仙人)이 선재(善財)동자의 손을 잡는 순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진불(微塵佛)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조주스님이 곧 묻는 스님의 손을 잡고 이르셨다. “자네는 무엇이 보이는가?”

강설 / 한치 오차가 없이 질문에 대답한 조주스님. 이런 법문을 놔두고 다른 이야기를 찾는 분은 어느 분일까?

화업경 입법게품에서 53 선지식 중 제8번째 비목 선인의 이야기이다.

선재동자가 나라소(那羅素) 나라에 비목구사(毘目瞿沙)라는 신선을 찾아가 보살행이 무엇인지 배울 때였다.

비목 선인이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선남자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보리심을 내면 반드시 지혜도(智慧道)를 성취합니다. 그런 까닭에 선재동자가 보리심을 내었기에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반드시 갖출 것입니다.”

비목 선인은 다시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선재동자여, 제가 얻은 해탈은 무승당(無勝幢, 가장 큰 승리의 깃발) 해탈(解脫)입니다.”

선재동자가 무승당 해탈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때 비목 선인이 오른손을 펴서 선재동자의 정수리를 만지는 한편, 선재동자의 손을 꽉 붙잡았다.

순간 선재동자는 자기 몸이 시방(十方) 십불찰 미진수 세계의 여러 부처님이 계신 곳에 둘러 싸여있음을 보았고 불세계의 대중과 부처님의 상호(相好)가 장엄하신 것을 보았는데, 그 장엄하신 가운데서 부처님이 중생들의 원에 따라 적절하게 하시는 법문도 역력히 들었다는 대목.

 지묵스님 / 장흥 보림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