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이야기·지묵스님

“무엇이 제일구 입니까?”/지묵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12. 11. 21:47

 

 

“무엇이 제일구 입니까?”

조주어록 보기 ⑮


말을 안하면 사람을 잃고

불필요한 말로 말을 잃는다

소중한 가르침이라도

지혜롭게 접근하라

조주스님이 법상에서 법문을 하셨다. “형제 여러분, 오래 서 있지 마시라. 일이 있다면 거량(擧揚)을 해 볼 것이니, 누가 나서서 일러 보시라. 일이 없다면 가사와 발우가 있는 선방 자기 자리로 돌아가 좌선하고 궁리하는 것이 좋느니라! 이 늙은 중이 바랑을 메고 행각(行脚)을 다닐 때였지. 아침저녁 두 때로 죽을 먹고 밥을 먹는 일 외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으니, 잡다한 일에 신경 쓸 여가가 따로 없었느니라. 만약 이렇지 않다면 출가와는 아주 멀어진 것이니라.”

강설 /

조주스님 당시에는 서서 법문을 듣고 헤어졌다. 가운데 어간 자리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 대중이 마주 보고 서서 있었고, 큰 스님께 법을 거량(擧揚 혹은 擧量, 무게를 저울질함)할 양이면 가운데 어간자리로 나와 큰소리로 목청을 돋워서 여쭙는 것이 당시 풍습이었다.

법거량 문답들은 두세 마디로 아주 짧고 간결하였다. 조주스님은 사자후 하신다. “오래 서 있지 마시라. 시간을 허비할 것이 없이 어서 선방으로 들어가 좌선하시라!”

요즘 문제점이 있다. 편안히 앉아서 장시간 법문을 듣는 것은 법문이 아니고 강설(講說) 정도라고 해야 옳다. 혹은 늙으신 보살님을 대상으로 하는 불교 이야기, 절집 이야기 정도이다. 그런데도 법상에 올라가 법사가 말하는 것 모두를 법문이라고 하는 요즘 표현은 오류이다.



한 스님이 여쭈었다. “만물 가운데 가장 단단한 것은 무엇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욕설을 내뱉으려면 말이야, 입술과 입술에 바짝 힘을 주어 단단하게 하고 하란 말이야! 만약에 퉤, 하고 침을 내뱉을 때도 그렇지. 물그릇의 물을 와락 쏟아 붓듯이 단단히 힘주어 하란 말일세!”

강설 /

되는 질문이나 안 되는 질문이나 모두 거둬들이는 명인의 솜씨에는 반전과 비유의 묘미가 있다. 부처님처럼 장광설상(長廣舌相)을 갖추지 않았다면 도저히 어려운 노릇이다.



한 스님이 여쭈었다. “밤낮으로 정진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스님 가운데는 어느 누구도 그런 사람이 없어. 세금을 한번 내고 쉬지 않고 또다시 그 세금을 다시 내는 그런 부류와는 친하지 않느니라.”

강설 /

상근기는 쉴 때 쉬고 공부를 할 때 공부를 하는 것이지, 정진을 멈추지 않고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다. <법구경> 387에서 말한다.

“태양 빛은 한 낮에 밝게 빛나고 둥근 달은 밤중에 환히 빛나네. 무사들은 갑옷에 번쩍 빛나고 바라문은 명상에 곱게 빛나네. 이와 달리 무루(無漏)의 부처님께선 자비스런 빛으로 맑게 빛나네.”



한 스님이 여쭈었다. “무엇이 제일구(第一句, 話頭)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만약에 말이지. 제일구만을 집착한다면 그대는 쉽게 늙어버리고 말 것일세.”

강설 /

옛사람은 말하였다.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이 되느니라.”

비록 소중한 제일구라 하더라도 지혜롭게 접근하라는 뜻이다.



조주스님이 또 이르셨다. “만약 일생동안 총림을 떠나지도 않고 오년, 십년 동안을 묵언(言)만을 지킨다면 그건 벙어리야! 이런 맹충이는 부처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하지 못하니, 만약 이 말이 틀릴 것 같으면 이 늙은 중의 목을 베어갈지니라.”

강설 /

옛사람은 말하였다.

“말을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다. 말을 할 필요가 없을 때 말을 하면 말을 잃는다.”

수련 중에 묵언을 하는 세가지 방법이다.

1급 묵언은 철저하게 침묵. 예불문 등도 외지 않고 입을 꿰매듯이 지킨다. 2급 묵언은 꼭 필요한 말을 하는데 하루 스무마디 이내로 한다. 3급 묵언은 입을 굳게 다물고 글씨를 써서 의사표현을 한다. 일상생활을 하는데서는 이 3급 묵언 방법도 필요하나, 낮은 단계의 묵언법이다.

지묵스님 / 장흥 보림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