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의 강의·혜거스님

〈8〉보살의 원력/깨달음 얻어 중생 제도하겠다 발원

通達無我法者 2009. 6. 13. 05:15

 

 

깨달음 얻어 중생 제도하겠다 발원

〈8〉보살의 원력


대자비심을 일으킨 보살은 큰 서원을 세워야 한다. 서원은 pran.idha-na의 번역으로 희구하는 마음이며, 원(願)을 발하고 맹세를 일으켜 어떤 일을 완성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불교에서는 보살이 처음 보리심을 발할 때에, 스스로 깨달음을 얻겠다고 발원하고 동시에 다른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발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승불교에 이르면 언제 어디서나 시방에 부처님이 두루 가득 차 있으며,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도 불성이 현존하고 있어 누구라도 깨달음을 구하려는 보리심을 일으키면 모두 보살이 된다. 이러한 것으로 볼 때 서원은 발심에 의해 일어나며 그 발심은 모든 서원의 바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발원(發願)이란 발기서원(發起誓願)의 줄임말이다. 제불보살(諸佛菩薩)에게는 본원(本願)이 있다. 본원을 본홍서원(本弘誓願).본서(本誓).홍서(弘誓).본서원(本誓願)이라고도 하며, 모든 부처님이 지난 세상에 성불하려는 뜻을 낸 인위(因位)에서 세운 여러 가지 서원으로 이 본원에는 총원(總願).별원(別願)이 있다. 총원(總願)은 모든 부처님의 공통된 본원으로 곧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말하며, 별원(別願)은 부처님마다 제각기 다른 서원, 곧 아미타불의 48원, 약사여래의 12원 등을 말한다.

자비란 발고여락(拔苦與樂)이며, 일체 중생에 대한 발고여락이 보리심으로 구체화된 것이 사홍서원이다. 사홍서원은 중국에서 구체화되었다. 특히 천태지의가 <법화경>의 ‘제도하지 못한 자 제도하게 하고, 알지 못하는 자 알게 하고, 안락하지 못한 자 안락하게 하고, 열반하지 못한 자 열반하게 한다 (未度者令度 未解者令解 未安者令安 未涅槃者令得涅槃)’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본다. 이것이 중국에서 찬술된 <영락경(瓔珞經)>에서 보다 구체화 된 뒤 의식화되었다고 생각된다.

사홍서원(四弘誓願)은 모든 법회와 예불할 때 빠지지 않고 한다. 특히 <천수경(千手經)>에서 설하고 있는 내용은 자성법문으로서의 사홍서원이다. 이것은 자신의 깨달음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리적(自利的)인 면이 복합되어 있는 것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하는 원력과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는 심원으로 좌선 수행자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마음가짐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보살은 이 원으로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下化衆生)이다.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 보살의 궁극적인 목적이겠지만 그보다도 먼저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뜻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깨달음을 구하는 일이 곧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고,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 바로 깨달음을 구하는 일인 것이다.

이러한 서원 속에는 자신의 깨달음을 기어이 실현하겠다는 자리적인 것이 주가 되겠지만 남에게도 깨달음을 얻게 하겠다는 이타적인 서원이 동시에 세워져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타적인 서원이 자리적인 서원보다도 우위를 점하고 있기도 하다.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

보살의 궁극적인 목적이겠지만 그 보다 먼저

중생제도 뜻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컨데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하고 있으며, 법장비구(法藏比丘)는 보살의 온갖 행을 닦아 중생을 제도하려는 48가지의 대원을 세워 그 원이 한 가지라도 성취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굳게 서원하여 부처님이 되셨던 것이다. 이 48대원은 그 서원 하나하나가 한결같이 남을 위하는 자비의 이타행으로 충만되어 있으며 모두가 중생구제를 위한 대자비의 맹세로 가득 차 있다. 이 분이 바로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주관하고 계시는 아미타부처님이시다.

이외에도 부처님의 10대 발원, 약사여래의 12원, 보현보살의 10종 대원 등이 있다. 대승불교의 모든 불보살에게는 처음 발심 할 때부터 세우는 서원이 있는데 이것이 본원(本願)인 것이다. 이 본원사상은 자비.지혜와 함께 대승불교의 근본정신이 된다. 시방세계의 불보살님과 역대 큰스님들도 모두 크고 넓은 원을 세웠으니, 원력은 곧 자비의 결정이며 해탈의 인연이 되므로 모든 중생들이 반드시 실행해야 할 덕목이다.

중국 북송시대의 영명선사(永明禪師, 904~975)께서는 “서원만 있고 실행이 없으면 그 서원이 반드시 헛되어지고, 실행만 하고 서원이 없으면 그 실행이 반드시 고루해진다. 서원과 실행이 함께 할 때 비로소 불도를 성취하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도 한 가지씩 원을 세워 평생의 지향하는 목표로 삼아 성불로 한 발 다가가야 할 것이다.

참된 보리.열반의 불과를 성취하려는 불자로서 넓고 큰 서원 즉, 대승의 이타심에 바탕을 둔 서원을 세워 굳게 그 원을 닦아 간다는 것은 참으로 거룩한 행위라 하겠다. 원을 세우기는 쉽지만 지속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세운 원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때 그 원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며, 우리의 참 삶은 실현되는 것이다

믿음과 원력은 깨달음의 길을 탄탄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디딤돌이다. 특히 원력은 모든 장애와 좌절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힘이다. 원력은 특히 의지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고, 의지력은 성공의 기초를 다진다. 수행자가 세운 원력이 방해받지 않고 발휘된다면 반드시 바라는 목표가 이루어질 것이다.

스님들이 행하는 의식문의 대부분은 원력에 대한 글들이다. 아침마다 불전에 예경하고 발원문을 봉독하며 그 서원을 잊지 않고 다짐하며 수행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행할 때 목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그 성취에 있어 크나큰 차이가 있게 된다. 또 품고 있는 원이 크고 작음에 따라서도 그 운명의 구도가 달라지기도 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금생에 이루지 못하더라도 원을 크게 가져야 한다. 특히 지혜를 배우려 하는 보살은 사홍서원을 발하여야 한다. 우리 불자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공동의 네 가지 서원인 “가없는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衆生無邊誓願度), 끝없는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煩惱無盡誓願斷),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法門無量誓願學), 위없는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佛道無上誓願成)”하는 서원을 발하여 건전한 불국토를 이루어야 하겠다. 다른 사람 잘못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나 하나라도 먼저’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수행하여 세상을 맑혀 가야 할 것이다.

 

혜거스님 / 서울 금강선원장
[불교신문 2506호/ 3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