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④ 인식의 무더기(想蘊)실천하는 불자가 진정한 불제자 |
첫째, 오온의 두 번째인 느낌(受)이 감정적이고 정서적이며 예술적인 심리현상들(行)의 단초(端初)가 되는 것이라면, 인식은 지식이나 철학이나 사상이나 이념과 같은 우리의 이지적인 심리현상들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perception으로 정착이 되었다. 둘째, 느낌은 닦아서 순차적으로 정화되어 가는 것이지만 인식은 단박에 전환이 가능하다. 그래서 인식을 비롯한 이지적 심리현상들은 실체 없음을 보는(見) 순간 단박에 전환이 가능하므로 견도(見道, dassana-magga)라 하고, 느낌에 바탕한 탐욕이나 성냄과 같은 감정적 심리현상들은 실체 없음을 본다하더라도 바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닦아서(修) 점차적으로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수도(修道, bhavana-magga)라 한다. 이것은 남방 상좌부와 북방 설일체유부에서 꼭 같이 강조하는 것이고, 유식에서는 소지장과 번뇌장으로 계승이 되었으며, 선종에서 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 하는 오랜 논쟁으로 발전되었다. 셋째, 감정과 정서와 예술과 편리함의 추구와 관계있는 느낌(受)이 자본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다면 인식(想)은 이념이나 사상을 더 중시하는 사회주의와 더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잘못된 인식은 버려야 한다. 인식은 대상을 받아들여 이름 짓고 개념을 일으키는 작용이다. 그런데 이런 개념작용은 또 무수한 취착을 야기하고 해로운 심리현상들(不善法)을 일으키기 때문에 초기 경의 여러 문맥에서 인식은 부정적이고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래서 ‘희론하는 인식’(M12 등)을 가지지 말 것을 초기 경들은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극복되어야 할 대표적인 인식으로 <금강경>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 자아가 있다는 인식, 개아가 있다는 인식, 중생이 있다는 인식, 영혼이 있다는 인식을 들고 있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극복되어야 할 것은 ‘아상’ 염오 - 이욕 - 해탈 완성해야 이러한 인식들은 단지 인식에만 머물지 않고 존재론적인 고정관념으로 고착된다고 이해한 구마라즙 스님은 <금강경>에서 이러한 인식을 상(想)으로 옮기지 않고 상(相)으로 옮겼다. 한편 무상.고.무아.부정인 것을 항상하고 즐겁고 자아고 깨끗한 것으로(常樂我淨) 여기는 것을 인식의 전도(顚倒)라 하며(A4:49 등) 우리의 <반야심경>도 이러한 전도를 여의고 궁극적 행복인 열반을 실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다섯째, 부처님은 ‘무상의 인식’ 등 닦아야할 인식도 말씀하셨다. 초기 경에는 버려야할 고정관념으로서의 인식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증득하고 해탈.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 개발하고 닦아야 하는 인식도 나타난다. 특히 <앙굿따라 니까야>에는 수행자들이 닦아야 할 여러 가지 조합의 인식들이 나타나고 있다.(A5:61 등) 여섯째, 인식은 초기불전에서 실체 없는 신기루(S22:95)에 비유되어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아니 대아니 진아니 영혼이니 일심이니 하는 잘못된 인식이나 고정관념을 여의고, 이런 인식은 참으로 ‘텅 비고 공허하고 실체가 없는 것’(S22:95)이라고 사무쳐서 필경에는 인식이 무상이요 고요 무아임을 꿰뚫어 염오-이욕-해탈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실천하는 자야말로 해탈.열반의 길을 가는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일 것이다. 각묵스님 /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
'초기불교 > 초기불교산책·각묵스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누구인가 ⑥ 알음알이의 무더기(識蘊) (0) | 2010.03.23 |
---|---|
나는 누구인가 ⑤ 심리현상들의 무더기(行蘊) (0) | 2010.03.20 |
나는 누구인가 ③ 느낌의 무더기(受蘊) (0) | 2010.03.20 |
나는 누구인가 ② 물질의 무더기(色蘊) (0) | 2010.03.20 |
나는 누구인가 ① 오온 (0) | 2010.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