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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란 무엇인가 ②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通達無我法者 2010. 5. 9. 21:40

 

 

진리란 무엇인가 ②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존재의 괴로움에 사무쳐야 ‘해탈’

불교는 괴로움 해결된 경지

열반 실현을 너무나도 중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가운데 첫 번째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이다.

불교는 무위법인 열반을 제외한 모든 것(유위법)을 괴로움이라고 파악한다.

이것은 부처님의 직관이 담긴 선언이다.

초기불전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일체가 괴로움(一切皆苦)임을 선언한다.

첫째는 세상에는 네 가지 괴로움과 여덟 가지 괴로움 즉 사고팔고(四苦八苦)가 있기 때문이요,

둘째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괴로움의 세 가지 성질(三苦性)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니까야의 여러 경들은 사고팔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①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② 늙음도 괴로움이다. ③ 병도 괴로움이다. ④ 죽음도 괴로움이다. ⑤ 싫어하는 대상들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다. ⑥ 좋아하는 대상들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다. 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⑧ 요컨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이다.”(S56:11)

 

이 경문에서 보듯이 사고(四苦)는 생.노.병.사의 넷이다.

팔고는 이 사고에다 애별리고(愛別離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와 구부득고(求不得苦)와 오취온고(略 五陰盛苦)의 넷을 더한 것이다.

여기서 보듯이 사고팔고의 결론은 오취온고(五取蘊苦)이다.

나라는 존재는 오온으로 구성되어 있고 중생은 이런 오온을 ‘나’라고 ‘내 것’이라고 취착하기 때문에 이 취착의 대상이 되는 오온으로 구성된 우리의 삶 자체가 괴로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초기불전의 몇 군데에서는 괴로움의 세 가지 성질(三苦性)로 존재가 괴로움임을 설명하고 있다.

“도반 사리뿟따여, ‘괴로움, 괴로움’이라고들 합니다.

도반이여, 도대체 어떤 것이 괴로움입니까?”

“도반이여, 세 가지 괴로움의 성질(苦性)이 있습니다.

그것은 ① 고통스런 괴로움의 성질(苦苦性), ② 변화에 기인한 괴로움의 성질(壞苦性), ③형성된 괴로움의 성질(行苦性)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세 가지 괴로움의 성질이 있습니다.”(S38:14)

 

이 세 가지는 <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①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은 고유성질로서도, 이름에 따라서도 괴롭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괴로움(苦苦)이라 한다.

② 즐거운 느낌은 그것이 변할 때 괴로운 느낌이 일어날 원인이 되기 때문에 변화에 기인한 괴로움(壞苦)이라 한다.

③ 평온한 느낌과 나머지 삼계에 속하는 형성된 것들(行, 有爲)은 일어나고 사라짐에 압박되기 때문에 형성된 괴로움(行苦)이라 한다.”(Vis XVI:35)

이 행고성은 위 첫째의 오취온고와 같은 내용이다.

 

이처럼 열반을 제외한 모든 유위법들은 그 성질상 모두 괴로움일 수밖에 없다.

혹자는 불교는 괴로움을 말하기 때문에 염세적이라고 비판할 지도 모른다.

만일 불교가 전적으로 괴로움만을 말한다면 당연히 그런 비판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가 이처럼 괴로움을 강조하는 것은 괴로움이 해결된 경지요 궁극적 행복(至福)으로 표현되는 저 열반을 실현하는 것을 너무도 중시하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괴로움임에 사무치지 못하는 자들은 결코 해탈.열반의 행복을 실현할 수가 없다.

괴로움이라는 맨땅에 넘어진 자는 이 괴로움이라는 맨땅을 딛고서만이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