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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란 무엇인가 ③ -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

通達無我法者 2010. 6. 9. 23:45

 

 

진리란 무엇인가 ③

-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

 
  
지난 호에서는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인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를 살펴보았는데 그것의 내용은 사고팔고(四苦八苦)와 괴로움의 세 가지 성질(三苦性)이었다. 그러면 괴로움은 아무 원인도 없이 그냥 일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절대자가 있어서 존재를 괴롭도록 만드는 것인가? 만일 괴로움만 강조하고 괴로움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면 그것은 진리라고 표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진리는 이러한 괴로움이 왜 일어나는가, 괴로움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밝히는 진리인데 이를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dukkha-samudaya-ariya-sacca)’라 한다. 중국에서는 고집성제(苦集聖諦)로 직역하였다.
 
 
괴로움 있어야 다시 태어난다
 
삼매에 대한 강한 갈망 ‘유애’
 
염증 절망 ‘무유애’ 벗어나야
 
 
여기서 ‘일어남’으로 옮긴 원어는 samudaya 인데 이것은 접두어 sam(함께)+ud(위로)와 √i(to go)에서 파생된 명사로 ‘함께 위로 올라온다’는 문자적인 의미에서 일어남, 발생, 원인을 뜻하며 중국에서는 집(集)으로 옮겼다.
 
세존께서는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서 이 괴로움의 일어남 즉 원인을 강조해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바로 ‘갈애(渴愛, tan.ha-)’이다. 갈애로 옮긴 딴하(tan.ha-)는 동사 √tr.s.(to be thirsty)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문자적인 의미는 ‘목마름’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목마를 갈(渴)자를 넣어서 갈애(渴愛)로 많이 옮겼으며, 영어로는 craving으로 정착이 되고 있다. 경들은 다음과 같이 갈애를 정의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再有)을 가져오고 환희와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欲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S56:11)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갈애는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근본원인이라고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다. 이 갈애가 근본원인이 되어 중생들은 끝모를 생사윤회를 거듭한다. 그리고 ‘환희와 탐욕이 함께하며’라는 것은 갈애는 환희와 탐욕과 뜻으로는 하나라는 뜻이다.(DA.iii.799)
 
세존께서는 갈애를 욕애(欲愛), 유애(有愛), 무유애(無有愛)의 셋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주석서는 욕애를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의 동의어”로, 유애를 “존재를 열망함에 의해서 생긴 상견(常見)이 함께하는 색계와 무색계 존재에 대한 탐욕과 선(禪)을 갈망하는 것의 동의어”로, 무유애를 “‘단견(斷見)이 함께하는 탐욕의 동의어”(DA.iii.800)로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눈.귀.코.혀.몸의 다섯 감각기관을 통해서 인식되는 대상에 대해서 생기는 탐욕을 욕애라 하는데 욕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매순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색계(초선천부터 제4선천까지)와 무색계(공무변처천부터 비상비비상처천까지)는 선(禪)을 닦아서 태어나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선(禪)을 닦아서 태어나게 되는 색계와 무색계의 존재에 대한 탐욕과, 이러한 곳에 태어나기 위해서 선수행과 삼매에 대한 강한 갈망을 일으키는 것을 유애라 한다. 존재하는 것 자체에 염증을 느껴서 자살에 대한 충동을 일으키는 것 등을 무유애라 한다. 유명 연예인들에서부터 대기업의 총수까지도 자살을 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복잡다단한 삶과 존재의 관계에 대해서 염증과 절망을 일으키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러한 무유애가 더욱 치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각묵스님 /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