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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39

通達無我法者 2010. 12. 26. 23:15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괴로움을 일으키는 힘이 강한 자는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힘도 강합니다.

한 쪽의 힘이 강하면 그것을 해결하려는 다른 한 쪽의 힘도 똑같이 강합니다.

그래서 괴로움이 많은 사람이 수행을 더 열심히 합니다.

매우 잘못된 자가 크게 개선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힘을 어느 쪽으로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수행을 할 때 번뇌를 억누르는 수행은 일시적으로 자유롭지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번뇌를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지켜보는 수행은 통찰 지혜가 일어나 번뇌를 관통해 버립니다.

 

이것이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이렇게 힘을 쓸 때만이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잘못된 힘은 잘못된 것을 일으키고 그것을 해결할 때에도 잘못된 방법으로 해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힘을 가질 때 좋은 힘을 가져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서 붓다고사의 주석서를 살펴보겠습니다.

 

붓다고사께서는 몸을 지수화풍 4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야생 짐승, 초자연적인 존재, 도깨비 등의 그릇된 것들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계를 뛰어넘는 힘을 가진

절대적인 존재를 말합니다.

 

이러한 초월적 존재가 나타난다는 것은

신(神)이나 또는 특정한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물론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도 초월적 힘을 가진 존재인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이런 초월적 힘을 가진 존재는 상상으로 만들어서 본다는 것입니다.

만약 수행자가 관세음보살을 봤다면 그것은 본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가 만든 표상을 본 것입니다.

이러한 표상이란 사실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이 염원하는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서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는 것이 실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간절하게 소망하면 그런 형상이 떠오릅니다.

이것이 바로 오온(五蘊)의 상(想)의 기능입니다.

신(神) 역시도 증명할 수 없는 가상의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느낌을 느낌으로 보지 못하면

자신이 표상을 만들어서 상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일어날 때 우리는 지수화풍 4대를 바로 보지 못해서

자기가 느낌을 표상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음에 빠져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상으로 만들어서 본 존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매달리는 것이

세속에 사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도깨비도 그렇습니다. 동화책이나 구전으로 전해진 상상의 동물입니다.

이런 것을 본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에 입력되어 있는 존재들이

어떤 조건하에서 모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은 다만 상상력이 만들어낸 산물들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리석은 일에 매달려 불필요한 힘을 낭비하고 또 돈을 낭비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 결코 지혜롭지 못한 무지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도깨비가 나오면 반드시 귀신도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귀신은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아귀를 귀신이라고 합니다. 이런 아귀가 아닌 귀신은 사실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에 근거하면

31개의 존재계에 사는 생명들 중에서 귀신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구 말을 믿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전래되어 오는 것을 믿어야겠습니까? 부처님 말씀을 믿어야겠습니까?

아귀는 있지만 우리와 파장이 맞지 않아서 사실 볼 수가 없습니다.

 

귀신도 서양 귀신은 숲의 요정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산이 많기 때문에 산신령입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귀신의 옷도 모두 문화에 따라서 다릅니다.

한국에서 보는 귀신의 모습은

동화책에 나오는 검은 옷을 입고 방망이를 든 사람으로 보입니다.

또는 소복을 하고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도 보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동화책에서나 또는 전래되어 온 이야기 속에 기억 된 것들이

표상으로 나타난 것들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처럼 모두 기억 속에 있는 것들을 표상으로 만들어서 보는 것들이지

그것이 실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이것들을 보지 않고 단지 실재하는 느낌을 알았다면

두려움과 공포나 불안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없을 때 그 자리에 무상과 고와 무아를 아는 지혜가 날 것입니다.

만약 이런 것들을 보는 세계에 산다면 그에게는 지혜가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윤회를 하면서 자신이 만든 덫에 걸려서 어리석고 고통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실제 있는 것도 섬기지 못하는데 없는 것을 붙잡고 바라고 원한다면

과연 그것들이 실현해줄 것 같습니까?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스스로 지은 업대로 받습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단 한사람도 제도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처님은 단지 길만 제시했을 뿐,

일을 하고 일의 결과를 받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부처님께 특정한 사람을 합격시켜 달라고 기도할 때,

부처님이 누구는 떨어뜨리고 누구는 합격시키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자신이 만들어서 자신이 결과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을 알아차릴 때 사대를 알아차려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경전에서 수행자가 대상을 알아차릴 때 어떻게 알아차리라고 하는 말씀은

모두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하면서 이런 의문이 듭니다.

지수화풍 사대가 무엇이기에 꼭 이것을 그렇게 강조하는가?

우리는 아직 부처님이 말씀하신 그 지혜에 미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알맞은 방편을 주셔서 우리들이 지혜를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경전에 있는 가르침은 의심 없이 따르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러시아의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는 간질병 환자였습니다.

그가 간질병 환자로써 겪은 경험을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간질병 증세가 나타날 때 반드시 몸에 어떤 전조가 나타나는 것을 잘 묘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느낌입니다.

발작이 일어날 때 몸에 어떤 느낌이 일어나고 마음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그는 소설에서 자세히 밝혔습니다.

 

이때 몸에 나타나는 느낌을 면밀하게 알아차리면,

느낌으로 인해 다른 표상이 떠오르지 않거나, 병적 발작이 제어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느낌에 함몰되어 버리면

반드시 그 느낌이 표상을 만들어서 어떤 환청과 환시를 경험하게 되거나

몸의 발작 증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정신분열 현상을 가진 사람에게도 모두 똑같이 분열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몸에 어떤 느낌이 일어납니다.

이때 이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분열증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소리가 들려 자신의 행동을 부추긴다거나

어떤 형상이 나타나 자신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는 경우로부터 극복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 느낌으로 인해 생긴 현상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은 해탈의 지혜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병의 치유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병의 치유가 목적이 되어서는 결과를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바라는 것 없이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때

결과가 좋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하셔야합니다.

그래서 병이 낫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바라는 것 없이 수행을 한 결과로 병이 나을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여기서 주석서의 중요한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온(五蘊)에서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표상이 떠오른다는 사실입니다.

 

이때의 표상은 오온의 상(想)의 기능입니다.

사실 오온에서 수,상,행(受,想,行)의 역할이 많습니다.

이때의 상(想)은 지각 ,인식, 기억, 상상력, 표상을 만듭니다.

여기서 기억이라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이 기억은 과거에 입력된 정보, 고정관념을 말합니다.

 

그래서 인식한다, 지각한다는 것은

어떤 고정관념에 의해 대상을 평가하는 것으로 바로 상(想)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사실이 아닌 것도 상상력으로 만들어서 사실처럼 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아 대상을 알아차릴 때,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알아야겠습니다. 이렇게 알아야 지혜가 납니다.

 

수행자 여러분!

위빠사나 수행은 하나의 명상 주제를 가지고 하는 수행과 달리

선정의 달성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선정수행은 근접삼매에 의해 근본삼매에 이릅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은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4대의 요소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선정을 얻는 것이 아니고 지혜를 얻습니다.

 

수행자들이 바르게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이들 네 가지 요소와

그의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단지 요소를 볼 때는 요소를 보는 것으로 그치지만,

그 요소를 보는 힘이 생기면 모든 요소들이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무상입니다.

 

무상을 보기 시작하면 다음 단계로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무아의 지혜가 나게 됩니다.

이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 때

그는 기초적인 위빠사나 지혜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위빠사나의 목표에 도달하고

깨달음을 달성할 때까지 더 높은 단계에 이를 것입니다.

 

네 가지 요소들과 그 요소들을 아는 마음의 일어남과 사라짐이 있으면

수행자는 위빠사나 수행을 더 빠르게 진전시킬 수 있어서

결국은 그가 원하는 아라한의 도, 과를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다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 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집착하지 않고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이렇게 4대에 관한 부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 안의 요소들을 알아차릴 때 ‘밖으로 알아차린다.’고 말합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요소를 번갈아 알아차릴 때 안팎으로 함께 알아차린다고 말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여러분이 오직 이들 네 가지 요소만 있고 사람 또는 존재가 없다는 것을 알 때,

집착할 그 어느 것도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집착을 하지 않습니다.

집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업의 생성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업의 생성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다시 태어남이 없습니다.

태어남이 없기 때문에 늙어서 죽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들은 원인과 결과로 지속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원인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그 결과를 받을 뿐입니다.

집착이 없으면 업이 생길 수가 없고, 업의 형성이 없으면 생겨남과 태어남이 없다는 것은

바로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우리가 관념적인 세상에서는 무엇이 가장 진실한 것이고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놓치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의 통찰지혜로 보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항상 놓치지 말아야 하며,

그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서 모든 번뇌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무상과 고와 무아입니다.

모든 것들은 변합니다. 그리고 존재한다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은 누구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아입니다.

 

오늘 무아를 받아들여서 우리들의 번뇌를 다시 한 번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