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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41

通達無我法者 2010. 12. 26. 23:20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큰 것을 포기하고 작은 것을 바랍니다.

그래서 큰 손해가 나더라도 쉽게 포기합니다.

마음에 탐욕이 적어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더욱 아름다운 사람은 작은 것조차도 포기하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손해가 나더라도 쉽게 포기합니다.

마음에 바람이 없어 더욱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큰 것을 바라는 사람은 어떤 손해도 용납할 수가 없어 그만큼 괴롭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을 바라는 사람은 작은 것조차도 쉽게 버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집착이 강한 사람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아름답지 못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 계속해서 ‘묘지에서의 9가지 알아차림’ 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이 남아 있고

살점이 붙어있는 채 해골로 변한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이 남아있고

살점이 없이 핏자국만 남은 채로 해골로 변한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묘지에서 버려진 시체가 힘줄만 남아있고

살점이나 핏기가 없는 채로 해골로 변한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묘지에서 버려진 시체의 뼈가 사방으로 흩어져

여기에 손뼈, 저기에 발뼈, 정강이뼈, 넓적다리뼈, 골반, 등뼈,

두개골 등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조개껍질 색깔처럼 백골이 된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서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이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묘지에서 버려진 시체의 뼈가

백골로 변해서 무더기로 쌓여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삭아서

가루가 된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이상으로 묘지에서의 9가지 알아차림을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시체가 문드러진 것을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왜 이것을 알아차려야 되는가를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이 지나면

부풀고 검푸르고 문드러진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바로 이 마지막 부분이 시체를 봐야 되는 필요성을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것이 묘지에서의 알아차림의 첫 번째 주제입니다.

여기서 ‘비구가 마치 죽은 사람의 시체를 보는 것처럼’ 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꼭 묘지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위빠사나 수행 중에 죽은 시체의 환상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시체를 일부러 생각한 결과이거나

명백한 이유 없이 시체의 개념이 나타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경전에서 ‘비구가 마치 죽은 시체를 보는 것처럼’

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환상이나 어떤 명백한 이유 없이 스스로 나타나든,

일부러 그 부분에 대한 수행을 했기 때문에 나타나든,

여러분들은 이들 환상이 나타날 때 이것을 환상이라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환상이 사라질 때 보이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혐오감이 있다.’ 라고 알아야 하겠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수행자의 주의, 마음

또는 다른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 나타나는 무엇이든지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환상을 보았을 때 단지 그 것을 알아차리고

그 환상이 없어질 때까지 지켜봐야합니다.

 

이 경전에 있는 ‘묘지에서의 알아차림’ 은

몸의 더러움 또는 몹시 싫어짐, 또는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에 대해서

알아차림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경전에서 현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려고 하는

위빠사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명상을 선정과 평온함을 이루는 수행방법인

사마타 수행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수행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우선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스승은 어떻게 더러움의 인식을 얻을 것인가?

그때 어떻게 주위에 있는 것들의 특색을 부여할 것인가?

즉, 시체 주위에서 발견된 것들을 어떻게 알아차릴 것인가를 가르쳐 주어야합니다.

 

다음에 스승은 어떻게 더러움의 6가지 방법을 파악할 것인가를 설명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시체에 대한 여러 가지 스승의 바른 견해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늘 제가 말씀드린, 지나가는 개를 보았을 때 그 고통을 스승께 호소했더니

스승께서는 그것은 단지 4대의 변화로 보라고 말씀하신 내용이

바로 이런 수행에 대한 스승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이런 수행을 할 때는 반드시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이것들을 본 것으로 인해서 괴로움을 겪거나

고통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같이 시체를 알아차리는 것은 시체를 통하여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본질을 파악하려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모든 것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그것을 해결할 자아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우리는 누구나 죽습니다.

그 죽음이 내가 보는 시체를 통하여 남의 죽음이 아니고

자신의 죽음도 저렇다는 것을 알아서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초연한 마음을 가지고 죽음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죽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죽습니다.

이제 누구나 맞이해야 할 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

오늘 ‘9가지 묘지에서의 알아차림’을 말씀드렸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