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붓다의수행법·위빠사나·묘원법사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51

通達無我法者 2010. 12. 26. 23:44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나를 지켜줄 것은 오직 자기 밖에 없습니다.

자기의 일은 자기의 마음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야 합니다.

 

외부의 어떤 힘도 자기의 마음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나를 지켜 줄 것은 오직 진리 밖에 없습니다.

모든 일은 진리에 귀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진리를 의지처로 삼아야 합니다.

 

진리는 변한다는 것과 괴로움이 있다는 것과 자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몸과 마음이 변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하며,

자기의 몸과 마음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하며,

자기의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오직 이 길에만 깨달음과 행복이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늘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범천 ‘사함빠띠’가 법을 요청하는 과정까지 율장 ‘대품’에 있는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부처님의 마지막 선언에 마음에 대한 분명한 해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경전의 내용을 말씀드리는 것은 마음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밝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우루벨라 마을의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신 세존께서는 다리를 맺고 앉은 채

7일 동안 오로지 한 자세로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습니다.

 

그러던 중 밤이 시작될 무렵에 연기(緣起)를 발생하는 그대로,

그리고 소멸하는 그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셨습니다.

 

무명(無明)을 원인으로 행(行)이 일어나고,

행(行)을 원인으로 식(識)이 일어나고,

식(識)을 원인으로 정신과 물질이 일어나고,

정신과 물질을 원인으로 육입(六入)이 일어나고,

육입(六入)을 원인으로 접촉이 일어나고,

접촉을 원인으로 느낌이 일어나고,

느낌을 원인으로 갈애가 일어나고,

갈애를 원인으로 집착이 일어나고,

집착을 원인으로 업(業)의 생성이 일어나고,

업(業)의 생성을 원인으로 생(生)이 일어나고,

생(生)을 원인으로 노사(老死)가 일어나고, 슬픔과 비탄, 고통과 절망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진실로 무명에서 집착을 없애면 무명은 남김없이 사라진다.

 

무명(無明)이 소멸하므로 행(行)이 소멸하고,

행(行)이 소멸하므로 식(識)이 소멸하고,

식(識)이 소멸하므로 정신과 물질이 소멸하고,

정신과 물질이 소멸하므로 육입(六入)이 소멸하고,

육입이 소멸하므로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므로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므로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이 소멸하므로 업(業)의 생성이 소멸하고,

업(業)의 생성이 소멸하므로 생(生)이 소멸하고,

생(生)이 소멸하므로 노사(老死)가 소멸하고, 슬픔과 비탄, 고통과 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들이 소멸한다.

 

그 때 세존께서는 감흥을 읊으셨습니다.

고요히 명상에 잠긴 수행자에게 진실로 법칙이 드러났다.

그 순간 모든 의심이 사라졌으니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낸 까닭이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날 밤이 깊어졌을 무렵에 다시 연기(緣起)가 일어나는 대로,

그리고 연기(緣起)가 소멸하는 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셨습니다.

 

그래서 똑같이

무명을 원인으로 행이 일어나고,

행을 원인으로 식이 일어나고,

식을 원인으로 정신과 물질이 일어나고,

정신과 물질을 원인으로 육입이 일어나고,

육입을 원인으로 접촉이 일어나고,

접촉을 원인으로 느낌이 일어나고,

느낌을 원인으로 갈애가 일어나고,

갈애를 원인으로 집착이 일어나고,

집착을 원인으로 업의 생성이 일어나고,

업의 생성을 원인으로 생이 일어나고,

생을 원인으로 노사가 일어나고, 슬픔과 비탄, 고통과 절망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진실로 무명에서 집착을 없애면 무명은 남김없이 사라진다.

 

무명이 소멸하므로 행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므로 식이 소멸하고,

식이 소멸하므로 정신과 물질이 소멸하고,

정신과 물질이 소멸하므로 육입이 소멸하고,

육입이 소멸하므로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므로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므로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이 소멸하므로 업의 생성이 소멸하고,

업의 생성이 소멸하므로 생이 소멸하고,

생이 소멸하므로 노사가 소멸하고,

슬픔과 비탄, 고통과 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들이 소멸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감흥을 읊으셨습니다.

 

‘고요히 명상에 잠긴 수행자에게 진실로 법칙이 드러났다.

그 순간 모든 의심이 사라졌으니 원인의 소멸을 알아낸 까닭이다. ‘

 

그리고 세존께서는 다시 그날 밤이 끝나갈 무렵에

다시 연기가 일어나는 대로 연기(緣起)가 소멸하는 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셨습니다.

그래서 똑같이 무명을 원인으로 행이 일어나는 것에서부터

생을 원인으로 노사가 일어나고, 슬픔과 비탄, 고통과 절망이 일어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세존께서는 감흥을 읊으셨습니다.

 

‘고요히 명상에 잠긴 수행자에게 진실로 법칙이 드러났다.

태양이 허공에서 작렬하듯이 악마의 군대를 마침내 쳐부순 것이다. ‘

 

세존께서는 7일이 지난 뒤에 삼매에서 깨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보리수나무를 떠나 아자빨라니고로다 나무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가부좌를 하시고 앉은 채 7일 동안 오로지 한 자세로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습니다.

 

그 때 교만한 바라문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존께 와서 안부를 여쭙고 몇 마디 나눈 뒤에 한 쪽에 서서 말했습니다.

 

“사문 고따마시여! 그대는 어찌해야 바라문이 되는지 아시오?

어떤 수행을 해야 바라문이 되는지 아십니까? “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감흥을 읊으셨습니다.

 

“바라문은 죄악을 멀리하고 마음이 교만하지 않다.

때가 없고 자제하고 매사에 정통하고 청정한 수행을 완성한다.

바라문이란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니

그에게 세상 어디에선들 교만함이 있겠는가?”

라고 바라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7일이 지난 뒤에 삼매에서 깨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아자빨라니고로다 나무를 떠나 우찰린다 나무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부좌를 한 뒤 7일 동안 오로지 한 자세로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습니다.

 

그때 갑자기 큰 구름이 일어나 7일 동안 비가 내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날씨가 을씨년스러웠습니다.

그러자 우찰린다 용왕은 자신의 거주처에서 나와 긴 몸으로

세존을 7번 둘러싸고 고개를 굽혀 세존의 머리 부분을 가리고 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추위나 더위가 세존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파리, 모기, 바람, 열기, 뱀 등이 세존에게 다가서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7일이 지난 뒤 세존께서는 삼매에서 깨어나셨습니다.

용왕은 날씨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게 개인 것을 보고

세존에게서 자신의 몸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동자의 모습으로 변한 뒤 세존을 향해 합장한 채 경배하였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감흥을 읊으셨습니다.

 

“진리를 듣고 보아 혼자서도 만족함은 즐거움이다.

생명에 대해 조심해서 해치지 않음도 세상의 즐거움이다.

갈애를 극복하여 세상살이에 집착하지 않음도 즐거움이다.

그러나 내가 있다는 교만심을 누를 줄 아는 것이,

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7일이 지난 뒤 삼매에서 깨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우찰린다 나무를 떠나 라자야타 나무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은 채 7일 동안 오로지 한 자세로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습니다.

 

그때 따부싸와 말리까라는 두 상인이 욱칼라 지방에서

세존이 계신 곳으로 향하는 큰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생에 두 상인의 친척이었던 천인이 그들 앞에 나타나

세존께 공양을 올리도록 권했습니다.

 

“벗들이여 이제 막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세존께서

라자야타나 나무 아래에 계십니다.

그분께 보리죽과 꿀을 공양하십시오.

그러면 그대들은 긴 밤 동안 즐거움과 안락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보리죽과 꿀을 가지고 세존에게 다가가

공손히 절한 뒤에 서서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보리죽과 꿀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저희들은 긴 밤 동안 즐거움과 안락함을 누릴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생각하셨습니다.

‘여래가 저들의 손에서 직접 음식을 받을 수는 없다.

나는 어떤 것을 사용하여 보리죽과 꿀을 받아야 할까?’

 

그러자 사대천왕이 세존의 생각을 자신들의 마음으로 알아낸 뒤

사방에서 다가와 수정으로 만든 네 개의 그릇을 바치면서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으로 보리죽과 꿀을 받으십시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수정그릇으로 음식을 받아 드셨습니다.

두 상인은 세존께서 음식을 다 드시고 그릇에서 손을 거두는 것을 보고

세존의 발에 머리를 숙이며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법(法)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생명이 다할 때 까지 귀의하겠습니다. “

 

그리하여 상인 따부싸와 말리까는 세존의 법이라는

두 의지처에 귀의하는 최초의 신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두 상인들이 당시 미얀마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세존께서는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자기의 머리칼 8발을 뽑아 이들에게 기증하였습니다.

이들이 이 8발의 머리칼을 미얀마에 가지고 와서

지금 양곤에 있는 쉐다곤 황금 대탑 밑에 안장하였습니다.

 

세존께서는 7일이 지나 삼매에서 깨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아자야타나 나무를 떠나 아자빨라니고로다 나무로 가서 머무셨습니다.

 

그곳에서 홀로 명상에 잠기신 세존의 마음에는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도달한 이 법(法)은 깊고, 보기가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숭고하다.

단순한 사색에서 벗어나 미묘하여 슬기로운 자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착하기 좋아하여 아예 집착을 즐긴다.

그런 사람들이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는 도리와

연기(緣起)의 도리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또한 모든 행(行)이 고요해진 경지, 윤회의 모든 근원이 사라진 경지,

갈애가 다한 경지, 집착을 떠난 경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경지,

그리고 열반의 도리를 안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비록 법을 설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나만 피곤할 뿐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예전에 들어 보지 못한 게송을 떠올리셨습니다.

 

‘나는 어렵게 도달하였다. 그러나 지금 결코 드러낼 수 없다.

집착과 분노에 억눌린 자들은 이 법을 원만히 깨달을 수 없다.

흐름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 미묘하고, 깊고, 보기 어렵고, 섬세하니,

집착에 물든 자들이 어떻게 이 법을 보겠는가?

어둠의 뿌리로 덮인 자들이.’

 

이와 같이 깊게 사색한 세존께서는 설법을 하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그때 ‘사함빠띠’라는 범천이 자신의 마음으로 세존의 마음속을 알고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아! 세상은 멸망하는구나. 아아! 세상은 소멸하고 마는구나!

여래, 응공, 정등각자가 법을 설하지 않으신다면.’하고.

 

사함빠띠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굽혔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굽히는 것처럼 재빠르게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

세존 앞에 나타났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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