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수행자는 새로운 선한 원인을 만드는 자입니다.
선한 원인을 만들면 반드시 선한 결과가 있습니다.
수행자는 인습적이고 전통적인 기존의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축적된 성향을 가지고 보지 않기 때문에
어떤 현상이 나타나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사주가 통하지 않고, 관상이 통하지 않고, 풍수가 통하지 않습니다.
설령 좋지 않은 조건에 처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단지 알아차릴 대상일 뿐이라서
수행자들을 속박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항상 스스로 해방된 자이며 스스로 행복을 만듭니다.
그 어떤 고정 관념도 수행자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알아차림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계속해서 마음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은 자발과 유발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진리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행자는 이러한 불가피한 현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상에는 선심과 불선심, 선과보와 불선과보가 있기 때문에
항상 바른 길로만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더욱 수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왜곡과 오해가 있을 것에 대해서도 당연히 아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왜곡과 오해가 있어도 어쩔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것이라서
부처님께서 대중들을 위해 설하신 말씀이 바로 아비담마입니다.
아비담마는 부처님의 말씀인 경장, 율장, 논장이라는 삼장 중에서 논장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어렵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설하지 않고 천인과 사리불에게 설했던 것입니다.
아비담마는 마음에 대한 분석을 철저하게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무아의 실상을 알아
궁극의 진리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물론 받아들이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사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선업의 인연이 있어서 다소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 역대의 모든 주석가들은 일관된 방법으로 주석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네 가지 방법입니다.
주석서에서 설명하는 이러한 일관된 분석은
오직 완전한 가르침을 위한 토대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분석을 해서 무슨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수행자들의 완전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렇게 분석해서 다른 종파와 대립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수행자의 해탈을 위해서 분석된 것입니다.
주석서의 분석은 다음 네 가지 기초에 의해서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석서를 읽으실 때는 반드시 이런 분석이 있는 것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첫째, 대상의 특징에 대한 정의입니다.
대상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밝혀 분명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둘째, 대상의 역할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것은 대상이 가지고 있는, 보다 구체적인 역할을 설명함으로써
수행의 목적을 성취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셋째, 대상의 나타남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것은 대상의 나타남은 결과로써 경험에 의해 나타난 것을 밝혀 수행에 효과를 줍니다.
넷째, 대상의 가까운 원인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것은 대상과 가장 가까운 것을 밝힘으로써 무엇에 의지해서 일어나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를 얻도록 밝힘으로써 수행의 효과를 얻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 정의인 특징과, 역할과, 나타남과, 가까운 원인을 알면
모든 의문이 풀리고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바른 진리를 받아들여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상의 네 가지를 바탕으로 정신과 물질을 알아차리면 바른 견해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에 대해서 믿을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제자들의 주석서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어떤 수행을 할 때 먼저 어떤 스승이 만든 수행 방법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수행 방법에 대한 분명한 기록은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경전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주석서가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주석서가 없이는 결코 스승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한다고 해도 자신의 견해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바른 안내자로써의 주석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도하는 스승은 누구에게서 수행을 배웠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바른 길로 가는 수행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어떤 스승에게 수행을 배울 때, 스승 자신이 만든 수행을 배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목적이 있다면 몰라도 깨달음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위빠사나 수행 방법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정신세계를 갈 때는 완전한 가르침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애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할 수가 없으며
그래서 궁극의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지도하는 사람 자신도 모르는 수행을 배울 때의 결과는 매우 위험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마음에 대한 여러 가지 주석서를 보면 마음에 대하여 세 가지 용어로 사용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마음을 빨리어로 찌따, 마노, 윈냐나, 이 세 가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찌따는 한문으로 심(心)을 뜻하는 마음이고, 마노는 한문으로 의(意)를 뜻하는 생각이고,
윈냐나는 한문으로 식(識)을 뜻하는 아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심(心), 의(意), 식(識), 이상 세 가지의 마음은 모두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심(心)을 뜻하는 마음과 식(識)을 뜻하는 아는 마음은 동의어로써 서로 구분 없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의(意)는 마음과 아는 마음과 동의어로 쓰이면서도
감각기관에 근거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라서 약간의 다른 의미를 포함합니다.
이 때 의(意)는 감각기관인 안이비설신의 라고 할 때 마음(意)입니다.
그것도 똑같은 마음의 범주 속에 듭니다.
다시 요약하자면 주석서에서 말하는 마음은 이상의 세 가지로 쓰이는 데
이것들이 모두 동일한 용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분류할 때 이상의 세 가지가 아닌 다른 용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 다른 용어는 후대에 만들어진 용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무슨 식(識), 무슨 식(識)이라고 할 때 마음에 대한 평가를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마음에 대한 함정에 빠집니다.
무슨 식(識), 무슨 식(識)이라고 했을 때 수행자들이
다른 어떤 마음이 또 있는 줄 아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있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않고 자꾸 다른 어떤 특별한 마음을 찾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런 어떤 특별한 마음이 없습니다.
이것을 모두 밝힌 것이 논장의 마음에 대한 분석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마음은 보이지 않고 워낙 빠르게 일어났다 사라지기 때문에
부처님의 혜안이 아니고서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관한 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 상책일 것입니다.
다음에는 마음의 종류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마음의 종류에 대해서 말씀드리기에 앞서 마음은 하나이지만,
선하지 못할 때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으로 분류합니다.
그리고 선할 때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으로 분류한다는 것을 먼저 전제해야 됩니다.
마음의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이런 기본적인 마음에서 다른 마음들이 포함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복잡할 것 없습니다.
선심은 관용, 자애, 지혜이고, 불선심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고 크게 생각하시면
모든 마음이 이 범주 안에 듭니다.
마음을 세간의 마음과 출세간의 마음으로 나누었을 때 세간의 마음은 욕계, 색계, 무색계입니다.
이들 세 개의 마음을 모두 합치면 81가지입니다.
그리고 출세간의 마음을 8가지, 또는 분류에 따라 40가지로 나누면
89가지의 마음, 혹은 121가지의 마음이 됩니다.
그러면 세간의 마음인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세 가지로 분류한 마음을 하나 씩 살펴보시겠습니다.
욕계의 마음은 생명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11개의 세상에 사는 생명들의 마음이 있습니다.
욕계는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 사천왕천, 삼십삼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으로 분류합니다. 이것들이 모두 욕계입니다.
이들 세계에 사는 생명들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 여섯 가지 감각대상이 부딪혀서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감각적 욕망을 일으켜 이것을 즐깁니다.
그래서 감각적 욕망의 영역이라는 뜻으로 욕계라고 합니다.
욕계의 마음은 사악도를 뜻하는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 개의 천상계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욕계의 중앙에 있어서 사악도의 마음과 천상의 마음을
모두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모든 존재들의 마음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잔인하여
가장 큰 불선심을 가질 수도 있고 가장 선하고 가장 큰 선심을 일으켜 해탈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욕계의 인간만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서 현재, 지옥의 마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도 지옥에서 사는 것이며 죽어서는 지옥으로 갑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인간의 마음이 다음 생을 결정합니다.
반대로 인간의 마음은 현재 천상의 마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도 천상에 사는 것이며 죽어서는 천상에 갑니다.
이것이 인간만 선택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러한 욕계에 사는 생명들의 마음은 모두 54가지입니다.
이들 54가지의 마음은 그 종류에 따라서 해로운 마음, 유익한 마음,
과보의 마음,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네 가지로 분류합니다.
그 중에 욕계의 해로운 마음들은 모두 12가지입니다.
욕계의 해로운 마음들 중에서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 8가지,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 2가지,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 2가지입니다.
그래서 욕계의 해로운 마음은 12가지입니다.
다음에 욕계의 원인 없는 마음들도 18가지입니다.
욕계의 원인 없는 마음들 중에 해로운 과보의 마음 7가지,
유익한 과보의 마음 8가지, 원인 없이 작용만 하는 마음 3가지입니다.
다음에 욕계의 아름다운 마음들은 24가지입니다.
욕계의 유익한 마음 8가지, 욕계의 과보의 마음 8가지,
욕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 8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밝힌 54가지의 마음의 종류를 모두 밝힐 수는 없고
여기서 가장 먼저 말씀드린 욕계의 해로운 마음, 12가지 종류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이렇게 밝히는 것은 마음의 종류를 이런 식으로 분류한다는 기본을 설명해 드리는 것입니다.
욕계의 해로운 마음은 탐욕이라는 뿌리가 있고
어떤 느낌을 가졌느냐, 사견이 함께 하느냐, 함께 하지 않느냐,
자극이 있느냐 없느냐로 분류합니다.
욕계 해로운 마음 12가지 중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 8가지는
첫째, 탐욕에 뿌리가 있고 기쁜 느낌이 있고 사견과 함께 하고 자극이 없는 마음입니다.
둘째, 탐욕에 뿌리가 있고 기쁜 느낌이 있고 사견과 함께 하고 자극이 있는 마음입니다.
이상 두 가지 마음이 모두 똑같은데 마지막에 자극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합니다.
셋째, 탐욕에 뿌리가 있고 기쁜 느낌이 있고 사견이 없고 자극이 없는 마음입니다.
넷째, 탐욕에 뿌리가 있고 기쁜 느낌이 있고 사견이 없고 자극이 있는 마음입니다.
이상 두 가지 마음이 모두 똑같은데 마지막에 자극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합니다.
이처럼 욕계의 해로운 마음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의 마음이 조합되어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초기불교 > 붓다의수행법·위빠사나·묘원법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60 (0) | 2010.12.27 |
---|---|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59 (0) | 2010.12.27 |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57 (0) | 2010.12.27 |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56 (0) | 2010.12.27 |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55 (0) | 2010.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