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바른 것이라고 해서 세상을 전부 이끌지는 못합니다.
바른 말은 그 말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칩니다.
바른 말은 바르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만 길잡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바른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상대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른 말을 하되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때를 기다려야합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할 말을 멈추어서도 안 됩니다.
교육도 수행이므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말을 해야 합니다.
다만 말하는 시기와 타인의 입장을 존중해서 말할 필요는 있습니다.
바른 말을 할 때 상대를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중도이며,
위빠사나 수행의 알아차림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욕계의 해로운 마음 12가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다섯 번째 탐욕의 뿌리가 있고, 평온의 느낌이 있고, 사견과 함께하고, 자극이 없는 마음입니다.
여섯째 탐욕의 뿌리가 있고, 평온의 느낌이 있고, 사견과 함께하고, 자극이 있는 마음입니다.
이상 두 가지 마음이 모두 똑같은데 자극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한 것입니다.
일곱째 탐욕의 뿌리가 있고, 평온의 느낌이 있고, 사견이 없고 자극이 없는 마음입니다.
여덟째 탐욕의 뿌리가 있고, 평온의 느낌이 있고, 사견이 없고 자극이 있는 마음입니다.
이상 두 가지 마음이 모두 똑같은데 자극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합니다.
아홉째 성냄의 뿌리가 있고, 불만족의 느낌이 있고, 반감이 함께하고, 자극이 없는 마음입니다.
열 번째 성냄의 뿌리가 있고, 불만족의 느낌이 있고, 반감이 함께하고, 자극이 있는 마음입니다.
이상 두 가지 마음이 모두 똑같은데 자극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한 것입니다.
열한 번째 어리석음에 뿌리가 있고 평온의 느낌이 있고 들뜸이 함께하고 자극이 없는 마음입니다.
열두 번째 어리석음에 뿌리가 있고 평온의 느낌이 있고 의심이 함께하고 자극이 없는 마음입니다.
이상 두 가지 마음이 모두 똑같은데 의심과 들뜸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한 것입니다.
이상 욕계의 해로운 마음 12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탐욕 성냄 어리석은 마음을 기본으로 하고
다른 것들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이것을 모두 외울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제가 계속해서 말씀드릴 마음의 종류가
모두 이런 조합에 의해서 나타난 마음이라고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수행자 여러분! 아비담마는 교학자들이 몸과 마음을 분석하고
수행에 대한 의심을 제거하기 위한 기본서입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다면
이런 것은 몰라도 사실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수행은 직관으로 대상을 알아차려서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구체적인 마음의 종류는 생략하고,
대강 마음이 무엇인지 몇 가지나 되는지만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으로 색계의 마음입니다.
색계는 생명이 존재하는 31개의 세계에서 천상의 4선정의 세계가 있는데,
이들 선정의 세계가 각기 다르며, 모두 16개의 세상에 사는 생명들의 마음이 있습니다.
색계의 마음은 선정의 상태에 따라 분류합니다.
선정수행을 사마타 수행이라고 합니다.
선정수행은 관념적인 대상을 선택하여 대상과 하나가 되는 근본집중을 합니다.
그래서 번뇌를 억눌러 고요함을 얻습니다.
인간이 사마타 수행을 해서 1선정의 상태가 되면, 현재 1선정의 마음을 갖고
죽어서는 1선정의 과보를 받아 1선정의 세계에 재생합니다.
이래서 고요한 마음을 색계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2선정과 3선정과 4선정에 따라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마음도 다릅니다.
색계의 마음들은 모두 15가지입니다.
색계의 마음 중에 색계 유익한 마음 다섯 가지, 색계과보의 마음 다섯 가지,
색계작용만 하는 마음 다섯 가지입니다.
다음으로 무색계의 마음입니다.
무색계는 생명이 사는 31개의 세계 중에서 천상의 제일 상위에 사는 세계로
네 개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 세계를 무색계의 세계라고 합니다.
무색계의 첫 번째 세계는 공무변처천입니다.
두 번째 세계는 식무변처천입니다.
세 번째 세계는 무소유처천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세계는 비상비비상처천입니다.
무색계의 마음은 무색계의 선정의 상태에 따라 이상 네 가지 세계의 마음이 있습니다.
무색계는 몸이 없고 마음만 있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무색계(無色界)라고 합니다.
그래서 무색계 수행의 대상은 몸이 아닌 허공이나, 물질이 아닌 대상을 상대로 집중합니다.
이렇게 고귀한 선정수행을 해서 생긴 마음을 무색계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무색계의 마음들은 모두 12가지입니다.
무색계 마음 중에 무색계 유익한 마음 네 가지,
무색계과보의 마음 네 가지, 무색계작용만하는 마음 네 가지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간의 마음인 욕계, 색계, 무색계 마음이 모두 81가지입니다.
여기서 인간만 이런 마음을 모두 경험할 수 있지만,
다른 세계에 사는 생명들은 오직 자신의 세계의 마음밖에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서만 부처가 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으로 태어난 특권이자 다른 기회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사명감은 윤회를 끝내고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고,
아니면 바라밀 공덕을 쌓거나 수행을 해서 좀 더 나은 삶을 기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이 모든 생명들 중에서 가장 강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4악도에 떨어지는 마음도 함께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태어나기 어려운 인간으로 태어난 소중한 기회를 살려서
각자의 마음을 고양시켜야 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제 누구가가 자신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물으면
괴로움뿐인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어야합니다.
아직 이런 바람이 없다면 차선책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지금보다 향상된 삶을 살기 위해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궁극의 목표는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괴로움뿐인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직도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집착을 한다면
아직 선업이 부족하여 지혜가 성숙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상이 세간의 마음들로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에 사는 생명들의 마음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분류는 윤회하는 세계의 생명들을 모두 망라한 것일 뿐이지,
이것이 알아차려야할 수행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교의 관점이 우주적으로 모든 생명에 관한 것을 다루지만
이것들은 현상세계를 밝히고자 하는 의도 외에는 다른 뜻이 없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손위에 한줌의 풀을 올려놓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손위에 한줌의 풀이 있고 저 숲속에 많은 풀이 있다.
나는 저 숲속의 풀을 모두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직 여기 손위에 있는 한 줌의 풀에 대해서만 말한다”라고 설하셨습니다.
이때 손위에 있는 한 줌의 풀이란 자신의 정신과 물질입니다.
그래서 이것만이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불교의 세계관입니다.
부처님께서 인간의 정신과 물질에 대한 것이 아닌 것을 말씀하셨을 때는
단지 보조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이지,
오직 그것만을 설하기 위해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필요한 궁금증으로 인해 알아차림을 소홀이 해서는 안 됩니다.
궁금증은 단지 궁금증일 뿐입니다.
궁금증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누구도 그것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를 알면 계속해서 다른 궁금증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세월이 흘러도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또한 궁금증은 아무리 바르게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의문만 갖습니다.
이처럼 궁금증이 습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수행자라면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라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숲속의 풀을 모두 알지만 말씀하시지 않으신 것은
수행자가 그것을 알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의 번뇌는 자신의 정신과 물질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오직 알아차려야할 대상은 자신의 정신과 물질입니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결코 자신을 정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자신을 정화하지 못하면 남에 대해서도 결코 이로움을 줄 수 없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렇게 불교의 관점은 오직 자신의 물질과 정신에 관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12연기만 해도 한 인간의 정신과 물질이 원인과 결과로 진행되는 밝힌 것으로,
우주적 12연기와는 무관합니다.
사실 한 인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만으로 그치지 않고
모든 생명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문제에 국한 하는 것으로도 진리를 알기에 충분합니다.
인간의 문제는 사실 온 우주의 문제와도 직결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을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돌려야 합니다.
여기에 불교의 현실 참여문제가 대두됩니다.
불교가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해결할 투쟁의 전사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때 중도적 관점이 필요합니다.
지나치게 사회현실에 참여하면 잘못하면 극단적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깨달음의 길과는 다릅니다.
사회참여의 성향이 강한 사람은 그 길로 가겠지만,
이것이 수행자가 갈 길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알아야합니다.
극단적인 행동은 불선업입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공격적인 행동을 하면 스스로가 또 다른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극단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해야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행동에 대한 갈애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과격한 행위는 자신을 괴롭게 할뿐만 아니라 주위나 사회를 괴롭게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악에 받치게 합니다.
그리고 꼭 그렇게 해야 정의가 구현되는 줄 알게 합니다.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래서 이런 행위를 불선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수행자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먼저 이일을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반문해 보아야하겠습니다.
그리고 경전에 입각해서 숙고해 보아야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골몰하지 말고, 그 일로해서 생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야합니다.
그러면 상황에 따라 가장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수행자가 욕계의 모든 것에 대하여 알아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색계 무색계에 대해서도 모두 알아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인식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라서 알아차릴 수가 없고
그래서 증명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식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재하는 것에서만 대상의 성품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단 마음은 추론적이지만 느낌과 지각과 의도를 통해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이라서
실재이고 증명할 수 있는 범주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분류는 단지 모든 생명을 전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서 분류한 것이지,
이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절대적인 조건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드러난 아라한들 중에 글을 모르는 아라한도 많다는 사실이 바로 이것을 증명합니다.
그래서 깨달음에는 지식보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이런 세계에서 살려고 하기보다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고귀한 일이라는 인식을 가져야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고통보다는 행복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여러 가지 마음을 분석한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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