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지식이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더 넒은 세상으로 나가서 배워야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가 최고이고,
내 것이 최고라고만 생각하면
결코 발전할 수가 없으며, 오히려 퇴보하게 됩니다.
모르면 알아야 되며, 배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만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아니고, 내 것이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라는 말씀을 새겨듣게 된다면,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이 얼마나 편협하고 왜곡되어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위대한 가르침은 어느 특정인의 것도 아니며, 어느 특정한 나라의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그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늘부터 대념처경 교재를 가지고 공부하시겠습니다.
교재 대념처경 38쪽에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념처경에 있는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은 매우 양이 적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알아차려야할 마음들이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념처경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16가지로 분류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16가지는 8가지를 쌍으로 밝히셔서 16가지가 되었습니다.
대념처경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에서 말하는 마음은 의식의 순간들을 말합니다.
수행자들이 수행을 할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의 미세한 마음들이 있습니다.
이때 일어나는 순간순간의 마음을 여기에 밝히신 것입니다.
마음이란 고정되어 있는 실체가 아니고
조건에 의해 매순간 일어나서 사라지는데
이런 과정을 그냥 있는 그대로 지켜봐야 합니다.
마음의 종류는 모두 89가지 내지는 121가지로 나누는 분류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음을 모두 알아차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
알아차려야 할 필요가 있는 마음을 16가지로 구분하셨습니다.
마음은 하나이지만 과보에 따라서 각기 다른 마음이 일어나며,
잠재적 성향에 따라서 일어나기도 하고, 정신적 상태에 따라서 다르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수행방법에 따라서 알아차리거나 수행자의 상태에 따라서 다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밝힌 16가지는 다양한 상황에서 이러한 마음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마음의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수행자는 알아차릴 마음이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한순간에 마음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현재에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부처님께서 밝히신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은 마음의 종류만 설명하셨지,
구체적으로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초심자들을 위해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이 끝난 뒤에
다시 여러 가지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신수심법이라는 사념처 수행이라서
마음이 없으면 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마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는 그 마음을 대상으로 새로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일을 하지만, 일하는 그 마음을 새로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약간의 집중력과 방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알기가 쉽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서 아무리 들어도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아차리기 어려우면 알려고 하지 마셔야합니다.
마음을 자연스럽게 알아차릴 수 있을 때가 오므로 그때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알 수 없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도 또 다른 탐욕이기 때문입니다.
일부의 수행자들이 처음에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해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한다고 알 수는 없습니다.
이때 바로 탐욕이 있는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지금 내 마음이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해 욕심을 부리고 있네.’ 하고
그 상태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지금 여기 지켜보는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보고 있는 것이 마음인데 그 마음을 볼 수 없는 것은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음을 알아차리는데 특별한 방편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이 비물질이라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초보자의 경우에는
약간의 혼란을 겪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방법을 아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간에 해보지 않던 것이라서 마음을 알아차리려고 해도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마음을 알아차리라는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이유는 마음이 모든 일을 하기 때문에,
일의 뿌리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매우 빠르게 알아차린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제어하기 힘든 일에 직면했을 때
마음을 알아차리면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알아차릴 마음을 16가지로 분류하시고
그냥 단순하게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싱겁게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우 단순하게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대상이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 외에 다른 말이 더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어떤 대상이건,
설령 그것이 좋거나 나쁘거나에 상관없이
모두 알아차릴 대상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가령 탐욕이 있는 마음은 당연히 알아차려야 하겠지만,
이 마음과 함께 탐욕이 없는 마음도 똑같이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탐욕이 없다는 자만에 빠집니다.
그래서 탐욕이 있을 때는 탐욕이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해서 탐욕이 사라지면 다시 탐욕이 없는 마음을 다시 알아차려야 합니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도 무지이기 때문에 당연히 알아차려야 하지만
똑같이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도 알아차려야 합니다.
마음은 매순간 흐르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마음만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알아차리면 다양하게 나타나는 모든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대념처경에 있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본문을 들어보시겠습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탐욕이 없는 마음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성냄이 없는 마음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위축된 마음을 위축된 마음이라고 안다.
산만한 마음을 산만한 마음이라고 안다.
커진 마음을 커진 마음이라고 안다.
커지지 않은 마음을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향상된 마음을 향상된 마음이라고 안다.
향상되지 않은 마음을 향상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이라고 안다.
집중되지 않은 마음을 집중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자유로워진 마음을 자유로워진 마음이라고 안다.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을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마음에서 마음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마음에서 마음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마음에서 마음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마음이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마음이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마음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마음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이상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본문이었습니다.
부처님께는 본문 처음에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라고 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타난 대상을 단순하게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16가지의 마음을 알아차릴 때
있는 마음 그대로의 마음을 알아차려서 무상, 고, 무아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출세간의 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가령 탐욕이 있는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탐욕이 없는 마음은 선한 마음일 뿐이지
이 상태가 출세간의 경지에 있는 마음은 아닌 것입니다.
단지 탐욕이 있는 마음이 없어진 뒤에 탐욕이 없는 마음이지
열반을 성취한 그런 마음을 밝힌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어떻게’라고 말한 것은 수행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교학에서는 항상 ‘무엇’ 이라는 것을 밝히지만,
수행에서는 항상 ‘어떻게’ 라는 것을 밝힙니다.
이것은 수행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학과 수행의 접목되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알아차리는가를 완전하게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라는 말은
마음을 알아차릴 때 오직 알아차릴 대상을 마음에 두고,
알아차리는 그것에만 집중하면서 지낸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지낸다’는 것은 알아차리는 수행을 해서
일상의 일로 삼고, 수행을 할 것을 권하는 것입니다.
16가지 마음 중에서 첫 번째는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탐욕이 없는 마음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라고 했습니다.
탐욕이 있는 마음은 8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탐욕이 있고, 기쁨이 있고, 사견이 있고, 자극이 없는 마음입니다.
둘째, 탐욕이 있고, 기쁨이 있고, 사견이 있고, 자극이 있는 마음입니다.
셋째, 탐욕이 있고, 기쁨이 있고, 사견이 없고 자극이 없는 마음입니다.
넷째, 탐욕이 있고, 기쁨이 있고, 사견이 없고, 자극이 있는 마음입니다.
다섯째, 탐욕이 있고, 평온이 있고, 사견이 있고, 자극이 없는 마음입니다.
여섯째, 탐욕이 있고, 평온이 있고, 사견이 있고, 자극이 있는 마음입니다.
일곱째, 탐욕이 있고, 평온이 있고, 사견이 없고, 자극이 없는 마음입니다.
여덟째, 탐욕이 있고, 평온이 있고, 사견이 없고, 자극이 있는 마음입니다.
이상이 탐욕이 있는 마음 8가지입니다.
이들 마음이 있을 때는 이들 마음이 있는 것을 그냥 알아차리면 됩니다.
이 마음을 없애려고 하거나 다른 마음을 바라서도 안 되고,
오직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다음에 ‘탐욕이 없는 마음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탐욕이 있을 때도 있는 것을 알아차려야 하지만
없을 때도 없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만약 탐욕이 없을 때 탐욕이 없는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다시 탐욕이 있는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좋은 것이나 좋지 않은 것이나
모두 똑같이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중도의 길을 갑니다.
여기서 탐욕이 없는 마음이란 세간에서의 유익하고 선한 마음이며,
확정할 수 없는 무기(無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의 상태에 대한 이해이지, 이 상태를 수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탐욕이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에
모두 출세간의 마음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탐욕이 없다고 해서 열반을 성취한 상태의 완전한 마음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렇게 분류한 것은 수행을 할 때의 마음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지,
여러 가지 종류의 마음이 있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분류할 때 포함시키는 출세간의 마음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할 때 제일 먼저 나타나는 탐욕이 있는 마음을 볼 때는
탐욕이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런 뒤에 탐욕이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바로 그 탐욕은 사라집니다.
그러면 다시 한 번 탐욕이 없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래서 탐욕이 없는 마음을 알아차려서
다시 탐욕이 있는 마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일하고 있는 그 마음을 새로 한 번 마음을 내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렵게 생각하셔서는 안 됩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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