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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98

通達無我法者 2010. 12. 27. 21:18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속마음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기만의 것을 가지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신견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현재 마음의 상태를 정확히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마음에 대하여 지적을 받아도 아니라고 부정하기 마련입니다.

몰라서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알아도 남에게 밝혀지는 것이 싫어서 아니라고 합니다.

 

내가 있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냥 있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만이

우리가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유신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금까지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에 대하여 대념처경에 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12연기의 대가이셨던 모곡 사야도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한국명상원에서 수행을 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공부하시면

현재까지 마음에 대해서 밝혀진 수행 자료를 상당부분 공유하는 셈입니다.

 

부처님께서는 16가지의 마음을 대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모곡 사야도께서는 마음을 알아차릴 때 외부에서 방문하는 의식,

내부에서 방문하는 의식, 그리고 주인의식으로 나누어서 알기 쉽게 13가지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한국명상원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방법은 4가지가 있는데

첫째, 있는 마음 알아차리기

둘째, 일어난 마음 알아차리기

셋째, 하려는 마음 알아차리기

넷째, 아는 마음 알아차리기입니다.

 

한국명상원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방법은 수행자들이

어떤 경우에 어떻게 마음을 알아차리는가에 대한 실천방법입니다.

그래서 막연하게 마음을 알아차릴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알맞은 방법으로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밝히신 마음에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사념처는 총론적인 뜻이 강합니다.

그리고 각 염처별로 마음을 알아차리는 구체적인 방법은 자세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이 근기에 따라서 세세한 수행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수행방법은 직접 수행을 지도받는 스승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4가지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에서 보면

부처님께서도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16가지의 마음을 말씀하시고 이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지 16가지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구체적인 실천방법은 직접 지도를 받는 스승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모곡 사야도의 가르침에서 3가지로 나눈 것은 매우 명료한 가르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안과 밖과 안팎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바탕으로 밖에서 들어오는 마음과 안에서 들어오는 마음과

주인의 마음으로 나눈 것은 명쾌한 가르침입니다.

모곡 사야도의 가르침을 보면 교학을 하셨기 때문에 경전에 매우 충실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한국명상원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방법은 위빠사나 수행자들이

여러 가지 상황에서 그때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수 있는 실천방법들입니다.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이런 통로가 있다는 것을 밝혀 쉽게 마음을 알아차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한국명상원 방법은 지금까지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이런 때, 이런 방법으로 마음을 알아차리면 된다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밝히는 4가지 방법 외에 수행자가 더 많은 방법을 계발하여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정리한 4가지 방법이라는 것에 숫자는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들 스스로 더욱 계발하셔서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방법을 배우기에 앞서 몇 가지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말씀드리고 나서

다음에 마음을 알아차리는 4가지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위빠사나 수행은 신, 수, 심, 법이라는 4가지 대상이 모여서 함께 작용하는 수행입니다.

첫째는 몸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느낌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는 법이 있어야 합니다.

법이란 마음이 알아차릴 대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상 4가지 대상이 모였다는 것은 이미 수행이 성립된 것입니다.

 

이 4가지 대상을 요약하면 우선 수행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구도인 정신과 물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신과 물질을 느낌으로 알기 때문에 반드시 느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신과 물질과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법이 있어야 합니다.

 

법의 의미는 매우 광범위합니다.

법은 수행의 기본이 되는 알아차릴 대상을 의미하고 있으며

또 이것들이 가지고 있는 실재하는 요소들인 진리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상으로서의 법과 진리로서의 법이 있습니다.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이때 정신과 물질과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법이고

그리고 정신과 물질과 느낌이 가지고 있는 실재하는 모든 대상을 통틀어서 말할 때도 법이라고 합니다.

 

4가지 대상인 신, 수, 심, 법을 4가지 알아차릴 대상이라는 뜻으로 사념처라고 합니다.

또는 4가지 대상에 대한 알아차림의 확립이라고도 합니다.

 

이때 4가지 작용 중에서 아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모든 것을 이끈다고 합니다.

마음이 몸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신념처라고 합니다.

마음이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수념처라고 합니다.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심념처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이 이런 마음의 대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법념처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념처 수행이란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몸, 느낌, 마음, 법이 모여야 수행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중에서 일하는 것은 마음인데 4가지 대상 중에서

하나의 대상을 좀 더 집중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각각의 염처별 수행입니다.

 

그래서 이런 두 가지 사항 때문에 사념처라고도 하고

또는 염처를 분리해서 신념처, 수념처, 심념처, 법념처라고도 합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이란 마음이 일하는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누구나 수행을 할 때 일차적으로 일하는 마음이 있어서 수행이 성립된다면,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은 다시 일하는 그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일반적으로 수행자들이 일하는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린 적이 없어서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마음이 몸을 알아차리거나,

마음이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나,

마음이 법을 알아차리는 것과 하등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을 색다르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마음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런 기본전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혼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1차적으로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는 마음을

다시 한 번 알아차리는 2차적 현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화가 났을 때 화가 난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화가 났을 때 화로 인해 생긴 거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은 몸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가 난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화가 났을 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이렇듯 나타난 대상을 어느 법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각각의 염처가 구별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화가 난 것을 알고 있는 그 마음을 다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화가 난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1차적 알아차림이고

화가 난 것을 아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2차적인 것입니다.

 

모르는 수행자는 마음이 다 하는데

구태여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이라고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이런 수행자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런 내용을 이해해야 합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일하는 그 마음을 새로 마음을 내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할 마음 16가지를 밝히신 것으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수행자 여러분!

다음으로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물질과 더불어 있는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마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마음은 물질과 함께 있으면서

모든 것을 이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마음은 물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꾸어서 물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마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마음은 물질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이 있어서 마음이 있는지 알지,

물질이 없으면 마음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물질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무색계에 있는 생명을 제외하면 마음을 가진 모든 생명은 몸이 있습니다.

생명계에서는 마음이 있는 생명을 유정이라고 하며

마음이 없고 파장만 있는 생명을 무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있는 유정이 바로 윤회하는 생명들입니다.

 

마음은 앉은뱅이고 물질은 장님입니다.

마음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저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의도를 통하여 움직입니다.

물질은 아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보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장님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동거하는데 마음이 앞서서 이것들을 이끕니다.

 

이렇듯 물질과 함께 있는 마음은 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마음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음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대한 상상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증명할 수가 없는 부분이라서 얼마든지 오해와 왜곡이 가능한 일입니다.

 

마음이 변하지 않고 항상하다는 것은

마음을 지혜의 눈으로 보지 못해서 생각해낸 가장 대표적인 견해입니다.

바로 여기서 초월적인 존재가 생기고 그리고 자아가 생깁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출현하시기 전에

일반적인 사상에 기조해 있는 인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변하지 않고 항상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초월적 존재가 생겨났고

마음이 항상 변하므로 실체가 없어 무아라고 알아서 해탈에 이릅니다.

이것이 모두 변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생긴 오해와 진실입니다.

 

여기서 이 두 가지 중에서 무엇을 믿건 개인의 자유이지만

수행을 해서 마음을 알아차리면 매순간 변하는 마음만 있지 자아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은 지혜를 얻고자 노력해서 도달한 수행자들의 결과입니다.

 

마음은 볼 수가 없지만 느낌과 지각과 의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을 통해서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갖가지로 일어나는 느낌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갖가지 인식들과 상상력 등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갖가지 종류의 의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래서 아는 마음인 식은 왕이고 수, 상, 행이라는 마음의 작용은 신하라고 합니다.

신하를 통해서 왕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느낌과 지각과 의도를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을 통해서 그 뒤에 숨겨진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는 마음이 모든 것을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알면 전부를 아는 것입니다.

 

마음은 태어남을 기원으로 하여 생긴 뒤에 죽음을 강어귀로 하여 끝이 납니다.

6가지 감각기관들로부터 흘러나온 강물들이 계속해서 흐르는 것처럼

마음은 수많은 지류를 계속해서 흐릅니다.

그러다 바다를 만나면 그 생명이 다합니다.

그리고 다른 형태로 바뀝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