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알아차렸다고 해서 한 번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차렸다고 해서 한 번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은 강하고, 알아차리는 힘은 약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먼저 이렇게 잘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때 미워하는 것이 제어되지 않는 것을 아는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이 제어되지 않는 것을 아는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해결되지 않았다고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알아차리게 되면 언젠가는 좀 더 나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 계속해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릴 때 코에서 일어난 호흡이 배까지 내려가는 것을 알아차려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기를 돌리는 수행과 같습니다.
기를 돌리는 수행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집중을 하는 수행이라서
위빠사나 수행의 목표와는 다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다른 수행에서 없는 알아차림이란 독특한 행위로 지혜를 얻는 수행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통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 하는 수행이 아니고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이기 때문에 한 곳에서 대상을 지켜봐야 합니다.
물론 한 곳에서 대상을 알아차리다가 다른 강한 대상이 나타났을 때는
자연스럽게 옮겨가서 알아차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매순간 의도적으로 대상을 바꾸어가면서 알아차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코로 들어간 호흡을 배까지 내려가면서 알아차려서는 안 됩니다.
어느 장소에서나 일어난 곳에서 꺼짐까지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한 번에 이 곳 저 곳을 알아차리면
몸과 마음이 가지고 있는 무상의 성품을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난 것은 일어난 곳에서 일어난 즉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몸에서 일어난 느낌은 1센티미터도 벗어나지 않고 일어난 자리에서 사라집니다.
그런데 한곳에서 지켜보지 않고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면
일어나는 것도 모르고 사라지는 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상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몸의 어느 부위에서 일어난 통증이나 전율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때 일반적으로는 통증이나 전율이 옮겨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상을 바르게 보지 못한 것입니다.
어깨에서 일어난 전율이 머리까지 옮겨갔다고 했을 때 사실 이것은 옮겨간 것이 아닙니다.
일어난 자리에서 일어난 즉시 사라지고
다시 다음에 일어난 자리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거듭 연속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깨에서 일어난 것이 머리로 가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것이 무상입니다.
한 순간에 몇 가지 대상을 알아차릴 때는
마음이 빠르게 이곳저곳을 옮겨가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한 순간에 두 가지 것을 알아차릴 때 마음은 분열현상을 겪습니다.
그래서 주의를 기울이기가 어려워 들뜨고 혼란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므로 한 순간에 한 장소에서 하나의 대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수행자들이 수행을 할 때 여러 가지의 혼란을 겪습니다.
그중 두드러진 하나가 여러 가지 대상이 동시에 나타났을 때
어떤 대상을 알아차려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호흡을 알아차릴 때 통증이 함께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망상이나 졸음이 함께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여러 가지가 함께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밖에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때 마음이 빠르게 이것저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마음이 워낙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의 대상이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지
어느 것도 함께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여러 가지 대상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도
아는 마음이 한 순간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한 순간에 하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금까지 호흡을 어느 위치에서 알아차릴 것인가에 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에는 어느 위치가 되었거나
호흡을 어떻게 알아차릴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호흡을 알아차릴 때 어느 위치이건 일어남, 꺼짐을 알아차립니다.
명칭을 붙여서 알아차리는 수행자는
어떤 것이나 자신에게 적합한 명칭을 붙여도 좋습니다.
호흡에 명칭을 붙이지 않는 수행자들도 편의상 호흡을 말할 때
일어남, 꺼짐이라고 말하겠습니다.
호흡을 명칭을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무상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호흡을 구별하기 위해서
호흡은 일어남, 꺼짐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호흡의 일어남, 사라짐과 무상의 일어남, 사라짐을 혼동하면
면담 중에 서로 오해를 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편의상 무상은 일어남, 사라짐으로 표현하고
호흡은 일어남, 꺼짐으로 표현하겠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호흡의 일어남, 꺼짐을 알아차립니다.
이 방법은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이때 가슴이나 배에서는 일어남, 꺼짐이라고 하지만
코에서는 들숨, 날숨이라고 합니다.
가슴이나 배에서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릴 때는
부풀고 꺼지는 바람의 요소를 알아차리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것이 일어남과 꺼짐의 성품입니다.
그러나 코에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릴 때는
코의 입구에 들어가는 바람과 나오는 바람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면
차츰 들어갈 때는 차가운 바람과 나올 때는 따뜻한 바람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 호흡의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겨냥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부터 집중력을 필요로 합니다.
처음부터 자세하게 알아차리려고 힘을 주면
호흡을 몇 번 밖에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힘을 주면 몸이 긴장하여 호흡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알아차리는 힘이 약하면 대상이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이 대상을 쫓아가지 못합니다.
둘째, 일어남, 꺼짐, 앉음을 알아차립니다.
호흡을 알아차릴 때 오랫동안 명칭을 붙여서 하면 자연스럽게 쉼이 길어집니다.
이때 호흡의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린 뒤에
엉덩이가 닿아있는 앉음을 분명하게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일어남, 꺼짐, 앉음을 합니다.
일어남, 꺼짐은 움직임이 분명하지만 쉼에서는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엉덩이가 닿아있는 앉음을 넣어서 쉬어 있는 공간을 대신합니다.
셋째, 일어남, 꺼짐, 앉음, 닿음을 알아차립니다.
일어남, 꺼짐, 앉음을 하고도 쉼이 더 길어지면 이때는 닿음을 합니다.
이때의 닿음은 발이 바닥에 닿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일어남, 꺼짐은 호흡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이지만
앉음과 닿음은 호흡이 아닌 몸의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앉음과 닿음은 일어남과 꺼짐을 한 뒤에 호흡이 정지된 상태가 되었을 때만 알아차립니다.
넷째, 호흡의 일어남, 꺼짐, 쉼을 알아차립니다.
호흡의 일어남, 꺼짐을 계속해서 알아차리면
호흡과 호흡 사이에 쉼이라고 하는 휴지가 생깁니다.
쉼은 호흡의 꺼짐 뒤에 움직임이 정지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일어남, 꺼짐, 쉼을 알아차립니다.
일어남과 꺼짐은 호흡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이지만
쉼은 호흡이 정지된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이라서 집중이 필요한 때입니다.
일어남과 꺼짐은 팽창하고 수축하는 바람의 요소라
움직임이 분명해서 알아차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쉼에서는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알아차림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짧은 순간에 마음이 달아납니다.
쉼을 대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마음이 순간적으로 대상을 놓쳐서
짧은 순간에 졸음과 망상이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쉼의 상태에서는 호흡이 정지된 것을 아는 앎을 해야 합니다.
앞선 방법에서는 일어남과 꺼짐을 한 뒤에 쉼이 생길 때 앉음과 닿음을 하지만
이 방법에서는 앉음과 닿음을 하지 않고 호흡이 정지된 상태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방법입니다.
다섯째, 처음에는 호흡의 일어남 하나만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알아차려서 약간의 집중력이 생기면 다음에 호흡의 꺼짐을 하나만 알아차립니다.
역시 이렇게 알아차려서 집중력이 생기면
다음에 호흡의 일어남, 꺼짐을 모두 알아차립니다.
수행자들이 좌선을 하면서 일어남, 꺼짐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울 때는
처음에 일어남 하나만을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수행을 시작할 때는 아직 알아차리는 힘이 생기지 않아서 집중이 되지 않을 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많은 것을 알아차리기보다 여유 있게 알아차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어남, 꺼짐 중에서 일어남 하나만을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일어남과 꺼짐 중에서 절반만 알아차리는 것이 됩니다.
얼마간 일어남 하나만을 알아차리다가 다시 꺼짐을 하나만 알아차립니다.
일어남을 오래 알아차리면 싫증이 날 우려가 있어서
같은 호흡에서 다시 일어남이 아닌 꺼짐을 하나만 알아차립니다.
그런 뒤에 집중력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일어남과 꺼짐을 모두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변화를 주어서 알아차리면 알아차리기도 쉽고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힘들이지 않고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수행을 하면 무상을 알기가 쉽습니다.
처음에 일어남을 알아차려서 자연스럽게 모든 것은 시작이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런 뒤에 다시 꺼짐을 알아차려서 모든 것은 끝이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런 뒤에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리면
모든 것은 일어나서 사라진다는 무상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념처경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내용입니다.
대념처경에서는 모든 대상을 알아차릴 때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지낸다,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지낸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지낸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차리면
자연스럽게 무상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상이 호흡을 알아차리는 다양한 방법입니다.
이 중에 어느 방법을 선택하거나 또는 다른 방법과 절충을 하거나 수행자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위빠사나 수행은 반드시 스승으로부터 직접 배워야 하기 때문에
스승이 사용하는 방법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스승의 수행방법과 다르면 바른 지도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호흡은 생명력이자 마음의 거울입니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호흡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호흡을 알아차릴 때는 마음의 상태까지 함께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괴로우면 호흡이 불규칙합니다.
마음이 분노에 쌓이면 호흡이 격렬해집니다.
마음이 평온하면 호흡도 부드럽고 미세합니다.
이러한 호흡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되는 분명한 대상입니다.
그래서 역대의 모든 부처님, 모든 벽지불, 모든 아라한,
모든 성자들이 호흡의 길을 따라 깨달음으로 갔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들도 매순간 새롭게 일어나고 꺼지는 호흡에 마음을 기울여
거기에 있는 진실을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호흡을 알아차리는 방법을 요약해보겠습니다.
첫째, 일어남, 꺼짐을 알아차린다. 또는 들숨, 날숨을 알아차린다.
둘째, 일어남, 꺼짐, 앉음을 알아차린다.
셋째, 일어남, 꺼짐, 앉음, 닿음을 알아차린다.
넷째, 일어남, 꺼짐, 쉼을 알아차린다.
다섯째, 먼저 일어남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두 번째 꺼짐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세 번째 일어남, 꺼짐을 알아차린다.
이러한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분들이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때
여러분들의 수행은 더욱 향상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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