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마음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우면 가슴의 느낌을 보십시오.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가슴에서 항상 느낌이 일어납니다.
욕망과 성냄이 있을 때는 가슴에 격렬한 느낌이 일어나며
무지할 때는 덤덤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이 있는 평온한 마음일 때는
고요한 느낌이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망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망상이 일어난 것을 알고 다시 소멸한 것을 알아차리면,
망상한 것을 알아차린 1차적 알아차림이 있은 뒤에
망상하는 마음을 알아차린 2차적 알아차림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시 망상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을 아는 3차적 알아차림이 있으면
망상을 하는 힘이 점차 약화됩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과정에서 망상의 힘은 약화되고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점점 적어집니다.
망상을 알아차려서 사라졌다고 해도 사실 순간적인 소멸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지속하면 일시적으로 소멸됩니다.
이러한 일시적 소멸이 거듭되면 지혜가 나서 완전한 소멸로 가까이 갑니다.
그래서 거듭거듭 알아차려야 하고 알아차림을 지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망상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현상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때는 단지 현재 망상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대치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은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도록 꼬리를 남기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망상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망상하는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상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아는 것이
망상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을 아는 것입니다.
망상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을 안 뒤에
다음 단계는 가슴으로 가서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망상하는 마음은 빠르게 사라지고
그 마음이 남긴 느낌은 항상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두근거린다거나 콩닥거리는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망상의 종류에 따라서 느낌이 다릅니다.
어떤 때는 강한 느낌이 있을 것이고
어떤 때는 약한 느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어떤 느낌이 있거나 없애려고 알아차려서는 안 됩니다.
단지 거기에 느낌이 있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알아차린 목적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망상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마치 물에 작은 돌을 던졌을 때 돌이 물에 가라앉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돌이 물의 표면에 닿았을 때 파문이 일어납니다.
돌은 가라앉아도 돌이 남긴 파문을 지켜보는 것처럼
망상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망상하는 마음이 남긴 흔적을
가슴에서 느낌으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가슴에서 망상한 마음이 남긴 느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알아차림을 지속할 수 있어서 좋고
마음과 느낌을 함께 알아차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나기 때문에 좋습니다.
어떤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가슴에 느낌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면
마음을 원인으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아는 지혜가 생깁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일어난 느낌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이라는 감각기관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을 압니다.
그렇게 되면 이 느낌이 나의 느낌이 아니고 감각기관이 느끼는 것이고,
이것은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일이나 어떤 사람으로 인해서
평생을 괴로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일로 평생을 자신을 자책하거나 후회하고 또는 그리워하면서 삽니다.
하지만 좋거나 싫은 일들이 모두 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그 일은 사라졌지만 그 일을 기억하여
항상 현재로 가져와서 고통을 겪는 것이 우리들의 실상입니다.
그래서 진실은 실재하는 것에 있고
그 실재하는 것은 현재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는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이미 지나갔으며 아직 오지 않은 것들입니다.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재 속에서만 지혜가 납니다.
그래서 과거나 미래로 갈 것이 아니고
가슴에서 실재하는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 순간을 경험한 몸과 마음은 그 순간에 사라졌지만,
단지 기억 속에 있는 것을 현재로 가져와서 재현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것을 알아도 이 힘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것이 과보로 사는 것이지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마음이 일어나서 사라진 뒤에
가슴의 느낌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면
차츰 그런 마음을 갖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가슴의 느낌이 싫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괴롭지 않기를 바라는데
그 방법을 몰라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가슴의 느낌을 계속 알아차렸을 때
두근거리고 콩닥거리고 감당하기 벅찬 느낌을 알아차리게 되면
그 느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괴로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의 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슴의 느낌은 없애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지켜보면 이런 이익이 생깁니다.
수행자는 어떤 괴로움이나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피하려고 하면 괴로움이 더 커지지만
있는 그대로 지켜보면 하나의 알아차릴 대상일 뿐입니다.
괴로움이 알아차릴 대상이 되면 그 순간에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바보처럼 단순하게 계속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괴로움이란 거대한 힘에 항상 압도되고 말 것입니다.
앞선 마음으로 인해 생긴 가슴의 느낌은
거친 느낌이 있고, 중간 느낌이 있고, 미세한 느낌이 있습니다.
망상의 종류에 따라서 가슴의 느낌도 모두 다릅니다.
그러므로 어떤 느낌이 되었거나 그냥 있는 그대로 계속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잠시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만두어서는 안 됩니다.
느낌을 없애기 위해서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고
단지 느낌이 있기 때문에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렇게 대상에 반응하지 않는 마음을 가질 때라야
비로소 고요함을 얻습니다.
수행자가 망상을 한 뒤에 망상한 마음을 빨리 알아차리면
가슴에서 일어난 느낌이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얼마간 망상을 한 뒤에 가슴의 느낌을 알아차릴 때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때 대상에 일정 부분 반응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럴 때는 거친 느낌을 알아차려야 하며
반응이 크지 않을 때는 미세한 느낌을 알아차리거나
덤덤한 느낌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만약 느낌이 없을 때는 덤덤한 느낌을 알아차려야 하며
없는 느낌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수행자는 단지 있는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느낌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태의 느낌을 느껴야 합니다.
가슴에 답답한 느낌이 있을 때는 사실 무거운 느낌이 있는 것입니다.
이때 답답한 것은 마음입니다.
갑갑하거나 답답한 마음이 있을 때는 가슴에 무거운 느낌이 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도 가슴을 지켜보면 가벼운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가벼운 느낌도 무거운 느낌과 똑같이 알아차려야 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괴로울 때는 가슴에서 콩닥거리거나 무거운 느낌을 알아차려야 하며
즐거울 때도 가슴에서 가벼운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가슴은 느낌의 보고입니다.
여러 가지 형태의 느낌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맥박이 있고 호흡도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느낌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반드시 가슴을 겨냥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슴은 단지 느낌이 강한 곳이라서 주목하는 것입니다.
수행자에 따라 머리에서 강한 느낌이 일어날 경우에는
머리를 대상으로 알아차려도 됩니다.
가슴에 강한 느낌과 호흡과 맥박이 함께 있을 때는
강한 것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호흡과 함께 격렬한 느낌이 함께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느낌을 함께 알아차려야 합니다.
사실은 호흡도 느낌입니다.
느낌이 차츰 미세해지면 맥박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때는 맥박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거친 느낌보다는 맥박이 미세하여, 고요할 때 맥박이 나타납니다.
맥박은 가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전신에 있음으로
맥박을 알아차릴 때는 꼭 가슴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사실 위빠사나 수행에서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하지만
어떤 대상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꼭 어느 대상이어야 된다는 것은 다른 수행에서 말하는 것이고,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느 대상이나 알아차리면 됩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림과 함께 알아차림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대상이나 알아차려서 알아차림을 지속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방법 외에 망상을 알아차리는 다른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망상이 지나쳐서 도저히 알아차림으로 제어가 되지 않을 때는
알아차릴 대상을 망상하는 마음에 고정합니다.
그래서 망상을 할 때 먼저 망상하는 것을 알아차린 뒤에
망상하는 마음을 계속해서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이때는 망상을 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어떤 망상이 일어나는지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문(門)중에서 의문(意門)에 마음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의 문에 알아차리는 마음을 고정하여
어떤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닭이 구멍에서 나오는 먹이를 나올 때마다
정확하게 부리로 쪼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망상하는 것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망상이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상이 계속해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구나 망상 없이는 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망상을 동반자로 삼아 알아차려야 합니다.
어느 땐가 집중의 힘이 커지면 망상이 없는 고요함 속에서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때 까지는 망상이 수행의 반려자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망상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알아차림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 외에 예외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가슴에 느낌이 강하게 나타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는 즉시 가슴의 느낌을 먼저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으로 인해 가슴의 느낌이 일어나는지 그 마음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 뒤에 다시 가슴으로 가서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이 방법은 앞서 말씀드린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가슴으로 가서 느낌을 알아차리는 방법이 아니고
먼저 가슴의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강한 느낌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은 역으로 느낌을 알아차려서 느낌을 일어나게 한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원인과 결과를 아는 중요한 지혜를 얻습니다.
망상이 일어났을 때 알아차리는 방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망상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리기,
둘째, 망상한 마음을 알아차리기,
셋째, 망상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기,
넷째, 가슴이나 머리에서 느낌을 알아차리기,
다섯째, 맥박이나 호흡을 알아차리기, 이상입니다.
그리고 망상을 알아차리는 다른 방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망상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리기.
둘째, 망상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알아차리는 마음을 고정하기.
그리고 다음으로 예외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가슴의 느낌을 알아차리기,
둘째, 가슴에 느낌을 일으키게 한 그 마음을 알아차리기,
셋째, 다시 가슴의 느낌을 알아차리기,
이렇게 망상을 알아차리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망상이 일어날 때 어떻게 알아차릴 것인가에 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위빠사나 수행의 신수심법을 고루 수행하는 결과가 됩니다.
또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알아차리면 바른 알아차림을 할 수가 있으며,
알아차림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방법을 기준으로 수행자가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일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서
좋거나 싫은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반응을 했다는 것은 이미 업을 생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으킨 원인에 대한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유신견을 제거하기 위해서 반드시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 여러분들이 마음을 알아차려서,
그 마음이 나의 마음이 아니라는 무아의 지혜를 얻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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