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모든 일에는 자신과 상대가 있습니다.
이 상대는 자신이 되기도 하고, 남이 되기도 하고, 세상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상대가 될 때는 아는 마음이 일하는 마음을 상대합니다.
이처럼 모든 일은 상대가 있어서
조건에 따라 일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나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며
내가 남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며
내가 세상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나의 욕망이 있으며
남과 세상도 각각의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오직 나의 욕망에 의한 것일 때는
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들이 저 마다의 특성을 가지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라고 아셔야 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늘은 망상이 나타났을 때 알아차리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좌선은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대상이 매우 많습니다.
망상, 통증, 졸음, 가려움 등등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망상입니다.
조용히 앉아서 수행을 하려면 제일먼저 나타나는 것이 망상입니다.
이러한 망상 때문에 대상을 겨냥하기가 어렵고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망상은 깨어서 대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좌선을 하려면 누구에게나 망상이 나타나서 수행을 방해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현재 여기에 있는 실재하는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지만
망상을 하는 것은 이러한 알아차림이 없이 생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망상은 좌선 중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경행을 할 때나
일상의 알아차림을 할 때도 언제나 나타나는 단골손님입니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나타는 것이 망상입니다.
잠을 자기 전에 하는 생각이나 잠을 자면서 꾸는 꿈도 망상의 일종입니다.
알아차림을 놓치고 마음이 달아나면 과거나 미래로 가서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또는 부질없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평생을 두고 계속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사는 전 생애가 망상으로 가득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실재하는 현재를 알아차리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한 인생을 살 때 현재를 알아차리는 진실한 시간은 극히 적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이 평생을 망상만 하고 사는지 모르고 삽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려고 대상을 알아차릴 때
비로소 망상 속에서 산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자꾸 달아나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기 때문에 비로소 망상을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을 할 때 대상을 알아차리고 싶어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망상 때문에 알아차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통해서
망상이 얼마나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할 때
그 대상에 집중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간 잠 못 이루는 많은 날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간 무수한 후회와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사실 이것이 모두 망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망상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망상이란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서 시기가 적절하지 않은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좌선 중에 망상을 하면
‘지금 할 일은 좌선이므로 다음에 이 생각을 하자’는 알아차림이 필요합니다.
망상을 하지 말라고 해서 무조건 모든 생각을 삼가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망상을 하면 ‘지금 이 생각은 이익이 없는 것이므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라는
판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도 어리석은 생각이 있고, 지혜가 있는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위빠사나 수행을 배울 때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수행을 할 수가 없다고 스승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스승님께서는 그것이 망상이니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수행을 하다가 매우 중요한 현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망상’, ‘망상’하고 명칭을 붙여서 알아차렸습니다.
그런 뒤에 바로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때 떠오른 생각은 매우 필요한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냥 망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소는 조금 억울했습니다.
그런 뒤에 다시 ‘계획함’, ‘계획함’하고 계획하고 있는 것을 다시 알아차렸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안 것이
망상이란 해야 할 일을 할 때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망상을 무조건 배척할 것도 없습니다.
망상은 단지 때에 맞지 않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망상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고 알아차려야 할 대상입니다.
망상은 워낙 오래 동안 하고 살아온 것이라서 그 힘이 큽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망상이 많다고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틈만 있으면 하는 것이 망상이기 때문입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망상을 없애려고 해서는 영원히 없앨 수 없습니다.
오직 망상하는 것을 계속해서 알아차리는 것만이
망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망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의 뜻은
지금 할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할일이란 지금 여기에서, 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상은 범부의 마음가짐이고,
알아차림은 성자의 마음가짐입니다.
망상 속에서 살면 할일을 하지 않고 다른 생각 속에 빠져서 사는 것이라서 비생산적입니다.
알아차림은 할일 하면서 깨어서 사는 것이라서 생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망상은 들떠서 사는 것이고,
알아차림은 고요함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망상을 한번해서 한번 알아차리는 것과
망상을 열 번해서 열 번 알아차리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망상을 한 것을 한번 알아차리면 한번 알아차리는 힘을 키운 것입니다.
그러나 망상한 것을 열 번 알아차리면 열 번 알아차리는 힘을 키운 것입니다.
그래서 망상을 하지 않으려 하지 말고,
망상 한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른 수행입니다.
오히려 망상한 것을 알아차려서
알아차리는 힘으로 삼을 수가 있다는 것을 아셔야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망상을 괴로워하실 것 없습니다.
망상은 대상에 정확하게 알아차림을 겨냥하지 않아서 마음이 달아나는 것이므로
대상에 마음을 정확하게 보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상과 알아차림과 아는 마음이 정확하게 일치 되고,
이 일치가 지속되면 망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망상이 많을 때는 마음을 대상에 보내는 알아차림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이때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과 함께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지혜가 팔정도의 정사유입니다.
지혜가 있는 수행자는 불필요한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필요한 것을 취합니다.
그러면 망상이 적어집니다.
망상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대상의 변화를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알아차릴 대상이 항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싫증이 나서 흥미를 잃게 되면 마음이 바로 달아납니다.
그러므로 알아차리는 대상이 매순간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언제나 대상의 변화를 주목해야 합니다.
수행자가 처음에 수행을 하면 자신이 망상을 하는 줄을 모릅니다.
그러다 수행을 계속하면 조금 망상을 하는 줄 압니다.
그리고 수행을 계속할수록 온통 망상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망상을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수행을 하는 힘이 생겨서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상을 할 때 먼저 망상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망상을 하며 지냅니다.
오직 유일하게 알아차림만이 망상하는 것을 끊을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을 기억이라고 하는 이유는 망상하는 것을
기억해서 알아차려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상을 정확하게 겨냥하면 망상을 하지 않지만
누구나 대상을 정확하게 겨냥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겨냥한 대상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리기는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망상과 함께 간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망상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고 알아차릴 대상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이것이 법이라는 사실입니다.
망상도 실재하는 현상의 하나이기 때문에 법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리면 끝입니다.
그러므로 망상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문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나타난 모든 대상은 나타날만해서 나타난 것이므로
단지 알아차리는 것으로 그쳐야 하겠습니다.
망상은 현재의 마음가짐을 측정하는 중요한 바로미터의 역할도 합니다.
어떤 특정한 망상이 거듭되면 사실 그 일을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생각이 거듭될 때는 그 일을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줄거리도 없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면
그때는 마음이 들떠 있는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망상하는 것을 알아차린 뒤에
‘지금 마음이 들떠있구나’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사실 망상은 좋아서 합니다.
싫어하는 일도 좋아서 자꾸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좋은 것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싫어하는 것을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계속해서 미워하는 것은
사실 미워하는 것을 좋아서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상은 집착으로 인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망상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망상은 좋아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망상의 실체를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수행을 할 때 망상을 하게 되면 먼저 망상하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망상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망상은 마음이 하므로 망상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망상을 하기 마련입니다.
망상은 마음이 합니다.
망상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망상하는 그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기 때문에
망상하는 마음의 실재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망상하는 마음이 더 분명하게 단절됩니다.
이렇게 망상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때로는
망상을 하는 원인을 알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에 속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망상하는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
있는 마음이 사라지고, 알아차리는 마음이 새로 일어났기 때문에
아무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에 망상을 한 마음의 원인을 알 수가 있기도 합니다.
가령 미워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미워하는 것을 집착한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을 알아차려서 얻은 지혜입니다.
집착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면
집착하는 마음이 적어지거나 나중에는 사라질 것입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어리석어서 집착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습니다.
어리석은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어리석음이 근본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원인을 알게 되는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가 나면 확실히 망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망상을 그냥 알아차려서 얻는 결과와
망상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서 얻는 결과는 다릅니다.
이렇게 망상하는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망상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을 다시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망상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과 연계해서
망상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역시 마음을 한 번 더 새로 내야 합니다.
망상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소멸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수행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수행이 발전하면 언젠가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단계로 일어난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소멸의 지혜를 아는 단계가 옵니다.
그러므로 대상을 알아차릴 때 사라진 것을 아는 것은 소멸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소멸을 아는 지혜가 생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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