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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19

通達無我法者 2010. 12. 27. 22:12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마음은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변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고 또 만난 사람과 헤어지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은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변하기 때문에

수행을 하고 싶어 하고 또 수행을 하기 싫어합니다.

이것이 마음입니다.

 

사실 마음이 그런 것이지 내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는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이익이 있으면 마음이 쉽게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이익으로 알지만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것을 이익으로 압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좌선이 끝날 때 알아차리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좌선을 시작할 때 알아차리는 방법과

좌선 중간에 알아차리는 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좌선이 끝날 때 알아차리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좌선이 끝나면 즉시 몸을 움직이지 말고 좌선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수행은 시작도 좋아야 하고 중간도 좋아야 하고 끝도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좌선을 끝내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어느 과정이나 좋지 않으면 좋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좌선을 끝내면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이러한 알아차림은 다음 위빠사나 수행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좌선을 끝내기 전에 좌선을 하고 있는 자세를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몸에 힘이 들어가 있는 부분이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수행자들이 습관적으로 항상 자세가 한쪽으로 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허리가 한쪽으로 굽어있는지 아니면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미간이나 입술, 어깨, 손 등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가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자세가 계속되면 통증이 생길 수 있으면 집중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좌선이 끝나고 몸을 알아차리는 것은

습관적으로 다음 좌선 시간에 다시 이러한 자세를 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몸의 자세와 몸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좌선이 끝나면 즉시 일어나지 말고 다음과 같이 알아차립니다.

‘지금 자세가 바른가?’ ‘몸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가?’ 하고 살펴봅니다.

 

그런 뒤에 다시 좌선이 끝난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지금 현재의 마음가짐은 어떤가?’ 하고 알아차립니다.

 

좌선을 시작할 때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기와 좌선 중간에도 일어난 마음을 알아차리기와

하려는 마음을 알아차리기와 아는 마음을 알아차리기를 적절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좌선이 끝났을 때도 끝날 때의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좌선이 끝날 때의 마음은 고요함이나 편안함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좌선을 했을 때의 결과를 아는 것입니다.

만약 좌선을 하고나서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면

좌선의 이익을 더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인은 다음에 다른 상황에서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그 마음을 알아차리면 즉시 좌선이 끝나서 경험한 마음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기억이 있으면 좋지 않을 때 도움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어떤 일로 인해서 괴로움을 겪게 되었을 때

그 순간의 마음을 알아차리면 즉시 좌선을 한 뒤에 경험했던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좌선을 할 때의 고요함이 입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쉽게 평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경험이 필요하며 필요할 때는 이러한 경험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아차리는 수행방법의 하나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렇게 알아차린 뒤에 조용히 눈을 뜨고 잠시 바닥을 주시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노력을 했는지, 알아차림은 적절했는지, 집중을 할 수 있었는지 살펴봅니다.

 

만약 노력이 부족했다면 알아차림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집중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노력이 많았어도 마음이 대상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노력이 지나치면 오히려 들떠서 대상을 바르게 겨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알아차리려고 해도 마음이 대상에 붙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대상에 머물지 못하고 툭툭 튕겨져 나옵니다.

 

이런 현상이 생기면 영문도 모르고 고생만 합니다.

이것이 더 잘 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긴장한 탓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노력이 지나쳐서 안정이 안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바로 이것이 노력이 지나치면 들뜬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은 언제나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알아차림에도 순도가 있습니다.

좌선을 하는 중에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적당히 알아차렸는지

아니면 마음을 집중하여 분명하게 알아차렸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단 한순간을 알아차리더라도 마음을 공손하게 모아서

오롯이 대상을 겨냥하여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순도가 높은 알아차림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알아차림의 정확도를 가늠할 수 있어야

다음에 알아차림의 질적 수준이 향상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은 순금의 순도처럼 나름대로의 순도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순도는 믿음과 지혜를 가지고 성심껏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망을 가지고 알아차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맑은 마음으로 대상을 겨냥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흐린 알아차림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을 계속하면 차츰 맑은 알아차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두는 알아차림에서 차츰 있는 알아차림으로 바뀌어

크게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맑게 대상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집중은 노력과 알아차림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집중은 근본집중이 아니고 찰나집중이기 때문에

대상과 하나가 되는 집중이 아닙니다.

그래서 깊게 몰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는 하나만 알아차리지 않고

다른 것도 자유롭게 선택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깊게 몰입을 하지 않으면 수행을 한 것 같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찰나집중에 의해서만이 지혜가 계발됩니다.

 

집중이 적절했는지 아는 것은 대상을 얼마나 알아차릴 수 있었는가와

아니면 졸음에 빠졌는가를 아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이 적절하지 못하면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또 집중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알아차림이 약해지면 즉시 졸음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좌선 중에 졸았다면 노력과 알아차림이 부족했고 집중이 많아진 것입니다.

 

알아차림과 집중은 칼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는 항상 함께 갑니다.

이때 칼이 바로 서도록 두 가지의 균형을 조절해주는 것이 노력입니다.

칼의 한쪽 면은 알아차림이고 다른 한쪽 면은 집중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바르게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바로 노력입니다.

 

이처럼 알아차림과 집중은 매우 미세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의 균형이 적절 했는가 살피는 것은

수행을 바르게 했는가, 아니면 바르게 하지 않았는가를 아는 척도입니다.

 

이렇게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의 균형을 알아차린 뒤에

노력의 많고 적음과, 알아차림의 부족과, 집중의 많고 적음을 알면

매우 훌륭한 마무리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는가를 알아차립니다.

좌선을 끝냈으면 다음 단계의 동작을 하려는 의도가 일어납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손을 들어서 바닥을 짚으려는 의도가 있은 뒤에 손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좌선을 하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그만 알아차림을 놓치고 맙니다.

 

하지만 이때 이러한 의도를 알아차리고 움직임을 알아차리면서 움직임을 지켜보면

하나의 동작에서 다음 동작으로 옮겨갈 때 알아차림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알아차림이고

그 다음에 알아차림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좌선을 할 때뿐이 아니고 좌선이 끝나고 나서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하나의 동작에서 다음 동작으로 옮겨갈 때

지속적으로 알아차림을 연계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이때 하나의 동작에서 다음 동작까지 알아차림이 지속될 수 있다면

이것은 매우 훌륭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했을 때 비로소 지혜의 불이 지펴집니다.

알아차림을 계속하는 것은 나무를 계속 비벼서 불을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 불이 번뇌를 소멸시키는 열반의 지혜입니다.

 

좌선이 끝나서 경행을 하기 위해서 일어나거나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 일어나거나

이처럼 알아차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심히 행동을 해버리기 때문에 알아차림을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하는 스승들은 하나의 동작에서 다음 동작으로 바뀔 때에도

계속해서 그 의도를 알아차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내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지켜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동작이 끝난 뒤에 다음 동작으로 연결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낸 뒤에 계속해서 이 마음자리에서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지켜봐야 합니다.

그러면 연속되는 의도와 그 의도로 인해서 생긴 몸의 움직임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이것이 사실은 전면에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자리에 마음을 두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동작에서 다음 동작으로 옮겨갈 때는 반드시 의도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려는 마음을 알아차리기인데 이렇게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마음을 내야 합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는 문장을 통해서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문장이 보이지 않는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좋은 도입과정입니다.

 

그러면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 손을 들어서 짚으려는 의도가 일어나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그리고 일어나는 동작 등을 자연스럽게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이때 하려는 마음에 계속해서 마음을 고정하면,

일어나서 걸어가려는 의도와 걸어가는 몸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대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하나의 동작에서 다음 동작을 알아차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연계가 됩니다.

 

그러면 좌선이 끝날 때 알아차리는 방법을 요약해보겠습니다.

 

좌선이 끝나기 전에 ‘지금 자세가 바른가?’ 하고 알아차립니다.

그런 뒤에 ‘지금 몸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가?’ 하고

미간, 입술, 어깨, 손, 허리를 알아차립니다.

 

그런 뒤에 좌선이 끝난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지금 마음의 상태는 어떤가?’ ‘지금 마음가짐은 어떤가?’ 하고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통하여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알아차렸는데도 아무런 마음을 알아차릴 수가 없다면

다음과 같이 알아차려도 좋습니다.

‘지금 마음이 편안한가, 마음이 들떠있지 않은가?’

그리고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 빠르게 근심, 걱정을 하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 근심, 걱정을 하고 있네, 라고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런 뒤에 마지막으로 ‘지금 내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고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좌선이 끝난 다음에 알아차릴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

 

지금까지 좌선의 시작과 좌선 중에 알아차리는 방법과

그리고 좌선이 끝났을 때 알아차리는 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데 기본이 되는 요소들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꼭 이렇게 따라서 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구도를 설정하고 여기에 충실하게 하다보면

여러분들은 크게 바른 수행에서 벗어나지 않은 수행을 하실 수 있습니다.

선택은 어려분의 몫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여러분 스스로가 얼마든지 응용해서

더 좋은 수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