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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23

通達無我法者 2010. 12. 27. 22:19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공연히 마음을 속박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입니다.

 

문제라고 여기는 것의 원인은 밖에 있지 않고

바로 자신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있습니다.

 

이러한 탐욕과 어리석음의 배경에는

반드시 나라고 하는 자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자아가 있다는 잘못된 견해는 생각을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통찰지혜로서만이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해서 경행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경행을 하면서 걷다가 설 때는 잠시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서 있을 때는 몸이 선채로 발이 바닥에 닿아 있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 때 몸이 서 있는 무거움이나 발이 바닥에 닿아 있을 때의 무거움이나 단단함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발을 움직여 오던 방향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이때도 방향을 회전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발을 계속해서 겨냥해야 합니다.

발의 움직임을 겨냥할 때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직접 눈으로 발의 움직임을 쳐다보고 알아차리는 것이 아닙니다.

 

경행을 할 때의 시선은 항상 서너 걸음 앞에 두고 마음만 발의 움직임을 겨냥합니다.

시선이 가는 곳으로 마음이 달아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를 쳐다보지 말고

시선은 어느 때나 항상 서너 걸음 앞에 고정해야 합니다.

경전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예 쳐다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서 있는 상태에서 오던 방향으로 돌 때는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이따금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않고

어깨가 크게 회전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발을 천천히 움직여서 방향을 바꿀 때 어깨도 함께 도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대상에 변화를 주어서 마음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회전을 할 때 어깨를 알아차린 뒤에 다시 발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선 뒤에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수행자는 이런 동작을 연속해야 합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계속하면서 알아차리는 힘이 생겼을 때는

더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걸을 때 오른발과 왼발 중에서 어느 발이 먼저 나가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발의 움직임에 집중하다보면

어느 발이 먼저 나가는 것 까지는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알아차리는 힘이 생기면 어느 발을 먼저 내딛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대상을 더 분명하게 겨냥하고 주시하는 것입니다.

 

서 있다가 어느 발이 먼저 나가는가를 알았으면

다음에 발을 내밀기 시작할 때는 반대쪽 발을 내밀어서 변화를 주는 것도 좋습니다.

가령 오른발부터 앞으로 내미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일단 선 뒤에 다시 걸을 때는 왼발부터 앞으로 내밀어서 변화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선 뒤에 오던 방향으로 돌 때

어느 쪽 방향으로 도는가를 알아차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수행자는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한쪽으로 도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도 무심히 하는 습관입니다.

 

그러나 이제 움직임을 하나하나 지켜보면

이것이 모두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습관적인 행위도 사실은 모두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서 있다가 어느 방향으로 도는가를 알았으면

다음에는 반대쪽 방향으로 돌아서 변화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가령 서 있다가 오른 쪽으로 도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다음에 돌 때는 왼쪽으로 돌아서 변화를 주면 됩니다.

이런 것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알아차리면 알아차리는 힘이 차츰 더 강화됩니다.

 

수행자는 마음이 계속해서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태해져서 무기력해집니다.

사실 마음이 일을 하는 것은 몸이 일을 하는 것보다 힘들지 않습니다.

수행은 마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닌데

게으름에 빠지면 마음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차리면

마음이 부지런히 일을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일하는 것은 노력입니다.

노력은 마음의 노력과 몸의 노력이 있습니다.

수행은 마음의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노력에 몸이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노력은 몸의 노력보다 힘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의 노력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할 줄 몰라서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믿음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 하나 저절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이러한 조건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제가 ‘마하시’에서 수행을 할 때

몸의 여러 곳을 알아차리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사야도께서는 이것이 치매 예방에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뜻밖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이 대답을 듣고 위빠사나 수행의 궁극의 목표는 도과를 얻는 것이지만,

건강하게 사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도 함께하는 수행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치매 예방이라고 말한 것은 항상 마음을 깨어있게 하여

몸에서 생기는 병을 예방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마하시’의 이런 수행방법이

꼭 치매 예방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각성된 상태로 있으면 지혜가 날 뿐더러

몸의 병을 치유하는 효과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위치를 알아차리는 것은

마음을 새롭게 하여 계속해서 알아차림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도 있으며

계속 새로운 대상을 선택하여 알아차림을 지속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지속이 바로 집중입니다.

 

이런 것들이 스승이 만들어내는 수행의 방편입니다.

이러한 방편을 사용하는 것은 오직 수행자의 근기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바로 이러한 수행 방편이 팔만 사천 법문인 것입니다.

 

경행을 하는 방법을 몇 가지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실내나 실외에서 일정한 거리를 왕복하면서 걷는 수행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경행 방법은 처음에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음에 가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리고 도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서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리고 가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서로 반복합니다.

그래서 서고, 가고, 서고, 돌고, 서고, 가고를 반복합니다.

 

수행자가 수행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자신의 근기에 맞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방법을 자신이 만들어서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를 받는 스승이 있다면 반드시 스승의 법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발의 움직임을 3단계로 나누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하나, 몸이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발이 바닥에 닿은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무거움과 단단함을 알아차립니다.

 

둘,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알아차리는 힘이 있을 때는 걸으려는 의도를 알아차려도 좋습니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는 항상 처음에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시작해야 합니다.

 

셋, 발의 뒤꿈치가 들리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오른발, 왼발의 뒤꿈치가 들리는 것 하나만 계속해서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얼마간 반복해서 알아차린 뒤에 다시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때 뒤꿈치가 들리는 것의 명칭은 일어남이나 들음이나 들어서나 아무 것이나 좋습니다.

 

넷, 발이 바닥에 닿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오른발, 왼발이 바닥에 닿는 것 하나만을 계속해서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얼마간 반복해서 알아차립니다.

이때 발의 움직임의 절반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때의 명칭은 사라짐이나 놓음이나 닿음이나 아무것이나 좋습니다.

그리고 명칭을 붙이지 않고 그냥 발의 움직임만 지켜보아도 좋습니다.

 

다섯, 일어남 사라짐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발의 뒤꿈치가 들리는 것과 발이 바닥에 닿는 것을 하나로 모아서 전부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얼마간 반복해서 알아차립니다.

이때 발을 절반만 알아차리지 않고 한쪽 발의 움직임을 전부 알아차린 뒤에

다시 다른 쪽의 발의 움직임을 전부 알아차립니다.

이때의 명칭은 일어남, 사라짐입니다.

그리고 들어서 놓음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둘째, 발의 움직임을 3단계로 나누는 두 번째 방법입니다.

 

하나, 몸이 서있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발이 바닥에 닿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무거움이나 단단함을 알아차립니다.

 

둘,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알아차리는 힘이 있을 때는 걸으려는 의도를 알아차려도 좋습니다.

무엇을 시작할 때나 항상 있는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고 시작해야 합니다.

 

셋, 오른발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왼발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오른발, 왼발이 움직이는 것을 전부를 계속해서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얼마간 반복해서 알아차립니다.

이때 한쪽 발의 움직임을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넷, 들어서 놓음을 알아차립니다.

발을 드는 것과 놓는 것으로 절반씩 나누어서 한 번에 모두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얼마간 반복해서 알아차립니다.

발의 움직임을 두 단계로 나누어서 계속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오른발, 왼발이지만 네 번째는 들어서 놓음이라고 해서

하나의 움직임을 두 개로 나누어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다섯,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알아차립니다.

발을 드는 것과 앞으로 내미는 것과 그리고 놓는 것,

세 가지로 나누어서 그것을 한 번에 모두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경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알아차립니다.

 

셋째, 발의 움직임을 4단계로 나누는 방법입니다.

 

하나, 몸이 서있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발이 바닥에 닿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무거움이나 단단함을 알아차립니다.

 

둘,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알아차리는 힘이 있을 때는 걸으려는 의도를 알아차려도 좋습니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는 항상, 먼저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 닿음을 알아차립니다.

오른발, 왼발이 바닥에 닿는 것 하나만 계속해서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얼마간 반복해서 알아차립니다.

이때는 발의 움직임의 절반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넷, 오른발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왼발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오른발, 왼발이 움직이는 것을 전부를 계속해서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얼마간 반복해서 알아차립니다.

이때는 한쪽 발의 움직임을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알아차리고

다시 반대쪽 발의 움직임을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알아차려야 합니다.

 

다섯, 들어서 놓음을 알아차립니다.

발을 드는 것과 놓는 것을 절반씩 나누어서 한 번에 모두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얼마간 반복해서 알아차립니다.

이때 발의 움직임 하나를 두 단계로 나누어서 계속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여섯,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알아차립니다.

발을 드는 것과 앞으로 내미는 것과 그리고 놓는 것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한 번에 모두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경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알아차립니다.

 

이러한 경행 방법 이외에 5단계 또는 6단계로 나누어서 알아차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3단계의 기본적인 방법에서 좀 더 세밀한 방법을 포함시킨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자유롭게 자신에 맞는 방법을 만들어서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5단계의 방법은 발을 들으려는 의도와 발을 드는 것과 앞으로 내미는 것과

그리고 놓는 것과 누르는 것, 이런 것들을 세세하게 더 자세하게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이때는 매우 천천히 집중을 하기 위해서 하는 동작이므로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발의 움직임에 집중하면 더 높은 집중력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상으로 경행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경행은 언제나 우리가 걸을 때 알아차리면서 걷는 것을 말합니다.

알아차리면서 걷는 방법은, 길을 걷는 것이나 한정된 공간에서 왕복하면서 걷는 것이나

모두 경행에 속합니다.

 

이러한 경행을 통해서 정진력을 키우고,

그 정진력으로 고요함을 얻어서

집중의 지혜가 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