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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70

通達無我法者 2010. 12. 28. 01:26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한 인간이 살아온 과거와 살고 있는 현재와 앞으로 올 미래를 통틀어서

어느 때나 인격체로 보지 말고 단지 원인과 결과로 보아야 합니다.

 

과거에 내가 살았던 것이 아니고 그 순간의 정신과 물질이 산 것입니다.

현재에도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원인으로부터 전해진 과보의 결과로

정신과 물질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후의 미래나 다음 생에도 내가 옮겨 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원인이 미래의 결과로 갑니다.

 

여기에 나라고 하는 것은 없고

단지 정신과 물질이 원인과 결과로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지속되는 현상만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원인이 있어 생긴 결과라면

원인이 없을 때는 결과가 없는 것도 분명한 진실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

희열로 인해 몸과 마음에서 생기는 현상은 5가지가 있습니다.

 

하나, 약한 희열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몸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몸에 털이 일어서기도 합니다.

때로는 소름이 끼치거나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섭니다.

이런 때는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나타난 현상을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희열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가지의 느낌은

수행의 과정에서 생기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합니다.

 

둘, 순간적인 희열이 있습니다.

마치 전기에 감전이 된 것처럼 몸에서 찌릿찌릿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번갯불이 번쩍하는 것처럼 빠르게 일어나서 사라집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는 기분이 좋고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런 느낌을 즐겨서는 안 됩니다.

 

셋, 파도와 같은 희열이 있습니다.

파도를 타는 것 같이 공간을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일어납니다.

이와 같은 느낌이 몸에서 나타날 때는 계속해서 파도가 밀려오듯이 나타납니다.

이것도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넷, 들어 올리는 희열이 있습니다.

몸이 공중에 뜨는 것 같은 느낌이 일어납니다.

실제로 몸이 공중으로 부상하거나 순간적으로 장소를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움직일 때는 자세의 흔들림이 없이 공중으로 뜨거나

몸이 순식간에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옮겨집니다.

 

다섯, 퍼지는 희열이 있습니다.

온몸에 느낌이 스며들면서 퍼집니다.

솜에 기름이 스며들듯이 전신에 느낌이 퍼지면서 충만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수행자는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을 때는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만약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는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기도록 잊지 않고 노력해야 합니다.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확립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11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합니다.

법의 공덕을 생각합니다.

승가의 공덕을 생각합니다.

자신의 계행을 생각합니다.

자신의 너그러움을 생각합니다.

천인들을 생각합니다.

고요함을 생각합니다.

거친 사람을 멀리합니다.

믿음을 가진 인자한 사람을 사귑니다.

신심을 일으키는 경전을 생각합니다.

희열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다섯 번째,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經安覺支]입니다.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나타났을 때 계속해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

다음 단계인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나타납니다.

이 상태는 집중력이 생겨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고 안정된 상태입니다.

 

이때는 피로하지 않고 매우 편안합니다.

그리고 특별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요하고 편안함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아무런 동요도 없이 잔잔한 호수의 물처럼 평화롭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상태를 열반으로 잘못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도 수행과정의 하나입니다.

평안함을 즐기는 마음이 일어나면 게으름으로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 상태에 이르면 평안함을 즐기려고 합니다.

그러면 수행이 퇴보합니다.

수행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안함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평안함의 특성은 고요함으로 인해

마음과 마음의 작용들에서 불안함을 가라앉게 합니다.

그래서 불안함을 없애는 기능을 합니다.

평안함은 수행자들에게 침착함으로 나타납니다.

 

수행자는 평안함이 나타났을 때는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알아차리고,

평안함이 없을 때는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확립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7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안락한 기후를 선택해야 합니다.

편안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이 업의 주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거친 사람을 피해야 합니다.

침착한 사람과 사귑니다.

평안함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여섯 번째,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定覺支]입니다.

 

집중은 고요한 마음의 집중을 의미합니다.

집중을 삼매(三昧), 또는 정(定)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대상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으면 고요함이 생기는데 이 상태가 집중입니다.

이처럼 집중은 알아차림이 지속될 때의 현상으로

마음이 대상과 밀착되어있을 때 나타납니다.

 

마음이 대상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대상에 흥미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순간 변하는 대상의 성품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알아차리는 대상이 항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흥미를 잃지만

대상을 지켜보는 느낌이 같은 것이 아니고

매순간 다르다는 것을 알면 재미를 느껴 대상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집중의 특성은 방황하지 않고 심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평화와 평온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평화는 행복한 느낌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면서 행복을 체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집중이 따르게 됩니다.

 

팔정도를 계정혜라고 하는데 계는 알아차림이 있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통해서 청정하게 계(戒)를 지키면

다음단계로 정(定)의 상태가 옵니다. 이 정이 집중입니다.

바로 이 정의 상태로 인해 혜(慧)가 계발됩니다.

 

그러므로 수행의 알아차림으로 계율을 지키게 되며,

이러한 알아차림의 지속으로 집중이 되고.

이러한 집중에 의해 지혜가 계발됩니다.

 

그러므로 집중이 없이는 지혜가 계발되지 않습니다.

사마타 수행은 정의 상태에서 머뭅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은 정에 머물지 않고 찰나집중을 해서 지혜를 계발합니다.

 

집중은 수행의 성공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수행을 시작할 때 일차적 목표는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알아차림을 지속하여 집중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마지막에 지혜가 계발됩니다.

 

사실은 불교의 팔만 사천 법문이 모두 알아차림과 집중을 위한 방편입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모든 가르침은 바로 알아차림으로,

이것은 집중을 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수행자들의 근기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수행자의 근기에 맞춰

다양하게 설법하여 알아차림과 집중을 유도한 것이 바로 팔만 사천 법문인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는 사마타 수행과 달리 지나치게 집중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연스럽게 알아차림을 지속시켜서 집중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집중을 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노력을 하면 사마타 수행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는 바라는 것 없이 알아차려야 하고,

없애려고 하지 않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만이 바른 찰나집중력이 생깁니다.

 

집중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근접집중과 근본집중과 찰나집중입니다.

근접집중과 근본집중은 사마타 수행의 집중입니다.

그리고 찰나집중은 위빠사나 수행의 집중입니다.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의 차이는 알아차리는 대상과 집중의 차이로 구별합니다.

사마타 수행은 고유한 특성이 없는 관념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상에 가까이 가는 근접집중을 한 뒤에

대상과 하나가 되는 근본집중을 해서 고요함을 얻습니다.

이것이 색계선정과 무색계선정입니다.

 

사마타 수행은 지혜가 계발되지 않기 때문에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마타 수행을 할 경우에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서 적당한 시기에

위빠사나 수행으로 전환해서 지혜를 계발해야 비로소 도과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찰나집중은 고유한 특성이 있는 것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의 집중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몸과 마음에 있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느낌은 모두 고유한 특성이 있으며 실재하는 현상입니다.

느낌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대상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느낌을 보는 마음도 항상 변합니다.

여기서 찰나집중이 되어 대상의 성품인 무상, 고, 무아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찰나집중은 대상과 하나가 되지 않고 대상을 객관적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이기 때문에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대상의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색계, 무색계 선정을 모두 끝내시고 6년 동안이나 수행을 하신 뒤에

스스로 찰나집중을 통해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시고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 있는 느낌을 통찰하시고

찰나집중을 통하여 법의 성품을 보시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바라고 대상과 하나가 되는 근본집중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죽음에 이르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신 뒤에 느낌을 발견하셨고

이 느낌을 통하여 최고의 지혜인 무상, 고, 무아를 알아 해탈에 이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의 찰나집중입니다.

 

수행을 해서 집중력이 생기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아는 지혜가 생깁니다.

그런 뒤에 사라짐만 있는 것을 아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때 몸이 사라졌다고 해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실재하는 몸은 있지만 다만 집중에 의해 감각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때 몸이 사라졌다고 해서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때의 몸을 나의 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즉시 유신견이 생겨 지혜가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단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대상이 사라진 것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사실은 이때 몸이 사라짐으로 인해 유신견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몸을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사라진 몸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자는 이미 소멸한 것을 다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소멸했다면 그만큼의 지혜가 향상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소멸한 것을 찾는다면 다시 원래로 되돌아갑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사라진 것은 찾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빠사나 수행이 번뇌를 소멸하는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사라졌다는 것은 번뇌의 대상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열반이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사라진 것인데 일차적으로는 몸의 소멸로 나타납니다.

그런 뒤에 마음까지 소멸하는 것이 열반이므로

어떤 소멸이 있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나타난 상태를 그대로 지켜보아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수행자는 마음집중이 되었을 때는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알아차리고,

마음집중이 되지 않았을 때는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확립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11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알아차림으로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합니다.

오근의 기능이 균형을 이루도록 합니다.

사마타 수행을 할 때는 표상에 익숙하도록 합니다.

 

마음을 분발하기 위해서 법에 대한 고찰, 정진,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를 일으켜야 합니다.

노력이 지나쳐 마음이 들떠있을 때 알아차림으로 마음을 가라앉게 해야 합니다.

낙심할 때 부처님의 공덕을 숙고하여 마음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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