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20

通達無我法者 2010. 12. 31. 02:31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선(善)한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연기의 사슬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해야 합니다.


선이란 단지 선으로 그치지 않고, 3가지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선하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관용입니다.

그리고 관용에 뒤따르는 보시가 선행되어야합니다.


둘째는 지계입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계율을 빨리어로는 ‘실라(sila)’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덕스런 행위, 훈련, 도덕적 행위를 계율이라고 말합니다.


계율은 사람들에게서 번뇌를 빼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불행을 막아줍니다.

계율이 없으면 즉시 위험이 따릅니다.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풍전등화와 같습니다.

그래서 계율의 진정한 의미는 삼가는 것이고, 막아서 보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계율을 매우 딱딱하게 생각하기 마련인데

오히려 계율은 가장 부드러운 것입니다.

계율 때문에 우리가 바르게 살수가 있습니다.

계율이 없다면 우리는 축생처럼 살아야합니다.


사람이 계율 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안전합니다.

그리고 계율 안에 있을 때 가장 칭송을 받습니다.

그래서 계율처럼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는 재산 중에서 죽어서 가지고 가는 재산이 진정한 재산입니다.

죽을 때 가지고 가는 재산이 바로 계율을 지킨 것입니다.

계율을 지켰으면 선한 행위를 한 것으로, 그에 상응하는 과보가 뒤따릅니다.

그래서 죽을 때 계율을 가지고 간다라고 아셔야합니다.


그 사람이 지킨 계율이 있으면 계율을 지킨 만큼의 과보를 받을 것이고

계율을 지키지 않았다면 계율을 지키지 않은 그 과보를 가지고

다음 생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계율은 딱딱한 것 같지만 가장 부드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계율을 지킨 사람은 남의 신뢰를 받습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진급하거나 출세를 하거나 사업이 번창 합니다.


계율은 세간에서나 출세간에서 자기를 지켜주고

평화롭게 해주는 안정장치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계율의 바탕위에 서 있지 않으면

모래위에 집을 지은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부정한 방법으로 가정이 있는

어떤 이성과 관계를 맺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것은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이지

결코 상대를 위한 행위는 아닙니다.

상대나 그 배우자 가족에게는 크나큰 범죄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감각적 욕망을 위해서 계율을 어겼다면

그 큰 과보를 어떻게 받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의 욕망이 남의 불행이 됩니다.

더 나가서는 나의 욕망이 이 사회를 불행하게 됩니다.


불선업을 가진 사람은 선업이 괴롭고 어색하기까지 할 것입니다.

선업이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과 같아 불편할 것입니다.

그래서 선하지 못한 동류끼리 모입니다.


그러나 선업을 가진 사람은 불선업이 괴롭고 어색합니다.

그래서 선한 일에는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합니다.

그리고 편안하기 때문에 선한 사람과 어울립니다.


여러분! 계율이란 필연적으로 고요함을 얻는 전단계입니다.

계율을 지키지 않고는 고요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고요함이 없으면 지혜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의 출발은 계율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그런데 이 딱딱한 계율을,

하기 힘든 계율을 모든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계율처럼 쉬운 게 없습니다.

그 많은 계율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은 위빠사나 수행자들은 ‘알아차림’ 그거 하나를 계율이라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문이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종류의 법문을 통상적으로 말하는 숫자입니다. 

그 팔만사천법문을 줄이면 37조도품이라고 말합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방법들, 기능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37조도품을 줄이면 8정도를 말합니다.

그 8정도가 바로 계 정 혜 3학입니다.

그 계 정 혜 3학을 줄이면 바로 알아차림 하나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알아차림 하나면 팔만사천법문을 관통합니다.


우리가 특별히 계율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 없습니다.

깨어서 대상을 알아차리는 순간에는 번뇌라는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결코 고요함에 이를 수 없고,

고요함에 이르지 못하면 지혜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수다원이 되는 최초의 시작은 계율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다함이 되는 시작도 역시 계율로부터 시작해서 고요함과 지혜를 얻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나함의 도과도 계율로부터 시작해서 고요함을 얻어서 지혜를 얻습니다.


마지막에 아라한의 도과도 역시 계율로부터 시작해서 고요함을 얻어

아라한의 무인작용심이라는 지혜가 나서 해탈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계율은 모든 시작의 출발입니다.

그러나 계율은 결코 우리들에게 고통스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매우 부드러운 것이고, 우리들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조건이라고 이해하셔야 되겠습니다.


보통 계율을 말할 때 우리는 5계와 8계를 말합니다.

이런 계율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며

선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고귀한 정신에 속합니다.


인간이 4악도의 존재와 다른 것은 계율을 지키는 것이며

바로 이런 계율을 통해서 해탈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계율을 지키면 번뇌가 생기지 않고 안전하며

자신과 타인의 불행까지 함께 막아서 보호해줍니다.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계율은 먼저 다섯 가지입니다.

살생, 도둑질, 간음, 거짓말, 술을 삼가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수행을 하는 장소에서 지켜야할 계율은

다섯 가지에서 세 가지가 추가되어서 8계를 지켜야합니다.


다섯 가지 계율에 세 가지를 포함한다는 것이

여섯 번째 정오 이후에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시 공양을 하신 뒤에 오후 불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춤추고 노래하며 몸을 치장하지 않는 것이 7계입니다.


마지막 수행자가 지켜야할 8계중에서 여덟 번째는

호화로운 침대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계율 안에 있을 때만 숭고한 행복이 보장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알아차림 하나면 바로 이러한 계율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계율을 지키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지혜를 얻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계율을 지키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습니다.

계율은 수단입니다.

계율을 목표로 했을 때는 계율지상주의자가 되어서

잘못된 것을 비난하거나 배척하는 또 다른 극단이 생깁니다.


계율을 지키면 마음이 청정해지고,

마음이 청정해지면 견해가 청정해지고,

견해가 청정해지면 지혜를 얻기 때문에,

그래서 계율이 모든 것의 바탕이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지혜는 계율을 뛰어넘는 것이지만, 계율이 지혜를 만듭니다.

그래서 계율과 지혜는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수행의 두 축이라고 보아야 됩니다.


계율 없는 지혜가 있을 수 없고,

지혜는 반드시 계율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유념하셔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 이러한 계율을 지키는 이익이 과연 무엇일까요?

네! 계율의 이익은 많습니다.


계율을 지키는 마음은 선한 마음이라서 즐겁습니다.

계율을 지키지 않는 마음은 선하지 못한 마음이라서 항상 괴롭습니다.


계율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번뇌를 소멸시킵니다.

그래서 삼가는 것으로부터, 막아서 보호하고 범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계율은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기쁨이 생기게 하여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력을 얻어 지혜가 나게 합니다.


계율은 맑은 정신으로 노력하여 재산을 모으게 하지만

계율이 없으면 정신이 흐려져서 재산이 쉽게 사라집니다.


계율은 좋은 소문이 나서 평판이 좋고, 높은 지위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계율을 지키면 어느 장소, 어떤 사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밝은 얼굴을 하고 지낼 수가 있습니다.


계율을 지키면 죽을 때 허둥대지 않고 맑은 정신과 기쁜 마음으로 죽게 됩니다.

우리가 죽을 때 마음 상태에 따라서 다음 생이 결정된다고 한다면,

계율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에 하나입니다.


계율은 자신의 수행을 위해서, 잘못된 것을 막아서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지,

남을 비판하고 결점을 찾는데 사용하는 무기는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계율을 통해서 우리들의 고결한 삶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보통 우리가 지켜야 될 계율은 자식은 부모를 위해서 부양해야 되고, 

그들의 의무를 행하고, 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의 상속물과 그 이외의 것들을 가치 있게 활용해야 되며

멀리 떨어진 친척들을 도와주면서 그의 부모를 돌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자식에 의해서 부양받은 부모들은 악에 물들지 않게 하며,

좋은 일을 하게하며, 그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고, 알맞은 배우자와 결혼하게하고,

때가 되면 그들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것, 이런 것도 계율에 속합니다.


우리가 계율을 지키는 것 중에 제자는 스승을 위해서 높이 공경하며,

시중을 들어주며, 주의 깊게 경청하고, 개인적으로 도와주며,

가르침을 받으면서 존경스럽게 모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렇게 계율은 딱딱한 것이 아니고 지켜야 될 하나의 의무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제자들에 의해서 이렇게 섬김을 받은 스승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지고의 수련으로 제자들을 훈련시키며, 그들이 가르치는 것을 잘 받아들이도록 하여 

그들에게 적합한 기술과 모든 학문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좋은 친구를 소개해서

사귀게 하고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지켜야 될 계율이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정중하고, 무시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되며,

아내에게 필요한 권한을 넘겨주고, 장신구들을 주면서 돌보아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남편에 의해서 보살핌을 받은 아내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자신의 의무를 완벽하게 완수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환대하며, 믿음직스럽고,

남편이 가져온 것을 보호해주고, 근면해서 의무를 하는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선량한 자들은 그들의 친구들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

관용을 지키고, 정중한 말을 하고, 선한 것을 증진시키고,

평등하고 진실하게 사귀어야 합니다.


이처럼 계율은 딱딱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지켜야할 바른 규범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율 안에 머물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계율이 있는 곳에서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계율이 있는 곳에서는 관용 자애 지혜가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수행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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