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59

通達無我法者 2011. 1. 8. 22:12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바른 법 앞에서는

누구나 심술궂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바른 법에는 자아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여

매사에 자아를 강화하려는 행동과 말을 합니다.


정법 수행이 어려운 것은 정법조차도 자아를 가지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의 가르침 없이는 한 발도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지혜가 있는 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만

자아가 강하여 지혜가 없는 사람은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기 견해만 주장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가난해서 고생을 했기 때문에 잘 사는 사람이 있고,

고생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괴로움 때문에 지혜가 나서 괴로움을 극복하는 사람이 있고

괴로워서 인생을 포기하거나 더 나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자가 되어 더 큰 부를 축적하는 사람도 있고

부자가 되었다가 몰락하여 비참한 사람도 있습니다.

지위를 얻은 뒤에 더 명예를 얻는 사람도 있지만

지위 때문에 사회적 지탄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항상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 선택의 폭은 시궁창에서 천상까지 넓혀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이것을 결정합니까?

이는 오직 자신의 마음가짐이 결정합니다.

또한 이전에 행한 선한 행위와 불선한 행위의 과보가

우리의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재생연결식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사몰심이 있어서

인간으로 태어나는 재생연결식이 성숙되었을 때,

비로소 인간의 몸과 마음을 받습니다.


앞선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재생연결식은

네 가지 세계에 태어남을 말하는데,

거의 모든 생명의 재생연결식은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의 사악도의 재생연결식이라는 것을 유념하셔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재생연결식하면 인간의 재생연결식만 생각하기 쉽지만,

부처님께서는 인간으로 태어나기는 매우 어렵고,

거의 모든 생명은 사악도의 재생연결식에 의해서

사악도의 몸과 마음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악도의 몸과 마음을 받는 재생연결식은

바로 잘못된 견해로 인해서 윤회를 거듭하고,

안 좋은 세계의 재생연결식을 받습니다.


바로 잘못된 재생연결식을 만든 그것들은 유신견, 상견, 단견에 의한 것들입니다.

오늘은 상견과 단견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유신견(有身見)이란 '몸은 있다'

그런데 그 몸이 나의 몸이라고 하는 견해를 말합니다.


유신(有身)은 ‘몸은 있다’인데 거기에 ‘견’이 붙으면

그것이 나의 몸이라고 하는 잘못된 견해, 삿된 견해를 말합니다.


이 유신견은 몸이 나의 몸이라고 하는 것과

마음이 나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함께 포함한 말입니다.


유신견에 사로잡힌 범부들에게 죽음은 한 개별적 실체의 소멸이나

또 다른 보금자리의 존재로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바로 단멸론에 대한 믿음인 단견과,

영원히 다른 몸이나 보금자리로 옮겨간다는 믿음인 상견의 전도된 견해입니다.

바로 이 유신견으로 인해서 상견과 단견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몸이 자라고 성장함에 따라 마음도 저절로 성장한다는

원인을 부정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무인론이라고 합니다.

이 또한 잘못된 견해에 속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견해를 가져서 잘못된 마음으로 인해서

잘못된 재생연결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수행을 한다는 사실은 이런 잘못된 견해로부터 벗어나서 바른 견해를 가져서

모든 것들이 무상하고, 괴로움이 있고, 자아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갈애가 끊어져서 집착을 하지 않아 다시 태어나지 않는 바른 견해를 갖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신과 물질의 흐름인 윤회에 대해서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몸을 삶의 주인공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일시적 거주처로 여깁니다.


육체가 분해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어떤 사람은 머지않아 육체가 부활한다고 굳게 믿고 시신을 소중하게 다루기도 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행과 재생연결식과의 인과 관계에서 오는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평범한 불교신자도 이러한 전도된 인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지만,

불교의 교리인 무아를 믿기 때문에 위빠사나 수행을 하지 못할 정도로

이런 환상을 맹목적으로 지니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죽음, 재생, 정신과 물질에 대한 완벽한 지식이 없어도

우리는 명상을 해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직후에

찬나 장로는 위빠사나 수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신견 때문에 수행에 진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후 아난다 존자의 연기 법문에 따라 명상을 했으며

전도된 인식을 극복하고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였던, 그리고 부처님의 마부였던 찬나 장로는 매우 자신을 과시했습니다.

자신이 부처님의 마부였다는 유신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행을 해도 발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찬나 장로는 무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수행을 해서 무상을 느끼고, 괴로움을 보고, 그리고 무아를 느낄 단계에 가면,

마치 절벽에 선 것처럼 위험을 느끼고, 그 순간 수행을 포기하곤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부처님의 마부였다는 그 사실에 대한 유신견입니다.


내가 누구라고 하는 자아가 있는 한,

우리는 무아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수행이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 과를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찬나를 아난다 존자가 법문을 통해서 연기의 구조를 이해시켜서

결국은 찬나도 아라한이 되어서 반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찬나는 다시 태어나는 재생연결식을 갖지 않고,

해탈의 길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그런 삶을 마감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죽을 일이 없는 위대한 삶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부처님 당시에 야마까 비구는,

아라한은 완전한 열반에 들고 나면 단멸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야마까 비구를 사리풋다가 불러서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법문을 들으면서 야마까 비구는 명상을 해서 해탈을 성취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게 되면,

언젠가 여러분들은 바른 견해를 갖게 될 것입니다.


죽음과 수태의 본성에 대한 무지와 의심, 그리고 단견에 집착하는 성향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사후에 내생이라는 게 과연 있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이 질문 자체가 한 생명 안에 있는 자아니 영혼이니 진아니 하는 것들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유물론은 영혼의 개념을 부정합니다만

죽은 자와 산자를 구별 짓는데 있어서 자아에 대한 전도된 인식이

은연중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노골적으로나 은연중에 자아를 수용하는 사람들의 질문에

불교적 관점으로 답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만약 우리가 내생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우리가 자아가 있다는 견해를 지지한다고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하지만 불교는 무조건 내생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질문에 답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더구나 보통 사람들에게 증거를 제시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신통이 있는 사람은 지옥이나 천신계를 보여줄 수 있겠지만,

회의적인 사람들은 이를 마술이나 속임수라고 치부해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번뇌가 소멸하지 않은 경우에는 죽음 뒤에 정신과 물질과정이 계속된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내생의 문제는 지적으로는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특별한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만 해결됩니다.


이러한 수행을 통하여 수행자는 신통을 얻어서

선한 사람은 천신계에 태어나고,

악한 사람은 악처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가 보는 것은 두 집을 다 내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선명합니다.


수행자는 높고 낮은 세계의 수많은 천인, 동물들 중에서

자신이 보고자 하는 사람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수행자는 선정과 신통을 얻을 수 있으며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하는 가르침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실제로 저 세상과 신통으로 접촉을 갖는 수행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통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그러한 신통은 강력한 집중에 의지하기 때문에 위빠사나 수행이 더 쉬운 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통을 얻어서 내생을 볼게 아니고,

위빠사나 수행의 몸과 마음을 통찰하는 지혜로, 원인과 결과로,

지금 여기에 있는 몸과 마음이 어디서 왔으며,

그것이 이러한 원인으로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것이 더 쉬운 일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원인과 결과를 구별하는 지혜가 계발되어,

수행자가 죽음과 수태의 본성을 잘 알게 되면

삶의 문제가 더욱 명확해 집니다.


그래서 현상을 바로 보는 지혜와 생멸의 지혜, 그리고 소멸의 지혜를 성취하면

삶의 문제는 보다 더 명확해집니다.


왜냐하면 재생연결식의 단위들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가를 

매 순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음이란 현생의 마지막 식이 사라진 다음에 수태 즉,

내생의 처음 재생연결식이 뒤따라서 일어나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은 재생연결식은 한 일생의 한 번 일어나는 재생연결식도 있지만,

매순간 일어나는 마음도 있습니다.


마음이 찰나생, 찰나멸하는 것이라면, 한 일생이 시작되는 그 순간의 재생연결식이나

지금 이 순간에 새로 일어난 이러한 재생연결식이나 하등에 다를 것이 없습니다.


최초에 재생연결식으로 인해서 그 몸과 마음이 결정된다면

다시 지금 현재의 마음이 지금 현재의 몸과 마음을 다시 만든다는 사실도

같은 견해로 바라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행복한 마음을 가지면

이 순간 몸이 행복하고 마음이 행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 선하지 못한 악한 마음을 가지면

그 순간의 몸은 악한 형상을 하고, 그 순간의 마음은 악한 마음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재생연결식은 몸과 마음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이 지혜도 아직은 취약한 것으로

수행자가 최종적으로 수다원의 도, 과를 얻고 나야

비로소 내생에 대한 모든 의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위빠사나 수행은 하지 않고

내생에 대해서 묻기만 하려는데 있습니다.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혜로서만이 궁금증을 풀 수가 있습니다.


궁금증에 대해서 아무리 진리를 말해도

그것을 받아들일 견해가 성숙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단지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에 일어나는 소리로밖에 들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서양의 과학자와 철학자에게 의견을 구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신통을 지닌 아라한이라고 믿는 분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남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스스로 해답을 얻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의 지혜의 단계에서,

수행자는 사라진 식의 단위의 흐름에서 감각대상에 집착하는 새로운 식의 단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수행자는 전생에서 죽은 마지막 순간에,

한 대상에 대한 집착에 의해 조건지어진 식의 단위와 함께

새로운 생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죽기 전의 식의 흐름은 물질적인 몸에 의존하면서

하나의 식의 단위가 다음 식의 단위로 끊이지 않고 계속됩니다.


죽은 다음 몸은 분해 되고

식의 흐름은 다음 세계의 물질적인 과정으로 옮겨 가서

새로운 재생연결식을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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