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57

通達無我法者 2011. 1. 7. 23:37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지난시간까지 무명을 원인으로 행이 일어난다라고 말할 때

행(行)에 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행을 원인으로 식(識)이 일어난다라고 할 때의

식(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마음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마음은 물질이 아니고 비 물질입니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마음은 비 물질이고 대상을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마음은 비 물질이라서 눈에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느낌과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이것을 일으키는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음은 매 순간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앞선 마음이 사라지면 뒤에 마음이 새로 일어납니다.

새로 일어난 마음은 있던 마음과 다른 마음입니다.


마음은 있지만 이처럼 항상하는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항상한다면 그 마음은 영원한 것이지만,

항상하지 않다면 그 마음은 찰나생, 찰나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아입니다.


항상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은 영원하지 않으며

조건에 의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이것이 나의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은 물질 없이 혼자서 존재하지 못하며

물질과 함께 조건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마음이 지속하는 시간은

빛이 번쩍하는 순간의 백만분의 일보다 짧은 순간에 머물면서 변합니다.

마음은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그 종자가 있어서

다음 마음에 과보를 전하고 사라집니다.


마음을 찰나생, 찰나멸이라고 말하지만 찰나생, 찰나멸하는 사이에

마음에 담긴 종자가 있어서 다음 마음에 그 과보가 전해지기 때문에

마음이 연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과보의 힘으로 굴러갑니다.

이 과보가 바로 종자, 조건, 정보, 원인과 결과입니다.


이처럼 나라고 하는 정신과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은

먼저 행위가 있고 그 행위에 대한 과보가 있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매순간 생멸하는 마음은 한 마음이 아니므로

어제 있던 마음이 오늘의 마음이 아닙니다.

현재의 마음이나 조금 뒤에 일어난 마음들은

조건에 의해 흐르고 있는 새로운 마음들입니다.


나의 마음이 있다면 죽을 때 호흡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 호흡임을 알아도 어쩔 수 없이 숨을 거두어야 하며,

마지막에는 마음조차도 끝내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와 같이 죽을 때 마지막 마음인 죽음의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면

즉시 태어나는 마음인 재생연결식이 일어납니다.


이 재생연결식이 12연기에서 무명을 원인으로 행이 일어나고

행을 원인으로 식이 일어난다라고 할 때의 그 식(識)입니다.


무명과 행은 과거의 마음이지만

이 식(識)은 현생을 시작하는 첫 번째 마음입니다.


이때의 식은 환생이 아니고 재생연결식입니다.

만약 환생이라고 말한다면 전생의 그 마음이 그대로

이 마음에 계승되어서 태어나는 마음이 되겠지만

재생이라고 한다면 전생의 마음과 이생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뜻합니다.


환생이라고 말한다면 전생의 마음이 이생에 그대로 옮겨 온 것을 말하지만

재생의 마음이라고 한다면 전생의 마음은 이미 끝나서 없어지고

그 마음에 담긴 과보가 이생에 연결되어서 새로운 아는 마음이 생긴 것을 뜻합니다.


죽는 마음이 사라지면 그 마음은 끝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남긴 과보가

강한 힘과 빛으로 공기를 타고 새로운 마음에 전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마음이 바로 재생연결식입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죽기 전의 마음과

죽고 나서 생긴 재생연결식은 같은 마음일까요?

아니면 다른 마음일까요?


사실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습니다.

같다라고 하면 항상 한다는 상견에 빠지기 때문에 그것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르다고 하면 이 마음과 저 마음이 전혀 무관하다는 단견에 빠지기 때문에

그것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전생과 이생의 재생연결식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같은 마음은 아니지만,

그 마음에 담긴 과보가 전해져서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고,

원인에 의한 조건 지어진 결과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라는 것은

과보, 원인과 결과가 전해진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에 생긴 재생연결식은 새로 일어난 마음이며

이 마음은 매 순간 생멸하면서 일생동안 몸을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유체이탈이라고 하는 말은 마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하는 말입니다.

한번 정신과 물질이 결합되면 죽을 때 까지 그 마음은 몸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잠시 몸을 떠나서 외유할 수도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항상 그 몸과 마음이 함께 가며,

죽을 때 그 몸도 끝나고 그 마음도 끝납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담긴 종자, 그 과보는 다음 마음에 전해져서 생을 이어갑니다.


수행자 여러분!

죽을 때 마지막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에 따라서

태어나는 세계와 그 생명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누구나 무명인 상태로 죽으며

무명인 상태에서는 나쁜 것을 좋아해서 나쁜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죽을 때 선정의 마음을 가지면 태어날 때 선정의 마음을 갖게 되어

선정의 세계에 태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업자성정견입니다.


죽을 때 갈애가 끊어져서 지혜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면,

바라는 것이 없어서 윤회가 끝나는 아라한이 되어서 태어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수행을 한다는 것은

죽을 때 어떤 마음을 먹느냐 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태어날 때는 선한 마음, 선하지 못한 마음,

과보의 마음, 원인이 없이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이 네 가지 마음을 동시에 갖습니다.


누구나 선한마음과 선하지 못한 마음을 가졌지만

이 두 가지 마음으로는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항상 과거에 만들어 놓은 과보의 마음이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작용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선심으로 살게 되면 선과보와 만나서

함께 두 가지가 결합되어서 행동을 하게 됩니다.

현재의 마음이 선심일 때는 선과보와 만나게 되며,

현재의 마음이 선하지 못한 마음일 때는 선하지 못한 과보와 만나게 됩니다.


아라한은 원인이 없는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것은 바로 부처의 마음,

아라한의 이러한 마음을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 원인이 없이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연기가 멈추고 다시 태어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죽을 때의 마음에는 ‘나’라고 하는 자아가 없으며,

그래서 태어날 때 마음도 ‘나’라고 하는 자아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말씀드린 대로 마음은 언제나 대상을 아는 기능을 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마음과 마음의 작용으로 분류를 합니다.


마음은 다섯 가지 무더기 중에서 식이며

마음의 작용은 수, 상, 행 이 세 가지입니다.

마음은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에서 일어나는 것을

조건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서 이것들과 같아지는 기능을 합니다.


슬픈 느낌이 일어나면 마음도 함께 같아져서 슬픕니다.

그리고 행복한 느낌이 일어나면 마음도 함께 같아져서 행복해 집니다.


이처럼 마음은 언제나 대상이 없으면 일어나지가 않습니다.

감각기관인 6문에서 6경이 부딪쳐야 6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의 마음만 있어

두 개의 대상을 동시에 알지 못하고 오직 하나만 알 수가 있습니다.


괴로울 때 괴로운 것을 알아차렸다면

이미 괴로움은 과거의 마음이 되고,

그것을 안 새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마음의 종류는 매우 많습니다.

마음은 하나이지만 조건에 따라서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으로는 하나이지만

일어나는 곳, 마음의 종류, 마음의 작용에 따라서

크게는 121가지 종류로 구별하거나

89가지의 마음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마음은 경지에 따라서 욕계의 마음이 있으며,

색계의 마음과 무색계의 마음이 있고,

출세간계의 깨달음의 마음이 있습니다.


욕계는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 욕계천상의 마음이며,

색계는 색계 4선정과 무색계는 무색계 4선정의 마음이며,

출세간계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마음이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각자가 처한 세계의 마음이 있습니다.

축생은 축생의 마음이며 천인은 천인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마음도 사람의 마음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 중에 인간의 마음은 선하지 못한 욕계의 마음과

선한 마음인 색계, 무색계의 마음이 있고

지혜 수행을 하는 출세간의 마음이 함께 있습니다.


사람은 유일하게 두 개의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마음이 화를 내면 지옥에 있는 마음과 같아지며

어리석으면 축생이 아니지만 현재가 축생의 마음과 같습니다.


평소에 지옥의 마음을 가지면 죽어서 지옥으로 갑니다.

평소에 축생의 마음을 가지면 죽어서 축생이 됩니다.

평소에 인색하게 살면 살아서도 아귀고 죽어서도 아귀가 됩니다.


현재 색계 선정을 닦으면 죽어서 색계에 태어나고

현재 무색계 선정을 닦으면 죽어서 무색계에 태어납니다.


현재 위빠사나 수행의 출세간의 깨달음을 얻으면,

현재에도 원인이 없는 단지 작용하는 마음을 갖고

그리고 죽어서도 윤회가 끝나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해탈의 길을 갑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러한 마음을 스스로 괴롭히지 마십시오.


마음이 일을 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원래 회화, 그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은 여러 가지 형상의 그림을 그립니다.

마음은 여러 가지 색깔의 그림을 표현합니다.


수행은 마음이 일을 하여 마음을 계발하는 것이므로,

일하는 마음을 힘들게 하거나 괴롭혀서는 안 되겠습니다.


수행을 잘하려고 하는 것도 마음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수행도 마음이 하고 잘하려고 하는 것도 마음이 합니다.

수행을 할 때 어떻게 하려고 하면 마음이 긴장을 합니다.

마음이 긴장을 하면 몸이 긴장하게 되어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수행을 하는 마음을 구속하거나 억압하지 않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마음을 억압하면 억압한 만큼 반대의 결과가 따릅니다.

편한 상태에서 힘들지 않도록 배려하면 마음이 대상을 떠나지 않게 되므로

집중력이 생기고 지혜가 나게 됩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러한 마음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스스로 속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온갖 열망으로, 온갖 번뇌로 항상 마음을 스스로 괴롭힙니다.

그리고 마음에 불을 지릅니다.

이런 마음들은 오직 어리석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마음이 단지 대상을 아는 원래의 기능을 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저런 마음으로 채색되면 마음이 원래 그 순수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늘도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마음을 속박하지 마셔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속박하는 자는 스스로 속박한 그 결과를 받아서

몸이 긴장하고 또 마음도 긴장하여 괴로움 속에서 살게 됩니다.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지금 이 순간에 어떤 마음이냐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재생연결식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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