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65

通達無我法者 2011. 1. 10. 21:27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경험하지 않은 정신세계와

경험하지 않은 몸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입니다.

수행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여행이기 때문에

반드시 바르게 아는 길잡이의 안내가 필요합니다.


여행에는 즐거움도 있고 괴로움도 있는 것처럼

수행도 고통과 기쁨이 항상 함께 있습니다.


수행은 대상을 알아차려서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대상을 선택하여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알아차림을 지속하여 집중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수행이 잘 안 되는 것은 수행의 과정에 포함된 중요한 순서이므로

바로 안 되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잘 안 되는 과정을 참고 견딜 때만이

알아차리는 힘이 커지고 지혜가 성숙되어 결국에는 행복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참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은 오지 않습니다.

반드시 인내하는 자에게 인내한 만큼의 행복의 결과가 옵니다.


우리가 인내할 때는 결과를 위해서 인내하지 말고,

단지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 자체에 힘을 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인내하고 노력할 때만이 온전한 행복이 주어집니다.


수행은 생각으로 하는 과정이 있고,

수행이 무엇이라고 말하는 과정이 있고,

직접 알아차림을 실천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생각은 사유이지만 수행의 기초가 되며,

그 다음에 수행에 대하여 말할 수가 있으며

그리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거칩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는 일련의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으로서

처음부터 실천하기가 어렵다면

우리는 단계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말로 그치지 않고,

실천에 옮기기까지의 기간을 단축하려면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노력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하면 경전을 읽거나,

훌륭한 도우들과 가까이 지내야하며,

지도자의 법문을 듣거나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처음부터 수행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수행의 이익에 대해서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수행의 이익에 대해서 말하십시오.

차츰 이런 과정을 거쳐서 실천하는 수행에 이르게 됩니다.


지난 시간까지 식을 원인으로

정신과 물질이 일어나는 것에 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무명을 원인으로 행이 일어나고,

행을 원인으로 식이 일어나고,

식을 원인으로 정신과 물질이 일어나고,

정신과 물질을 원인으로 육입이 일어나는 것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식과 정신과 물질과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입과

감각대상인 접촉과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일어나는 느낌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뒤가 없습니다.

단지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식을 원인으로 명색이 일어나고,

명색을 원인으로 육입이 일어나고, 육입을 원인으로 촉이 일어나고,

접촉을 원인으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말할 뿐입니다.


이러한 12연기의 다섯 가지는 12연기의 오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온은 색, 수, 상, 행, 식인데

그것은 오온의 무더기를 말하는 것이고,

12연기에서의 오온은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으로

식, 명색, 육입, 촉, 수, 이러한 순서를 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원인과 결과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명색을 원인으로 육입이 일어납니다.

이때 육입은 육근, 육문이라고도 말합니다.

이 육문, 육근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말합니다.

정신과 물질로 인하여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때 명색은 식을 뺀 색, 수, 상, 행을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12연기에서 식을 원인으로 명색이 일어난다고 말할 때는

그 식은 아는 마음이고,

여기서 정신과 물질이라는 명색은 식을 뺀 수, 상, 행과 색을 말합니다.

그래서 식과 명색을 포함해야 비로소 오온이 완성됩니다.


눈은 앞선 원인이 되는 현상의 결과로 생긴 현상으로서

그 속에 자아, 나, 나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는 원인의 연속되는 결과로서 나, 나의 눈,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귀의 경우도 앞선 원인이 되는 현상의 결과로 생긴 현상으로서

거기에 자아, 나, 나의 것이라고 할 만한 개아적 요소가 없습니다.

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혀도 마찬가지입니다.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경우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들 여섯 개의 감각기관은 여섯 가지의 법으로서 윤회의 영역을 넓혀줍니다.

즉 연기의 회전 고리를 연장시키고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대상을 맞이해서 연기를 회전시킵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여섯 가지 감각대상을 만나서

여섯 가지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윤회를 한다는 것도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고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문을 통해서 들어온 정보가 느낌으로 일어나서

그 느낌이 갈애로 발전할 때 윤회하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느끼는 것이지

결코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눈은 윤회의 영역을 넓히며 귀, 코, 혀, 몸, 마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들을 때, 냄새를 맡거나 먹을 때, 그리고 몸에 접촉이 있거나 생각할 때,

그것들을 멈추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확인해보십시오.


예를 들어봅시다.

아름다운 대상을 보게 되었을 때 보는 순간 당신은 멈췄습니까?

아니면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그것을 좋아해서 갖고 싶다고 말했습니까?


당신은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어떤 수단으로든지 그것을 가지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이것이 윤회의 재생연결로서 연기의 고리를 늘리고

윤회의 영역을 넓히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부딪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도 부딪친 대상에서 느낌이 일어날 때,

반드시 그 느낌을 그대로 두지 않고,

갈애를 일으켜서, 집착을 해서, 업의 생성을 일으켜서,

미래에 태어남을 만들게 합니다.


이렇듯 모든 것들은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발전합니다.


그렇습니다.

정신과 물질을 원인으로 여섯 가지 감각장소가 생겨납니다.

이 말은 여섯 가지 감각장소는 정신과 물질을 원인으로 생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신과 물질을 원인으로 여섯 가지 감각장소가 생긴 것에서,

그 감각장소가 생긴 원인이라는 것이 있어서 감각장소가 생겼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조건에 의해서 생긴 것이지

어느 특정한 힘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초월적 존재에 의해서 생명이 생긴 것이 아니고,

단지 이러한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에 의해서 생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조건 속에 결코 자아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 나의 것, 너, 우리, 당신이라고 하는

어떤 것도 여기에 개입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될 때만이 우리는 바른 견해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정신은 세 가지 마음의 작용의 무더기인 수온, 상온, 행온인 반면

물질은 네 가지 근본요소, 또는 여섯 가지 감각장소, 생명, 음식이라는 물질을 가리킵니다.


정신과 물질을 조건으로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여섯 가지 감각장소가 일어납니다.

이 여섯 가지 감각장소의 문을 통해서 비로소 인식과정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정신과 물질이라는 것을 통해서

그 안에 있는 여섯 가지 감각장소가 감각대상에 부딪쳐서 일어나는 것을 인식할 때,

우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섯 가지 구멍의 정보를 통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무색계는 전 생애에 걸쳐 모든 마음의 단위들이

관련된 마음의 작용에서 생깁니다.

하지만 이는 무색계의 성자들만이 이해하는 것이므로

범부들에게는 이론적인 지식일 뿐입니다.


그래서 욕계에서는 여섯 가지 감각장소가 모두 일어나고,

색계에서는 눈, 귀, 의(意)의 감각장소만 일어나고,

무색계에서는 몸이 없기 때문에 의(意)만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육입, 육문이

모든 생명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무색계는 몸이 없기 때문에,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문(門)중에서 의(意)만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할 때 흔히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눈을 감느냐고 말합니다.


좌선을 할 때 위빠사나 수행자들은 눈을 감습니다.

그때 눈을 감을 때뿐이 아니고 눈을 뜰 때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일단 눈을 감는 것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문(門) 중에서

안, 이, 비, 설, 신이라는 다섯 개의 문은 닫고,

오직 의(意), 마음의 문만 열고,

그냥 마음의 문을 연 그 상태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에서

눈을 감는다라고 말합니다.


바꾸어서 이야기하면 위빠사나 수행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때문에,

시비분별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좋다, 싫다, 귀로 듣고 좋다, 싫다, 하지 않고,

그냥 단지 마음으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되기 때문에,

관(觀)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처럼 정신과 물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중생은

수태하는 순간부터 일어나는 모든 과보의 마음이

관련된 마음의 작용에서 기인합니다.


과보의 마음이란 즐겁거나 즐겁지 못한 대상을

그냥 보고 듣고 하는 등의 마음을 뜻합니다.


여기서 보는 마음이라고 하는 식은

형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숙고, 그리고 감각대상과 접촉,

대상을 보려고 하는 의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혼자서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보는 마음은 마음의 작용이 집합적으로

동시에 일어날 때만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식의 조건을 빨리어로는 함께 생긴 조건,

구생법(俱生法), 구생연(俱生緣)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들은 함께 일어나서 함께 소멸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수, 상, 행, 식이 네 명이 힘을 합쳐야 들 수 있는 짐을

팀장 혼자서 들려고 한다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식이 정신적 생명의 주요 동력이기는 하지만,

혼자서는 거의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과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마음의 작용은 재생연결식에 의해

눈, 귀와 같은 다섯 가지 감각장소에 기인합니다.


물론 수태의 순간에는 몸, 즉 물질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태를 거치지 않고 재생하는 경우에는

처음부터 5가지 감각장소가 모두 있을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수태의 순간에 식과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일어나는

5가지 감각장소가 조건지어지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부처님의 권위에 근거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때에는 과보의 마음과 단지 작용하는 마음, 2가지가

모두 감각장소가 유지되는 것을 돕습니다.

이는 이해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마음 없이 물질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상과 같이 우리는 정신과 물질에 의해서 일어나는

6가지 감각장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사실은

이 6가지 감각장소의 문에 문지기를 두는 것입니다.

그 문지기가 감각장소에서 알아차림을 유지한다면

탐, 진, 치, 번뇌가 들어오지 않아서 도둑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도둑이 들어오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해탈열반을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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