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115

通達無我法者 2011. 2. 21. 21:25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마음은 물질이 아니고 비물질(非物質)입니다.

마음은 비물질이라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느낌과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이것을 일으키는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음은 매 순간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앞선 마음이 사라지면 뒤에 마음이 새로 일어납니다.

새로 일어난 마음은 있던 마음과 다른 마음입니다.


마음은 있지만 그래서 항상 하는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항상 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은 영원하지 않으며,

조건에 의해 계속 변하기 때문에 나의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은 물질 없이 혼자서 존재하지 못하며

물질과 함께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마음이 지속하는 시간은 빛이 번쩍하는 순간의

100만분의 1보다 짧은 순간만 머물면서 변합니다.


마음은 일어났다가 사라지지만

종자가 있어서 다음 마음에 과보를 전하고 사라집니다.

그래서 마음은 과보의 힘으로 굴러가는 것입니다.

이 과보가 바로 종자, 조건, 정보, 원인과 결과입니다.


이처럼 나라고 하는 정신과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은

먼저 행위가 있고, 그 행위에 대한 과보가 만듭니다.


매 순간 생멸하는 마음은 한 마음이 아니므로

어제 있었던 마음이 오늘의 마음이 아닙니다.

현재의 마음이나 조금 뒤에 일어나는 마음들은

조건에 의해서 흐르고 있는 새로운 마음들입니다.


나의 마음이 있다면 죽을 때에도 호흡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숨을 쉴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 호흡임을 알아도 어쩔 수 없이 숨을 거두어야 하며

마지막 마음조차도 끝내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은 자아가 강한 사람입니다.

자아는 자신만의 성벽을 쌓고 남과 격리되기를 원합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독선적이며,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칭찬받기를 원하여 항상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진실 앞에서는 움직이지 않으며,

탐욕 앞에서는 쉽게 마음이 움직여

욕망을 갖기 때문에 욕망에 취약합니다.


자아가 강해서 얼마간의 성공을 할 수도 있지만

그 성공은 남과 나눌 수 없는 자신만의 잔치입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에게는 기회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누구도 그에게 따뜻한 마음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내가 있다는 잘못된 견해가 생기며,

자아는 모든 번뇌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자아가 없다는 것을 알 때만이 무지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자유와 해탈의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마음과 몸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로 결합되어서

마음은 몸에 영향을 주고 몸은 마음에 영향을 줍니다.


마음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몸이 없으면 할 수가 없고

몸은 마음의 의도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의도가 있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있지만

몸의 상태에 따라 마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몸이 몸에 영향을 주어 일을 하면 나른해 지고

마음이 마음에 영향을 주어 슬프면 비탄에 빠집니다.

몸과 마음은 서로 밀접하게 작용하면서 영향을 주며

모든 것이 조건에 의해 원인과 결과로 진행됩니다.


한 일생이나 매 순간에 마음과 몸이 시작되는 것은

무명으로부터 시작되거나 지혜로부터 시작됩니다.

무명으로 시작되면 불선행이 불선한 몸을 만들며

지혜로 시작되면 선행이 선한 몸을 만들게 됩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처럼 몸과 마음은

상호의 조건에 의해서 유기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지,

이것을 지배하는 자아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단지 원인과 결과가 있을 뿐이지,

이것을 소유하는 유신견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오늘 살펴보셔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제 13장, 유신견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계속 살펴보시겠습니다.


아자타삿뚜왕자는 데와닷타의 꼬임으로

아버지 빔비사라 왕이 살아 있는 한 결코 왕이 될 수 없으리라 믿고

젊은 나이에 왕이 되고자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국 아버지를 살해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인 늙은 왕을 살해하도록 그를 부추긴 것이 바로 무엇일까요?

그것이 유신견입니다.


유신견은 이토록 이성을 잃게 하고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하게 합니다.

모든 전쟁, 모든 범죄, 모든 고통이 바로 유신견으로 인해서 생긴 것들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와 국가 간에도 유신견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 출발은 한 개인의 유신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국가 간에 재앙으로, 인류의 재앙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그런 모든 핵심적 요소가 바로 ‘나’라고 하는 자아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아셔야 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어느 부유한 장자의 딸인 빳다짜리를 미치게 만든 것 또한 유신견이었습니다.

사견에 이끌려 오온을 남편, 아들, 딸 ,아버지, 어머니 등으로 잘못 이해하고 그릇되게 받아들여

미친 상태가 되어서 결국은 통제가 불가능한 정신병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유신견을 가진 이는 마치 실의 길이만큼 높이 떠오르다가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연과 같습니다. 유신견이 함께 하여 그 사람을 떨어뜨리게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유신견이 강한 사람은 자아가 강한 사람입니다.

자아는 나라고 하는 아상인데 자존심을 말합니다.

자존심이 많으면 많은 만큼 반비례하여 고통과 좌절이 따릅니다.

그래서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느끼며 실제로 그렇게 행동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습니다. 우리가 위대하다, 훌륭하다

또는 권력을 잡았다, 돈이 있다, 매우 아름답다 하는 것들이,

그것이 좌절을 겪을 때 오는 그 고통은 산이 높은 만큼 깊은 계곡의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모두 유신견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몸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몸이라고 할 때 유신에 견이 붙습니다.

몸은 있다는 것은 유신이고, 유신에 견이 붙으면 나의 몸이라는 잘못된 견해가 생깁니다.


마음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마음이라고 하면 그것이 진아입니다.

나의 마음이 아니고 그냥 마음일 때 이것이 무아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마음에 대해서 자세히 아셔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유신견이 무엇인지도 아셔야 되겠습니다.


유신견은 실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온은 실체가 없습니다. 항상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은 있지만 실체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비어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부처님께서 공덕을 짓는 행으로 인하여 욕계, 색계,

무색계에 이르게 되고 무색계의 비상비비상처에 이르는 사람일지라도

유신견을 가지고 있으면 다시 비참한 존재계로 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윤회하는 세계를 돌게 하는 그 핵심적 에너지가 유신견입니다.

사마타 수행으로 갈 수 있는 무색계 4선정의 세계가 바로 비상비비상처인데,

그곳의 수명은 84,000겁에 이르며 몸이 없이 마음만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윤회계의 최고의 높은 세계에 있는 이 비상비비상처에서도

죽으면 다시 어디에 태어날지를 모릅니다.

최고의 세계인 비상비비상처에서도 그는 ‘나’라고 하는 자아가 있기 때문에

다시 존재하는 세계의 비참한 세계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신견을 토대로 하여 다른 4가지의 무섭고 위험한 사견들이 생겨납니다.

즉 비작업론(非作業論)과 무인론(無因論)과 허무론(虛無論)과 자재화작인론(自在化作因論)   등입니다.


여기서 비작업론(非作業論)은 업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견해입니다.

즉,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짓는 선하거나 선하지 않은 행위, 바르거나 바르지 않은 행위,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위들에 대한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그 어떤 과보나 결과도 없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그래서 이 비작업론을 업보를 부정하는 견해라고 해서 잘못된 견해라고 말합니다.


다음에 무인론(無因論)입니다. 유신견으로 인해서 생기는 이 무인론은

원인이 없다는 견해로 인과법에 대한 완전한 부정입니다.

즉, 생명이 있는 존재나 없는 존재, 그리고 여러 가지 현상들은 우연히 생긴 것이며,

모든 사건들이 원인 없이 이례적으로 발생한다는 견해입니다.

그래서 원인을 부정하는 견해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 무인론이 윤회를 부정하는 그러한 이론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윤회라는 것이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명들이 연속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 윤회를 부정하는 것이 바로 단멸론으로서 이 무인론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인론은 원인을 부정하는 견해입니다.

원인을 알아차려서 결과가 없는 것과는 다른 뜻을 가지는 내용입니다.


다음에 허무론(虛無論)입니다.

허무론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모두 부정하는 사견입니다.

이 사견은 생명이 있든 없든 모든 존재가 원인 없이 나타났으며,

그 행위가 선하든 악하든 아무런 열매도 맺지 않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는 허무적인 견해입니다.

이것을 허무주의의 견해라고 말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원인을 부정하는 것은 결과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원인과 결과 중 하나를 부정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모두 부정하는 것입니다.


자재화작인론(自在化作因論)은

세계가 절대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하는 견해입니다.


그래서 이상과 같은 사견 중에 어느 하나라도 가지고 있는 것은

다섯 가지 무간의 업을 짓는 것보다도 더욱 해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사견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다섯 가지 무간의 업이라고 하는 오역죄는 무엇인가요?

이 오역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유신견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 오역죄는 다섯 가지 무간의 업으로 즉시 처벌을 받는 행위를 말합니다.


오역죄의 첫 번째는 어머니를 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아라한을 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부처님을 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역죄의 다섯 번째는 승단의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입니다.

이상 무간지옥으로 떨어지는 죄를 오역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유신견은 이것보다 더 무섭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나 아버지나 아라한을 죽여도 언젠가 그 과보를 받으면

윤회를 끝내는 아라한이 될 수가 있습니다.

앙굴리말라 조차도 999명을 죽이고도 때가 되어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수행의 세계에서는 잘 잘못이 없습니다.

잘못한 것도 알아차려서 깨달음을 얻으면 윤회를 끝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유신견은 윤회의 표면에 떠오를 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윤회를 해야 되기 때문에,

이것을 가장 큰 죄악으로 가장 큰 무지로 우리가 여기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늘 유신견을 통해서 우리가 말하는 무아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되겠습니다.


무아는 마음은 있지만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닌 것이고,

유신견은 몸과 마음을 내 몸, 내 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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