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제8장 선종사상] 3. 돈오점수사상 비판 - (2) 돈오점수 - ii. 절요

通達無我法者 2007. 4. 30. 12:04

제8장 선종사상

 3. 돈오점수사상 비판

  (2) 돈오점수 - ⅱ. 절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돈오점수(頓悟漸修)사상은 교가(敎家)에서는 혹 방편적으로 용납이 되지만 조계 선종정맥에서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사상이라는 것을 대중들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해동(海東)으로 와서 보조스님은 그런 사상을 이어받게 되었든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돈오점수사상은 보조스님 저술에 있어서 수심결(修心訣)과 결사문(結社文)의 두 저술에서 근본이 되고 있습니다. 결사문은 보조스님 서른세 살에 팔공산 거조암(居祖菴)에 계실 때 지은 글입니다. 수심결은 지은 연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상적으로 봐서 결사문 이후에 된 저술은 사상의 전환이 많은데 그 전환점을 기준하여 보면 수심결이 결사문 지을 때와 같은 보조스님 초기의 저술이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보조스님이 서른세 살에 거조암(居祖庵)에 계시면서 결사문을 짓고 약 십 년 후인 마흔한 살 상무주암(上無住庵)에서 대혜어록을 보고 ‘얻은 바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전에는 돈오해서 점수한다는 그 사상의 범위 안에 있었는데 상무주암으로 가서 ‘얻은 바가 있고’부터는 정해(情解) 즉 지해분별을 원수와 같이 여기고 번뇌망상을 벗어나서 바로 안락하여 지해가 조금 높아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무주암에 몇 해 계시다가 송광사로 가서 한 십 년 계시다 5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반년 전 52세 되시던 겨울에 완성한 책이 절요(節要)인데, 여기에서는 수심결이나 결사문과는 달리 사상적 전환이 있습니다. 즉 절요(節要)에 있어서는 돈오점수(頓悟漸修)는 교종(敎宗)에 해당하는 것이지 선종(禪宗)은 아니라고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하택 신회는 지해종사(知解宗師)다. 비록 조계의 정통은 아니나 오해(悟解)가 높고 밝아서 결택이 밝으니 종밀스님이 그 종의 뜻을 이은 까닭으로 이 책에서 그것을 펴서 활연히 볼 수 있게 한다. 지금 교를 인해서 마음을 깨친 이를 위하여 번거로운 말을 제거하고 요점을 드러내서 관행(觀行)의 귀감으로 삼는다.

荷澤神會는 是知解宗師라 雖未爲曹溪嫡子나 然이나 悟解高明하야 決澤이 了然하니 密師宗承其旨故로 於此錄中에 伸而明之하야 豁然可見이라 今爲因敎悟心之者하야 除去繁事하고 鈔出網要하야 以爲觀行龜鑑하노라.


수심결이나 결사문의 시절에는 돈오점수를 달마선이라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20년 후에 지은 절요에 와서는 돈오점수는 지해종사(知解宗師)인 하택의 사상인데 그것을 규봉이 이었다고 선언하고 이것은 교가(敎家)를 위해서 한다는 조건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교를 보다가 마음을 깨쳤다 함은 해오(解悟)이고 신해(信解)를 말합니다. 해오를 성취하여 깨쳤다고 하지만 객진 번뇌가 전과 다름없는 사람들, 즉 교가를 위해서 돈오점수를 설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규봉(圭峰)스님은 어떤 분인가? 규봉스님은 처음에는 하택의 법을 이어받아 선종이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청량국사의 화엄소초(華嚴疏鈔)를 보고 완전히 화엄종으로 가버린 스님, 즉 선을 버리고 교에 들어간[捨禪入敎] 스님입니다.


밥 먹는 것도 잊고 잠도 자지 않고 밤새도록 살펴서 소(疏)로써 경(經)을 통하고 초(鈔)로써 소를 해석하니 일생의 남은 의심이 모두 다 없어져 버리고, 바깥 경계와 안의 마음이 활연히 간격이 없어졌나이다. 서원컨대 세세생생토록 목숨이 다하도록 널리 펴게 하여 주소서.

忘飧輟寢하고 夙夜披尋하야 以疏通經하고 以鈔釋疏하니 一生餘疑가 蕩如瑕翳하야 外境內心이 豁然無隔하니 誓願生生에 盡命弘闡하야지이다. [圭峰 上淸凉書]


이것은 규봉스님이 청량국사에게 한 편지입니다. 규봉이 참선을 닦았지만 의심도 많고 경계에 통하지 못하였는데 청량국사의 화엄소초를 보고 침식을 잊고 연구하여 의심을 완전히 풀고 자기 경계도 완전히 통하게 되었으니 이 화엄소초를 목숨이 다하도록 받들고 펴겠다고 서원하고 청량국사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의 화장세계에 능히 나를 따라 노니는 사람은 바로 너로구나!

毘盧華藏에 能隨我以遊者其汝乎인저. [淸凉 印可圭峰]


규봉의 편지에 대한 청량국사가 답한 부분입니다. 비로자나불의 화장세계, 즉 화엄경 4법계(四法界)에서 능히 나를 따라서 같이 놀 사람은 바로 너라고 청량국사가 규봉스님을 아주 원만하게 인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규봉스님은 실질적으로 청량국사의 제자가 되어 화엄오조(華嚴五祖)가 되었습니다. 규봉스님은 교가의 입장에서 선(禪)을 취급하다 보니 선(禪)과 교(敎)를 혼동하여 돈오점수가 달마선이라고 끝끝내 평생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보조스님은 초년에는 자기가 잘 몰라서 돈오점수가 선종이라고 주장했지만 말년에 와서는 완전히 달라졌으니 이것이 또 규봉스님과 보조스님과의 차이입니다. 그러면 규봉스님은 어째서 평생을 돈오점수를 주장했는가?


좋아하는 생각은 막기 어렵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마침내 대중을 떠나 산에 들어가서 정(定)과 혜(慧)를 고르게 닦아 생각 쉬기를 모두 10년을 하였다. 그랬더니 창틈에 햇빛이 비치면 티끌먼지가 요란하듯, 맑은 물 속에 그림자가 두렷이 비치듯, 미세한 습정이 기멸하면 고요한 지혜에 비춰지고 차별된 법의(法義)가 늘어서면 빈 마음에 드러났다.

自慮愛見을 難防하야 遂捨衆入山하야 習定均慧하야 前後息慮를 相計十年하니 微細習情이 起滅하야 彰於靜慧하고 差別法義羅列하야 見於空心하야 虛隙日光에 纖塵이 擾擾하고 淸潭水底에 影像이 昭昭하니라. [都序]


규봉스님이 평생토록 돈오점수를 버리지 못한 것은 여기서 고백하고 있는 경지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임이 확실합니다. 한 십 년 동안 정(定)과 혜(慧)를 닦으니 고요한 지혜가 조금 있기는 있으나 그 가운데 망상이 먼지 일어나듯 하니 마치 아침에 해가 뜰 때 창문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면 거기에 먼지가 분분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듯 하고 맑은 못에 그림자 모양이 환하게 밝으나 모든 차별법과 망상이 생멸을 거듭하고 있다는 경계입니다. 규봉스님이 만약 이 경계를 벗어났다면 완전히 병이 다 나은 얘기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니 언제든지 병신의 말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병이 다 낫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이런 입장에서 불교를 보게 되니까 달마선이 돈오점수라고 주장하게 되고 돈오점수사상이 규봉의 근본사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보조스님은 초년에 잘 모르고 수심결이나 결사문을 지을 때는 돈오점수를 달마선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절요에서는 분명히 바로잡았습니다.


그 본체를 몸소 증득한 후에 그를 인가하여 남은 의심을 다 끊게 한 까닭에 묵묵히 심인을 전했다고 한다. 여섯 대까지 서로 전한 것이 모두 이와 같다.

是親證其體 然後에 印之하야 令絶餘疑故로 云黙傳心印이라 하니 六代相傳이 皆如此也니라. [節要]


이것은 절요의 말씀인데 6대, 즉 달마스님으로부터 육조 혜능스님까지 전해 내려오는 법이 모두 다 증오(證悟)이지 해오(解悟)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수심결에 있어서는 달마스님이 전한 법이 모두 해오(解悟)라 하였는데 그후 한 십 년 지난 뒤인 절요(節要)에 와서는 선(禪)은 해오가 아니고 증오라는 것을 처음으로 밝히고 있으니 마침내 보조스님이 사상을 전환한 것이 됩니다.


먼저 모름지기 돈오하고 바야흐로 점수한다 함은 해오(解悟)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느니라. 지금 또 원돈신해자가 말함이요, 교외별전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有云先須頓悟하고 方可漸修者는 此約解悟也라 今且約圓頓信解者信之爾오 若敎外別傳은 不在此限이니라. [節要]


앞 구절은 규봉스님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절요(節要) 목판본에는 ‘此約解言也’라 되어 있는데 중국판이나 일본판에서 보면 ‘此約解悟也’라고 분명히 나와 있느니만치 한국판이 잘못되었습니다. 처음 규봉스님 말씀을 인용하여 많은 말씀을 해놓고 끝머리에 가서 결론으로 이것은 원돈신해자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 하고서 교외별전은 돈오점수가 아니므로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보조스님이 말년에 가서는 돈오점수가 선종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말년뿐 아니라 초년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조사문하에서 이심전심으로 비밀한 뜻을 지적해 전해 주는 경우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기(琪)화상이 “조상의 도를 깨쳐서 반야를 펼쳐 낼 이가 말세에는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권수정혜결사문에서 대승 경론의 이치를 들어 명확한 논거를 삼고, 현전문(現傳門)에서 신해(信解)가 틔워지는 실마리(동기, 이치)를 간단히 판별하였다.

若是祖宗門下에 以心傳心하야 密意指授之處는 不在此限이니라 琪和尙이 云能悟祖道하야 發揮般若者는 末季에 未之有也라 故로 此勸修文中에 皆依大乘經論之義하야 爲明證하고 略辨現傳門信解發明之由致하노라. [結社文]


이것을 보면 초년에 있어서도 돈오점수가 조종문하의 근본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실지로 철두철미하게 교외별전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사상이 들어 있었다면 ‘달마문하에서 구르고 펴 서로 전한 이 돈오점수의 선’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습니까? 그것은 초년에는 확실한 견해가 없고 분명히 몰랐기 때문에, 즉 선과 교를 혼동해서 이런 혼란이 생긴 것이라고 봅니다. 어쨌든 절요에서 보조스님 자신이 돈오점수는 원돈신해의 교가(敎家)를 위해서 하는 말이지 교외별전은 절대로 아니다라고 말한만치 돈오점수가 선종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법문은 또한 말을 의지해서 해오를 일으켜 들어가는 사람을 위해서 법에는 수연과 불변의 두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는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이 있음을 자세히 분별하였다. 그러나 만약 오직 말에 의지하여 지해만 내고 몸을 바꾸는 길을 알지 못하면 비록 종일 관찰하나 도리어 지해에 얽매이는 바 되어 쉴 때가 없다. 그러므로 다시 지금 납승문하에서 말을 떠나 들어가서 단박에 지해를 잊는 사람을 위함이니 비록 규봉스님이 좋아하는 바는 아니나 조사 선지식이 경절의 방편으로 배우는 이를 제접하는 언구를 간략히 이끌어서 이 뒤에 부쳐 놓아 참선하는 뛰어난 사람들로 하여금 몸 살아나는 한 가닥 활로를 알게 한다.

上來所擧法門은 並是爲依言生解悟入者하야 委辨法有隨緣不變二義하고 人有頓悟漸修兩門이라 然이나 若若一向依言生解하야 不知轉身之路하면 雖終日觀察이나 轉爲知解所縛하야 未有休歇時일새 故로 更爲今時衲僧門下에 離言得入하야 頓亡知解之者하노니 雖非密師所尙이나 略引祖師善知識이 以徑截方便으로 提接學者의 所有言句하야 係於此後하야 今參禪峻流로 知有出身 條活路耳로다. [節要]


이것은 절요(節要)의 결론 부분입니다. 돈오점수는 말을 의지해 알음알이를 내는[知解] 자들을 위해서 설명하기는 하지만 영원토록 그 지해(知解)에 얽매여서는 참으로 깨치지 못하는 것이니, 납승문하 곧 선종을 의지해 일체 언구를 떠나야만 깨친다는 것입니다. ‘단박에 지해를 잊어버리는’ 선종은 규봉스님이 좋아하지 않고 반대하는 것이지만 그렇지만 규봉이 반대한다고 선을 아주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 보조스님의 입장입니다. 보조스님이 초년에는 선(禪)과 교(敎)를 혼동해서 돈오점수를 선종이라고 주장했지만 돌아가시기 반년 전 이 절요(節要)를 낼 때에는 사상이 전환된 것이 확실합니다. 보조스님 자신이 돈오점수는 교가(敎家)의 지해종(知解宗)을 위한 것이지 교외별전(敎外別傳)을 위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했으니만큼 참선을 한다는 사람이면 지해종(知解宗)을 따라가야 하겠습니까, 선종정맥(禪宗正脈)을 따라가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요사이 우리나라의 선방을 볼 것 같으면 내가 젊은 날 행각할 때나 늙은 지금이나, 참선한다는 사람들이 보조스님의 초년에 잘못된 수심결만 보고 자꾸 돈오점수만 주장하는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돈오점수를 순전히 선사상(禪思想)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보조스님을 다 모르는 사람입니다. 팔백 년 후인 지금에 돈오점수가 선종사상(禪宗思想)이라고 주장한다면 보조스님이 살아계셔도 웃을 일입니다. 거듭하는 말입니다만 규봉스님은 평생 동안 교(敎)와 선(禪)을 완전히 구별하지 못하고 돈오점수를 끝끝내 달마선종이라고 고집해서 중대한 큰 과오를 범하고 말았지만, 보조스님은 말년에 가서 돈오점수가 선(禪)이 아님을 밝혔으니 허물이 적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절요(節要)에 있어서도 자가당착의 모순점이 많이 있습니다.


마음이 만법을 꿰뚫으니 뜻의 맛이 가이없다. 모든 교(敎)는 벌려 놓음이요, 선종은 간략함이다. 간략함이란 법에는 불변과 수연의 두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는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이 있으니, 두 가지 뜻이 나타나면 모든 경론의 뜻을 다 알 수 있고, 두 문이 열리면 일체 현성의 가는 길을 볼 것이니 달마의 깊은 뜻은 여기[돈오점수]에 있다.

心貫萬法이라 義味無邊하니 諸敎는 開張이오 禪宗은 撮略이니라 撮略者는 就法하야 有不變隨緣二義하고 就人하야 有頓悟漸修兩門하니 二義現하면 卽知一藏經論之指皎요 兩門이 開하면 卽見一切賢聖之軌轍이니 達磨深旨意在斯焉이니라. [節要]


분명히 보조스님 자신이 달마스님의 깊은 뜻이 돈오점수에 있다고 해놓고, 다시 그 뒤에서 ‘교외별전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敎外別傳者 不在此限]’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달마스님이 전한 것 외의 교외별전이 따로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달마가 두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돈오점수를 전한 달마가 있고, 교외별전을 전한 달마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역사상으로 볼 때 달마가 두 사람 있었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하면 으레 달마선종을 말하는 것이고, 달마(達磨)란 한 사람뿐이지 두 사람이 없으니 그러면 이 문제는 분명히 자기 모순입니다. 이런 모순이 절요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수심결과 결사문에도 있어서 달마선종을 혼동시켜 놓는 과오를 범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수심결에서 ‘먼저 깨치고 뒤에 닦으니 …… 이것이 최상승선이며 …… 달마문하에서 구르고 펴 서로 전한 것이다’ 하고, 정혜결사문에서는 ‘지금 논한 바는 …… 최상승선이니 …… 조종문하에 있어서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홍주종은 돈오문에 비록 가깝기는 하나 적중하지 않음이요, 점수문에 있어서는 모두가 어긋난다. 무릇 마음 닦는 사람은 오직 하택스님을 믿고 따를 뿐이요 다른 종은 믿고 가지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彼宗(洪州)은 於頓悟門에 雖近而未的이오 於漸修門에 而全乖라 하니 凡修心人이 唯取信於荷澤이오 不取信於餘宗이 必矣라.


이 부분은 앞에서도 인용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조스님은 앞의 말을 끌어 놓고서 오직 돈오점수의 하택스님을 따라갈 것이지 마조스님이나 우두스님 같은 분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참 곤란한 말입니다. 마조스님은 조계정전(曹溪正傳)으로서 천하가 다 공인하는 사실인데 자기 입으로 하택은 지해종사라 하고 조계적자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우리가 누구를 따라가야 되겠느냐 하면 지해종[荷澤神會 是知解宗師 …… 爲因敎悟心之者]인 하택과 규봉을 따라가야 된다 하니 이것도 모순이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냉정히 비판적 입장에 서서 진실을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