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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安)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고, 반(般)은 일어난 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것이 이미 일어났으면 곧 수의가 된다. 만약 이미 뜻을 일으키면 곧 수의가 된다. (그러나) 만약 이미 뜻을 일으키고 곧 달려가서 지키지 않으면 당연히 돌아온다. 그렇게 때문에 부처님이 안반수의를 설법하신 것이다.
해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며 끝은 또한 새로운 시작이므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호흡도 들숨에서 시작하여 다시 시작으로 이어진다. 나가는 숨도 들어온 숨이 극치에 이르면 나가게 된다. 모든 존재의 처음을 들숨에 비유한다면, 들숨은 아직 존재하기 이전의 것이므로 존재의 연원이다. 생명 활동은 들숨에서 비롯되지만, 들숨의 단계는 시작에 불과할 뿐 날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취된다. 들숨을 통해 산소가 들어와서 혈관의 피로 흡수되고, 폐를 통해 가스교환이 이루어져 모든 세포에 공급되는 과정을 거친 후에 생명이 활력을 얻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의식 없는 호흡이 있을 수 없으며, 육체적인 운동인 호흡과 호흡하고자 하는 의식이 하나로 융합되고 있다고 본다. 이때 들숨과 날숨이 완전히 행해지려면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만일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예사롭게 호흡하면 길고 짧은 호흡의 리듬에 혼란이 와서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만약 이미 뜻을 일으키면 곧 수의가 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호흡운동을 조절할 경우 일시적인 조화를 가져올 수는 있으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하여 완전한 호흡이 되지는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방심하면 다시 예사스러운 호흡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일상적인 호흡을 올바른 호흡으로 바꾸어 그것을 굳히려면,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단계를 지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실제 사람에게 복식호흡을 익히게 하려면,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복식호흡을 하게끔 수련시켜 습관이 되게 해야 한다. 자율신경을 조절하는 힘이 생기면 무의식적으로 복식호흡을 할 수 있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올바른 호흡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의식이 무의식의 차원에서 집중되어 있으므로 정신과 육체가 안정되며, 따라서 올바른 몸가짐과 올바른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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