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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安)은 오음(오온)을 받고, 반(般)은 오음을 제거한다. 수의는 깨달음의 인연이 되며 몸과 말과 뜻에 따르지 않는다. 수의란 집착하는 바가 없는 것으로 집착하는 바가 있으면 수의가 되지 않는다. 마음이 일어나면 다시 멸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도가 되고 이것이 수의가 된다. 수의는 마음이 생(生)하지 않게 한다. 생하면 그것으로 인해 죽게 되므로 수의가 아니다. 마음이 죽지 않게 하라, 죽으며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생하나니, 죽지 않는 것, 이것이 도가 된다.
해설 우리의 몸은 물질적인 요소와 정신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곧 물질적인 색(色)과 네 가지 정신적인 명(名)이다. 네 가지 정신적인 명이란 물질과 외부 세계를 감사하는 정신작용의 힘인 수(受), 그것을 다시 생각하여 기억하는 힘인 상(想), 그 생각을 일으키는 힘인 행(行), 외계의 사물을 인식하는 작용의 식(識)이다. 물질과 네 가지 정신작용이 어울려서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그 몸 안에 우리의 생명이 담겨 있다. 따라서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이들 다섯 가지 요소를 받아서 지니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들은 번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번뇌는 이 다섯 가지 구성요소에 대한 견해가 그릇되어 있을 때 나타난다. 즉 이 요소들이 본래 실체가 없이 단지 인연에 의해 모인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이런 잘못된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 그러나 날숨으로 이 고통을 없앨 수 있다. 번뇌를 불러일으키는 다섯 가지 구성 요소인 색, 수, 상, 행, 식이 우리를 괴롭히지만, 이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으면 번뇌는 사라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들숨이 오음(五陰)(오온五蘊)을 받는다면, 날숨은 들숨으로 인해 생긴 번뇌를 없앤다. 호흡은 오음을 받고 다시 이를 제거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오면 가고 가면 오며, 생하면 멸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것이 곧 인연이다. 즉 숨이 들어오면 나가게 되어 있다. 인간은 번뇌를 갖고 사는 동시에 그 번뇌를 없애면서 살기도 한다. 이역시 인연법에 의한다. 생명을 받아서 잘 유지하는 것이 인간의 소망인 동시에 생명이 소멸할 때가 되면 그에 순응하는 것 역시 인간의 소망이다. 다시 말해서 삶이 인간의 소망인 동시에 죽을 때 잘 죽는 것도 인간의 소망이다. 우리는 이 모든 현상이 인연법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인연법을 아는 힘은 바로 호흡에 대한 정신집중에서 비롯된다. 호흡의 들어오고 나감을 의식하여 그 실상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 되기 때문이다. 오고 가는 것, 받고 제거하는 것, 죽고 사는 것 등을 통해서 그 실상을 파악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오온을 떠나서는 공(空)의 깨달음이 있을 수 없다. 오온 자체를 통해서 오온이 공이라는 사실을 하는 것이다. 번뇌를 통해서만 번뇌를 떠날 수 있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삶과 죽음을 통해서 그것을 초월한 세계로 갈 수 있다.
정신을 숨에 집중하여 인연법에 따라 들숨과 날숨을 올바르게 행하면 몸과 말과 마음도 이에 따르게 된다. 호흡이 바르지 않으면 몸과 말과 마음이 제멋대로 움직여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곧 인연을 깨닫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잘 지킨다는 것은 어떤 사물에 집착하는 바가 없이 공의도로, 즉 인연의 도리에서 떠나지 않음이다. 사물에 집착하게 되면 정신집중이 잘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마음이 어떤 사물에 집착하는 까닭은 그것을 실체로서 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마음도 실체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집착할 수 있단 말인가 마음은 일어나면 곧 멸하므로 생과 멸은 마음속에서 찰나 동안에 반복된다. 그러므로 마음이 올바른 상태에 있으려면 그것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생과 멸도 있을 수 없다. 생과 멸이 있으면서도 없는 세계를 도(道)라고 한다. 도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생과 멸의 되풀이 속에서 그것을 떠난다는 뜻이다.
수의는 호흡에 정신이 집중되어 호흡과 하나가 된 상태에서, 들어오는 숨이면서도 들어온다는 생각이 없고 나가는 숨이면서도 나간다는 생각이 없다. 정신을 호흡에 집중할 때, 처음에는 숨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다고 느낀다. 이때에는 생과 사가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정신을 집중하면 드디어는 숨이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느끼지 않게 된다. 이때에는 생과 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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