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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켜서 생(生)하지 않게 하고, 둘째는 이미 생한 것이 당연히 못쓰게 되어 멸한다. 셋째는 이미 일이 이루어지면 당연히 이에 따라 억만겁을 헤아리더라고 후회하여 다시 짓지 않는 것이다. 지키는 것과 마음은 각각 다르다. 시방(十方)의 일체를 깨달아 알되(그것을) 범하지 않고 보호함이 지키는 것이고, 그 무위를 깨닫는 것이 마음이다. 수의이다.
해설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되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한 곳에 머물러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다시는 흔들리지 않고, 잡된 생각도 일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이미 고요한 마음이 이루어졌으나 다시 그 마음이 흔들려 없어지는 상태이다. 셋째는 이미 일이 이루어졌으므로 그 마음을 잘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어제까지나 잘못되지 않도록 하여 다시는 마음이 흔들리거나 잡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들 세 가지 마음가짐 중에서 첫째가 가장 바람직하고 둘째가 가장 나쁘며 셋째는 중간에 속한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객관 세계를 대하면서 그에 이끌려 고요한 상태를 간직하지 못한다. 그러나 수행을 하여 마음을 조복(調伏)하는 힘을 얻으면,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 머물러 다시는 흔들리지 않고 항상 어디서나 나 자신과 함께 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까지는 지켜진 마음이 사라지기도 하고 달려서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밖으로 달려나가는 마음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은 마음이 아직 고요한 곳에 머물지 못해 수양의 단계가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사라진 것을 되찾거나 달려나간 마음을 잡기 위해서도 지속적인 수행이 필요하다.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되어 떠나지 않음을 수의(守意)라고 했는데, 여기서 수(守)(지킴)와 의(意)(마음)는 서로 다른 점이 있다. 한 곳에 머물러 떠나지 않음은 마음이 객관 세계의 모든 것을 대해서 깨달아 그로부터 떠나지 않음이다. 만일 그로부터 떠난다면 깨달음이 지켜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꽃 한 송이가 있다고 하자. 마음을 고요히 하여 꽃을 대하면 그 꽃의 빛깔이나 향기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리하며 마음과 꽃이 하나가 되면 꽃의 진실과 내가 깊은 곳에서 만나고, 그로 인해 서로 주고받음이 생겨 꽃에 대한 사랑이 솟아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꽃을 본 마음이 꽃으로부터 떠나면 그 꽃의 진실을 감득할 수도 없고 나의 진실 또한 꽃을 향해 다가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꽃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그 꽃을 꺾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관계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일체의 객관적인 대상을 대할 때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깨달아 그 깨달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 유지해야 한다. 깨달음이 한결같이 지켜지면서 마음이 동요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무위(無爲)이다. 마음이 대상을 만나 잘못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엔 이런 뜻이 있고 그것은 곧 수의를 뜻한다. 호흡에 의식을 집중하여 그 마음이 떠나지 않으면 일체의 그릇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불교 명상은 대상에 정신을 집중하여 한결같이 머물러 있도록 하는 관법(觀法)이다. 관은 대상에 마음을 집중시켜 그 실상을 깨닫는 것, 곧 수의와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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