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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은 땅, 상수는 쟁기, 지는 멍에가 되고, 관은 씨앗, 환은 비, 정은 행이 된다. 이 여섯 가지가 곧 도에 따르는 것이다.
해설 여기서는 호흡을 농사에 비유하고 있다 농사꾼의 목적은 농사를 잘 지어 많은 수확을 얻는 것이다. 수행자의 목적은 생명을 유지 할 뿐만 아니라 도를 깨닫는 것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땅이 필요하다. 또한 쟁기나 소에게 거는 멍에도 있어야 한다. 때가 되면 땅을 갈아 씨앗도 뿌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수확을 얻을 수 없다. 비도 알맞게 내려야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조건이 조성되어야만 수확을 얻을 수 있다.
숨을 세는 것을 땅과 같다고 했다. 수식을 농사를 짓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땅에 비유한 것이다. 생명의 근본이 되는 호흡의 요체인 정신을 집중하는 수식이 장차 깨달음이라는 수확을 얻기 위한 기본 토양이 된다는 뜻이다.
상수는 쟁기에 비유한다. 땅의 굳고 무름에 따라 쟁기로 얕거나 깊게 갈아야 한다. 쟁기로 땅을 갈지 않으면 씨를 뿌릴 수 없듯이 호흡과 마음이 조화되지 않으면 호흡 운동은 생명을 유지하고 발전하게 할 수 없다. 호흡과 마음을 잘 조화시키는 것은 씨를 뿌리기 위해 땅을 쟁기로 고루 갈아 다스리는 것과 같다.
마음을 호흡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지(止)는 마치 소의 목에 거는 멍에와 같다. 멍에가 없으면 소는 쟁기를 끌지 못하니 땅을 갈 수 없다.
숨에 정신을 집중하여 호흡하는 관은 모든 현상에 대한 관찰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일체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은 그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첫 단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씨앗과 같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모습을 관찰하여 그것을 안다는 것처럼 보이고, 또한 즐거워 보이고, 마치 어떤 실체가 있어서 만상(萬像)이 존재하는 듯하다. 모든 것이 깨끗하고 바람직하며 소망하던 것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런 모든 것들은 무상하고, 고통이 따르며,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연에 따라서 이루어졌다는 것과, 절대적으로 청정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물의 내면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지혜는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객관 세계로 달려간 마음을 되돌려 나에게 오게 하여〔還〕, 주관 속에서 그것을 분석하고 해체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런 지혜는 마치 씨앗에 수분을 공급하는 것과 같다. 비가 내려 수분이 공급되면 씨앗은 스스로를 해체하여 깊이 간직하고 있는 진실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게 된다.
우리의 마음도 겉에 나타나는 마음이 아니라 깊숙한 곳에 간직되어 있는 마음이 참된 본래의 마음이다. 그러나 그것이 외부 세계를 아는 마음과 전혀 다른 것은 아니다. 외부 세계를 알 수 있는 마음이 보다 심화되고 순화되면, 마음은 본래의 사명을 다하여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마음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면 걸림 없는 진리를 행하게 된다. 청정한 행위란 이것을 말하다. '정(淨)은 행이 된다.'는 깨달음의 실현이요 진리의 실천이다.
이 여섯 가지가 깨달음이라는 수확을 얻기 위한 농사의 조건이다. 이들은 건너뛸 수도 제외할 수도 없다. 이 여섯 가지가 깨달음을 얻는 인연이다. 그래서 육인연(六因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제8권의 <수다라품(修多羅品)>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안나(安那)(들숨)란 가지고 오는 것이고, 반나(般那)(날숨)란 가지고 가는 것이다. 염(念)(수의)이란 억념(億念)이다. 안나반나(안반)를 행함에 잘 살피고 마음을 유념하여 허망함이 없도록 한다. 안반념 (安般念)(안반수의)은 곧 혜성(慧性)이다. 혜에 생각이 더하기 때문에 안반념이라고 설법한다. 숙명(宿命)의 목숨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처음 일어나는 날숨은 모태 속의 배꼽에서(전생의)업으로부터 생한 바람이 일어나, 위나 아래로 향하여 윗몸과 아랫몸의 털구멍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목숨이 끝날 때의 날숨이 최후의 숨이다.
정수(正受)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들숨, 날숨이 없는 제4선정에 들어갈 경우에도) 날숨의 시작으로부터 입정(入定)하고, (다음에 그 정으로부터 나와서 들숨, 날숨을 시작할 경우에는) 들숨의 시작에서 출정(出定)한다.
여섯 가지 인연이 있다는 것은 여섯 종류의 안반념을 얻는다는 뜻이니. 이른바 수(數)·수(隨·지(止)·관(觀)·환(還)·정(淨)이다.'
생명의 창조와 완성은 호흡에서 비롯되고, 날숨은 들숨의 시작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숨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은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 모든 것이 둘이 아닌〔不二〕,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올바른 호흡이요, 여섯 가지 단계의 호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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