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4. 수식과 상수 - 1. 수식은 초선이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5. 16:00

4-1. 수식은 초선이다

수를(셀) 때에 생각이 열의 숨에 이르면 외선(外禪)을 갖게 된다. 몸이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공에 따르면 내선이 된다. 선법을 (행할 때)잘못이 와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버린다고 한다.

입을 다물고 수식이 기에 따라서 나가고 들어오며, 어디에서 기가 발생하고, 멸하는지를 알아 그 마음이 생각하는 곳에 있으면 수식을 얻지 못한 것이다. (수식이) 느리거나 빠르고, 크거나 작아도 역시 수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귀로 어떤 소리를 들어서 산란해져도 수를 얻지 못한 것이다.

수식에서 마음이 숨과 수에(따로)있으면 공교롭지 못한 것이요, 마음의 움직임이 마음에 있으면 지(止)가 된 것이다. 마땅히 알지니, 마음은 기의 일어나고 멸함에 따르는 것이다. 이에 있어서 수의 인연이 다하면 마땅히 곧 마음의 안정이 얻어진다.

수의는 들숨·날숨을 생각하는 것이니, 이미 숨을 생각하여 잘못이 없으면 수의가 된다. 숨은 인연을 만나면 생하고 인연이 없으면 멸하고, 인연이 끊어지면 숨도 그친다.

수식은 지극한 정성으로 이루어진다. 숨은 흩어지지 않으면 인욕이 된 것이다. 수식은 기가 미세하여 다시 나가거나 들어오는 것을 깨닫지 않게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마땅히 한 생각이 지켜지면 지킨 것이다. 숨은 몸에 있고 또한 밖에도 있다. 인연을 얻으면 숨이 생하고, 죄가 아직 그치지 않았으므로 숨이 있다. 인연을 끊으면 숨도 다시 생하지 않는다.

해설
선(禪)이란 정려(精慮), 혹은 정(定)이라고 번역된다. 마음이 고요한 세계로 가는 것이요,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한 곳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세계로 가는 것이며 한결같이 순수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범어인 댜나dbyana를 음역하여 선나(禪那) 또는 선(禪)이라고 한다. 고요히 생각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선을 닦을 때에는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편을 쓸 수 있다. 수식도 하나의 방편이다. 수를 세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방편일 뿐이다. 그런데 수를 세는 행위는 나 자신에게 마음을 쏟는 것이 아니라 밖의 세계에 마음을 두는 것이다. 나 자신이나 이외의 것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모두 방편이라는 점은 같으나, 안과 밖의 다름이 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수를 세면 밖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므로 외선이 되고, 나 자신의 부정함을 생각하면 내선이 된다.

몸의 부정함을 생각하는 관법을 부정관(不淨觀)이라고 한다. 부정관은 자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아상(我想)을 끊어주고, 상견(常見)에 매여 있는 사람에게 상견을 제거하는 방편으로 예부터 많이 사용되던 관법이다. 특히 원시불교나 소승불교 시대에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익히기 위해서 이 관법을 즐겨 가르쳤다.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제8권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묻되, 부정관은 어떤 방편인가? 답하되, 부정관을 닦는 사람은 묘지로 가서 시체의 부정한 모습을 보고, 거처로 돌아와서 발을 씻고 편안히 앉아 마음과 몸을 유연하게 하고 모든 번뇌를 떠나 그 시체를 나의 몸에 비교한다. 마음을 집중하여 발목, 정강이, 넓적다리뼈, 허리뼈, 등뼈, 옆가슴뼈, 손뼈, 팔뼈, 어깨뼈, 목뼈, 턱뼈, 이빨, 해골 등에 마음을 둔다. 혹은 마음을 미간(眉間)에 둔다. 만약 간략한 관법을 바란다면 먼저 몸에 마음을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관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관법을 행하고자 하는 자는 미간에서부터 관하여 해골에서 발 뼈에 이르게 한다.

그 다음에는 앉은자리, 한 방 안, 한 집 안, 한 가람, 한 마을, 한 고을, 한 나라에 가득히 부정한 시체가 있음을 관한다.

만약 마음에서 쉽게 부정한 생각이 일어나는 사람은 이런 절차가 필요 없다. 만약 대지에 두루 찬 빛을 보는 사람은 이 대지에 백골이 가득하다고 관한다. 만약 다시 간략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차제로 돌아와서 미간에 이르러 마음을 미간에 둔다. 이를 부정관이라 한다."

이와 같이 내 몸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여 결국 썩어 없어질 것이므로 깨끗하지 않음을 생각하여 알면, 드디어는 모든 것이 실체가 없는 공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마음이 한결같이 공에 따르게 되므로 마음이 텅 빈 상태에서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다. 이를 내선(內禪)이라고 한다. 선법을 닦을 때 장애가 되는 것들은 버려야 한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이 평온하게 가지려면 먼저 화기(和氣)가 필요하다. 입을 닫고 코로 숨을 쉬면서 수를 셀 때, 들어오고 나가는 기운에 따르는 일이다. 숨이 마음에 따르고, 들어오고 나가는 기운이 따르는 일이다. 숨이 마음에 따르고, 들어오고 나가는 기운이 절도가 있으면 화기라고 할 수 있다. 들어오고 나가는 기운이 고르게 되려면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되어 따 생각이 없어야 한다. 수를 셀 때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며 수식이 되지 않는다. 또한 숨이 너무 느리거나 빠르고, 또한 숨이 너무 크거나 작아 고르지 않으면 수를 세는 것도 고르게 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시끄럽거나 혼란스러운 소리가 들려도 수식이 잘 되지 않는다.

수식에서는 숨과 수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마음이 같이 따라야 한다. 이를 화기라고 한다. 숨과 수와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한결같이 움직이면 움직임이 있으면서도 움직이지 않게 된다. 마음이 한 곳에 머물러 숨과 수가 함께 있는 것이다.

수식관은 결국 외선과 내선이 하나가 된 상태이다. 안과 밖의 인연을 얻어서 비로소 선이 이루어진다. 수식은 선법으로 보면 초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