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식은 마음이 흐트러지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마음의 흐트러짐이 없이 다시 상수를 행하면 다음의 윗 (단계인) 마음을 얻어서 그치는 것을 알게 된다. 그침과 관찰함이 같고, 돌아옴과 청정함이 같다. 도를 행하여 미세한 마음을 얻어 마음이 뒤바뀐 사람은 마땅히 다시 숨을 헤아릴지니, 만일 이미 경을 읽고 다시 선을 행하여 마음이 미세해졌으면 수식이 아니라 상수를 행하는 것이다.
해설 상수는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수식을 통해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인 상수와 지, 관, 환, 정의 세계에 차례로 머물게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수식에서 청정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산란함이 없어진 미세한 마음이 이어진다. 수식을 통해서 이 미세한 마음을 얻으면 호흡이 조절되고 마음이 안정될 뿐만 아니라,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진실을 알 수 있고,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와서 청정본심을 간직하게 된다.
수식을 통해서 얻어지는 미세한 마음이란 고요한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얻으면 잘 간직해야 한다. 만일 다시 마음이 뒤바뀌어 크고 거칠게 되면 마땅히 숨을 헤아려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
경을 일고 나서 참선을 닦으면 마음이 곧바로 고요해진다. 독경을 통해 흩어진 마음을 바로잡고, 다시 참선을 통해 그 마음을 한결같이 간직하면 수식의 단계가 아닌 상수의 단계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선에 네 가지, 호흡법에도 여섯 단계가 있지만 결국 마음 하나를 잡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의 고요함으로부터 얻어지는 과보(果報)가 바로 지, 관, 환, 정이다. 이들은 모두 수식과 상수로부터 얻어진 흩어지지 않는 마음이 발전되어 우리의 마음에 나타나는 과보이다. 사물의 실상을 관찰하려면 마음이 그것을 인식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마음이 고요해야 한다. 거울이 맑으면 사물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는 이치와 같다. 또한 자신의 본래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도 이와 같다. 마음이 흩어지면 마음이 객관 세계의 사물에 끌려서 달려가기 때문이다. 마음의 본래 모습은 밖으로 달리지 않고 고요하게 머문다. 마음의 고요함이 바로 본심이다. 하지만 고요하다고 해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움직이면서도 고요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청정의 세계이다. 안팎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고요함속에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있다.
안반념법을 분류하면 여섯 단계로 나눌 수 있지만 사실상 근본 마음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흩어지지 않는 하나의 마음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