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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에겐 여섯 가지 깨끗한 마음이 있다. 곧 수식, 상수, 지, 관, 환, 정이다. 이 여섯 가지는 능히 형태가 없는 것을 제어한다. 숨이 또한 이 마음이면서 또한 마음이 아니다. 수를 헤아릴 때는 마음이 숨에 있으므로 이것이 (마음이) 되고, 수를 헤아리지 않을 때에는 마음과 숨이 각각 움직이므로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숨으로부터 이미 마음이 생했으니 그치면 마음이 없는 것이다.
해설 우리의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있다'라고 할 경우에 반드시 형태가 있어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형태가 없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마음은 형태가 없지만 우리는 경험이나 이치를 통해서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이 항상 근본을 떠나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청정한 마음만이 존재한다. 깨끗한 마음을 가진 붓다 같은 사람도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여러 가지 마음이 나타날 수는 있으나 그 바탕이 깨끗함을 떠나지 않으므로 항상 청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호흡을 통해 마음을 닦을 때에도, 처음에 수식은 깨끗한 마음으로 들어가는 첫 단계이고, 다음의 상수는 마음과 호흡이 떠나지 않으므로 깨끗한 마음이며, 셋째 단계인 지는 마음이 한 곳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으니 이 역시 깨끗한 마음이다. 다음 단계인 관도 사물을 관찰할 때 한결같이 그 대상과 함께하니 깨끗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환의 단계는 자기 본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마음이므로 역시 깨끗한 마음이고, 정에서는 마음이 객관을 대함에 걸림이 없으니 이 역시 깨끗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끗한 마음이란 이처럼 여러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 여섯 가지 깨끗한 마음은 형태가 없는 마음을 억제하는 힘이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잘못된 번뇌 등을 억제한다. 마치 물이 스스로 거센 물결을 억제하는 것과 같다. 물이 움직이는 것도, 고요히 있는 것도 물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힘이다. 움직이는 파도와 같은 잘못된 마음을 고요하게 안정시키려면 그 마음을 잡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 움직이는 마음을 잡아야 한다.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하지 못한 마음인 번뇌 등을 잡는다. 깨끗한 마음이 모든 마음의 근본이기 때문에, 근본 힘을 기르면 그로부터 파생된 다른 것도 잡을 수가 있다. 마음이 마음을 잡는 것이다. 물질이 정신을 잡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마음을 잡는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 입장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을 바로잡으려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유물론자들은 마음을 잡으려면 물질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하고, 유심론자들은 마음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교는 마음을 잡거나 움직이는 주요 힘은 마음에 있으나 물질도 관련되어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물질과 마음은 다르면서도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숨은 물질적인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지만, 결코 마음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생리작용이다. 숨은 형태가 없으나 마음에 의해 좌우된다. 단순히 숨을 공기의 출입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물질의 작용일 뿐 마음의 작용은 아니다. 하지만 그 숨이 수를 헤아리는 마음과 만나 하나가 되면 숨과 마음은 서로 다르지 않아 물질인 숨이 곧 마음이 된다.
안반념법은 물질과, 마음 숨과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한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살아 있는 무형의 생명 현상이니, 마음으로 이를 제어하여 올바르게 행해지도록 하는 것이 호흡의 근본원리이다.
호흡은 숨과 마음이 하나가 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는 숨이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숨을 지배해야 한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 입장을 잘 살리는 길이다. 붓다의 호흡법은 마음을 주로 삼는 인간의 현존재를 꿰뚫어보는 지혜로부터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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