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10-3. 장애물을 없애는 지혜

通達無我法者 2007. 12. 5. 17:40

10-3. 장애물을 없애는 지혜

행상을 받지 않음이란 서른두 가지 물건을 보지 않음이요, 《삼십칠품경》을 생각하지 않음이니, 이것이 행하는 모습을 받지 않는 것이다. 타인의 모습을 받음이란 아직 열의 숨을 얻지 못한 것이다. 곧 행이 서로 따른다. 이것이 타인의 모습을 받음이다. 다른 생각이란 숨이 들어올 때에 나가는 숨을 생각하고, 숨이 나갈 때 들어오는 숨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생각이다. 생각이 채워지지 않음이란 아직 일선(一禪)도 얻지 못했으면서 이선(二禪)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생각이 채워지지 않음이다. 억지로 뜻을 억제한다는 것은 앉아 있어도 마음이 흩어져서 숨을 얻지 못함이다. (이때) 마땅히 경행하거나 독경을 하여 흩어지지 않게 한다. 이것이 억지로 뜻을 억제하는 것이다. 정진을 지혜롭게 해야 하니 이 여섯 가지 일 가운데에서 달린다. 곧 수식, 상수, 지, 관, 환, 정의 여섯이다.

해설
앞에서 든 18가지는 안반수의를 닦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들이다. 이 중에서 몇 가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로 행상을 받지 않음(不受行相)은 붓다가 안반수의를 행하여 32상을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요, 《삼십칠품경》의 내용이 곧 안반수의임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다.

붓다는 과거세부터 수행할 때 훌륭한 생각을 수없이 일으켜서 복덕을 지은 결과로 32상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32상의 거룩한 모습을 백사장엄(百思莊嚴), 또는 백복장엄(百福莊嚴)이라고 한다. 복은 착하고 거룩한 행위를 말하고, 장엄은 그 선행으로 하나하나의 모습을 꾸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32상은 붓다가 전생으로부터 선행을 통해서 이룩해 놓은 모습이다. 바로 이러한 선행이 안반수의를 통해서 얻어진다.
붓다의 32상의 장엄한 모습은 다음과 같다.

(1)발밑이 땅에 밀착하여 편안하게 머물렀다(足下安平立相).
(2)발 속에 천(千)의 수레바퀴살(輻)이 있는 둥글고 보배스러운 문(紋)금이 있다(千輻輪相).
(3)손가락이 길다. 
(4)발꿈치가 넓고 평평하다.
(5)손과 발가락이 줄이 고른 물갈퀴의 금이 나 있다.
(6)손이 유연하다.
(7)발 뼈가 높고 풍만하여 두둑하다.
(8)팔의 뼈가 마치 녹왕(鹿王)과 같이 알맞게 섬세하고 통통하다.
(9)서면 양손이 무릎을 덮는다.
(10)음부가 말과 같이 내부로 감추어져 있다.
(11)몸의 길이와 너비가 균형이 잡혔다.
(12)몸의 터럭이 위로 향하여 잘 나 있다.
(13)털구멍 하나하나에서 털이 나 있다.
(14)몸에서 금빛이 난다.
(15)몸에서 나는 빛이 한 길을 비춘다.
(16)섬세하고 부드러운 피부를 가졌다.
(17)두 손, 두 발, 두 어깨, 목덜미 일곱 군데에 살이 잘 솟아 있다.
(18)두 겨드랑이 밑이 통통히 솟아 있다.
(19)몸의 윗부분이 사자와 같다.
(20)몸이 크고 곧다.
(21)어깨가 둥글고 원만하다.
(22)40개의 이가 나 있다.
(23)이가 고르게 나 있다.
(24)어금니가 희고 깨끗하다.
(25)볼이 사자의 볼과 같다.
(26)최상의 미각을 가지고 있다.
(27)혀가 넓고 길다.
(28)목소리가 거룩하다.
(29)눈동자가 푸르고 맑다.
(30)속눈썹이 소와 같이 높게 났다.
(31)머리 위의 살이 상투 같이 솟아나 있다.
(32)미간에 흰 터럭이 있어 빛이 난다.

이상은 인도에서 고래로 행해지던 상(相)을 점치는 상서로운 모습을 대표한다. 붓다는 이러한 모습을 모두 갖추었다. 붓다가 태어났을 때 이미 정평있는 선인으로부터 이런 장엄상을 갖추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위대한 성군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나 각자(覺者)에게서나 나타나는데 붓다가 이런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전생으로부터 선행을 닦아서 그 복덕으로 이생에 장엄상을 받은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안반념법은 마음과 몸을 올바르게 하는 수행이므로 안반념법을 닦을 때에는 32상을 눈에 그리면서 내생에라도 이러한 상의 보를 받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삼십칠도품경》의 내용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 나타나는 거룩한 모습이다. 사념처(四念處), 사정근(四正勤), 사여의족(四如意足), 오근9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 등이다.

사념처인 우리의 몸(身)과 받아들여지는 감수작용(愛)과 마음(心)과 만유(法)에 대하여 이들이 생하고 멸하는 근본을 관하고 인연을 성찰하여 그에 따라서 생사의 고를 보고, 고를 벗어나는 길로 가서 제2단계의 행법으로서 네 가지 바른 노력인 사정근을 닦는다. 곧 아직 나타나지 않은 악을 끊으려고 애쓰고, 이미 생긴 악을 끊으려고 애쓰고, 아직 나타나지 않는 선을 나타내려고 애쓰고, 이미 나타난 선을 증대시키려고 애쓰는 일 등이다. 그 다음에는 3단계에서 앞의 선법을 구족하게 하려면 서원을 세우고 더욱 노력하여 마음을 전일하게 하며 부동심으로 마음을 이미 바라는 바에 따르니, 바라는 대로 따르는 욕여의족(欲如意足)이 이루어지고, 몸과 마음이 더욱 힘을 얻어서 정진하며, 마음가짐이 전일해지고, 성찰과 사유가 지혜롭게 된다. 이를 네 가지 신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이미 신족을 얻어서 이들의 행해짐을 보아 믿음이 생기고, 심신이 견고하여 후퇴하는 일이 없이 정진하게 되고, 항상 진리를 생각하여 뜻이 법에 머물게 되고, 전일한 굳은 마음가짐과 능히 법을 분별하여 나갈 바를 아는 지혜가 갖추어진다. 이러한 다섯 가지 능력을 키운다.

다음으로는 이들 다섯 가지 능력을 확고하게 자신의 것으로 갖추면 능히 마음에 온화함을 가지게 되니 곧 신력(信力)이다. 또한 정진하는 힘이 생겨서 바라는 바를 이루게 된다. 또한 법을 생각하고 견고한 마음으로 전념하고 제법을 분별하는 힘을 얻게 된다. 

이렇게 되면 몸과 마음이 짓는 업이 모두 청정하여 법을 살펴서 참과 거짓을 알고(擇法覺意), 바른 수행의 길에서 정진하는 깨달음의 마음(精進覺意)을 얻고, 마음에 선법을 얻어서 기뻐하고(喜覺意), 그릇됨을 제거해 그 멸을 본다(除覺意). 또한 그릇됨을 추모하는 마음이 버려지고(捨覺意), 마음이 한결같이 고요하여 번뇌 망상이 일어나지 않으며(定覺意), 뜻하는 대로 고요함과 지혜가 한결같이 된다(念覺意). 이들 일곱 가지가 칠각의(七覺意)이니, 이를 이루면 팔정도가 행해진다.

팔정도 중에서 정견(定見), 정사유(正思惟)는 관(觀)에 속하고, 정념(正念), 정정(正定)은 마음의 적정이니 지(止)에 속한다. 지와 관은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이 둘에 의해서 다른 올바른 말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생활과 올바른 정진이 있게 된다.

이들 37종의 수행이 구족하면 해탈할 수 있으니 이것이 무루(無漏)의 도이다. 이러한 각자의 삶이 이루어지게 하려면 정진함에 한 계단 한 계단을 밟아 올라가야 깨달음의 세계가 완성되므로, 지혜롭게 호흡을 조절하여 이것이 완성되도록 한 것이 여섯 단계의 호흡조절이다. 이것이 바로 수식, 상수, 지, 관, 환, 정이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정진은 지혜이니 여섯 가지 속에서 달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