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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몸의 아픔이나 가려움을 그침이요, 둘째는 말소를 그침이며, 셋째는 생각을 그침이다. 이들 여섯 가지 일은 속히 숨을 얻는 것이다.
해설 앞에서 마음을 그치는 방법에 대하여 설하였으나 다시 이어서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첫째로 몸의 아픔이나 가려움을 그치는 일이다. 즉 외부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그치게 한다.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주관의 세계를 없애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 경우는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고 그 자극으로 일어난 마음을 없애버리는 방법이다. 모든 것은 주관과 객관의 상호관계에서 생기므로 마음을 고요히 그치게 하려면,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고 받아들여 일어나는 마음을 없애야 한다.
이것과 저것에 의해서 모든 것이 있게 된다. 또한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과 저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과 내부의 움직임을 없앨 필요가 있다.
'몸의 통양(痛痒)을 그친다.'는 주관의 움직임인 동시에 객관의 자극이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외부의 자극에 끌려서 자신을 상실하는 생활을 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환경의 정화가 요구된다. 그러나 외부의 자극을 끊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자극에도 움직이지 않는 주관의 세계를 가져야 한다. 이 경우에 외부환경을 무시하면 안 된다. 서로 연기(緣起)의 관계가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아프고 가려움'은 마음의 조건을 말한다. 몸이 아프거나 가려우면 이에 따라서 마음이 움직여 흩어진다. 그러나 마음이 확고하게 정(定)에 들어 있으면 아픔이나 가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려면 먼저 외부의 자극을 없앨 필요가 있다. 이것이 첫째 조건이다. 우리가 흔히 수행하기 위해서 고요하고 한적한 산사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호흡훈련이 잘 된 사람은 마음이 적정에 들어 있어서 아픔이나 가려움 등 외부의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고 초연할 수 있다. 그러니 고요한 산사를 찾을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고요한 곳을 찾아야 한다. 고요한 곳은 먼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둘째는 말소리를 그치는 일이다. 즉 묵언(默言)이다. 말은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말은 마음을 움직이므로 말을 적게 해야 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된다. 또한 숨이 고요하며 길게 나가고 들어오게 하려면 말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 말소리가 상대방에게 들리게 하려면 거셈 숨을 내뿜어야 하는데, 거센 숨이 나가면 그 반동으로 거센 숨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거센 숨이 나가고 들어오면 마음이 거칠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그치면 도를 행하게 되고, 도를 행하면 마음을 그치게 된다고 했다. 거친 행동, 거친 말소리... 이런 것들을 그치게 하려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그치게 해야 하니, 결과로부터 원인이 나온다. 원인과 결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므로 원인을 없애면 결과가 없어지는 동시에 결과를 없애면 원인도 없어진다. 불교의 인과관에서 원인과 결과는 실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는 공이다. 공이기에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원인을 있게 하고 멸하게 한다.
셋째는 생각을 그치는 일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뜻대로 없애기 어렵고, 스스로 괴로워하게 만든다. 그러나 일어나는 마음은 그치게 할 수 있다. 마음의 움직임은 반드시 원인이 있기 때문에 그 원인을 없애면 그칠 수 있다.
생각의 움직임이 호흡의 들어오고 나감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발견이다. 호흡이 거칠면 마음도 움직인다는 사실을 통해서 호흡이 무질서하게 행해지지 않도록 하여 그치게 하면 마음도 그친다.
안반수의법의 세 번째 단계인 지는 호흡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한곳에 머물러 그치는 것이니, 이 단계에 이르면 마음도 그친다.
이상의 여섯은 모두 숨을 올바르게 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경에서 말한 '숨을 얻는다.'는 들어오고 나가는 숨이 수식, 상수, 지, 관, 환, 정의 단계를 통해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되어 버린 상태이니 무의식 속에서 청정한 호흡이 자연스럽게 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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