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12-8. 마음의 대전환

通達無我法者 2007. 12. 5. 18:49

12-8. 마음의 대전환

 

사의지는 곧 마음이 악한 생각을 억제하여 일어나지 않게 하니 그침이 된다. 사의지는 또한 사선에 따르고 사의지에 따른다. 사의지에 따르면 가까운 길이 되고, 악에 집착하지 않으면 곧 선한 생각이 생하고, 사선이 사의정으로 되어서 마음이 그친다.
도를 행하는 데에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몸을 그치고, 둘째는 통양을 그치고, 셋째는 마음을 그치고, 넷째는 법을 그친다. 몸을 그치는 것은 곧 색을 보고 깨끗하지 않음을 생각하고, 통양을 그치는 것은 곧 스스로 더하지 않으며, 마음을 그치는 것은 곧 노여워하지 않고, 법을 그치는 것은 곧 의심하지 않음이다.
도인이 사의지를 행하면 마음이 일어나서 생각이 생기고, 즉시 식이 즐거워하는 행동에 맞서게 되니, 하나의 마음이 그치면 사의지를 얻는다.

해설
사의지는 어디에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를 다시 설명하고 있다. 사의지는 마음에서 악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마음을 억제한다. 이런 마음의 그침은 사선(四禪)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사선은 사정려(四靜慮)라고도 하고, 제1선(초선)부터 제4선까지의 총칭이다. 사선의 차별은 선정에 따라서 나타나는 마음의 작용이 있고 없음으로 구별된다. 

초선에서는 어떤 것을 감지하는 작용과 기쁨이나 즐거움이 있으며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된다. 제2선에서는 사물의 감지작용이 없어지고 걸림이 없이 기쁨이나 즐거움이 평등하게 확대되어 나타난다. 제3선에서는 아무것도 가진 바가 없어 생각이 공을 떠나지 않으며, 지혜가 인연을 따르고, 즐거움이 있고, 마음이 한결같이 고요하기만 하다. 

제4선에서는 즐거움도 없어지고, 모든 것을 떠나서 생각이 청정하여 고와 낙을 받지 않으며, 오직 고요함 속에 움직이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이 있다. 이러한 사선에 들어가서 네 가지 마음을 그친다.

이때는 선만을 생각하게 되어 마음이 한결같이 고요함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사의지는 사선으로부터 있게 되고 사의정(四意定)으로 간다. 도는 모든 것이 그친 데에서 비롯되므로 곧 사의지에 의해서 도가 행해진다. 몸에서 일어나는 그릇된 생각이 없어지면 몸의 그침이고, 아프다거나 가렵다는 감수작용이 그쳐서 더 이상 즐거워하지 않으면 통양의 그침이다. 숨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숨이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서 마음이 생하고 멸하게 되면 마음이 그침이다.

모든 사물이 인연으로 생하고 멸하는 법에 끌리지 않으면 법을 그침이니, 사의지는 몸과 감수작용과 마음과 법ㅇ의 네 가지가 인연이 되어서 그친다. 이렇게 하여 사의지가 이루어져서 몸이 그치면 색을 보고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고, 모든 감수작용은 즐겁지 않으므로 아프고 가려움이 더하지 않게 되고, 마음의 그침이 노여움을 없앤다. 마음에 나타난 노여움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므로 소멸시킬 수 있다. 또한 법이 그치면 인연법을 믿게 되므로 인연에 따라서 생각하고 움직여서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들 사의지는 각각 다른 수행으로 얻어지는가? 네 가지 마음은 각각 다른가?'의 문제가 남는다. 다르다면 각각 다른 방법으로 수행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설하고 있다. 나누어서 넷일 뿐 넷은 하나로 통한다. 진리는 하나다. 모든 것은 한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제행(諸行)이 무상하므로 일체는 모두 고요, 제법은 무아(無我)이며, 열반은 적정(寂靜)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는 셋으로 나누어서 하나의 진리를 설명한다. 하나의 진리란 공이며 연기의 도리요 한 마음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마음이 그치면 통양, 마음, 법의 마음도 모두 그치게 된다. 넷은 하나로 통한다는 진리이다. 그러므로 한 마음을 얻으면 일체의 마음을 얻는다. 이는 고요한 마음을 얻음이요, 선한 마음도 얻음이다. 한 마음은 생각을 일으키고, 그 생각을 인식작용을 일으키고, 인식작용은 행동을 일으킨다.

무명에서 행이 있고, 행에서 식이 있고, 식에서 명색(名色)이 있어서 낳고 죽음이 있다. 무명이란 전도된 인식을 일으키며, 이런 인식이 행동을 그르친다. 이처럼 모든 것은 마음에 있으므로 한 마음이 옳지 않으면 모든 일을 그르치게 된다. 그러므로 용수는 무명의 원인을 번뇌라고 하고 번뇌의 원인을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라고 했다.

사리를 올바르게 보지 못하면 인연의 도리를 따라서 마음을 일으킬 수 없다. 인연의 도리대로 일으키지 않는 마음이 악한 마음이고 번뇌이며 전도된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그릇된 행동으로 이어진다. 부처님을 생각하는 우리의 한마음이 부처님의 나라로 가게 하고, 참회하는 한 마음이 깨달음이다.

초발심이 바로 깨달음이다. 범부의 한마음이 그 자리에서 바뀌어 부처의 마음이 된다. 범부의 마음과 부처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범부의 마음이 청정해지면 청정한 부처의 마음으로 바뀐다. 그러므로 《불설대비공지금강대교왕의궤경(佛說大悲空智金剛大敎王儀軌經)》 제2권의 <청정품>에서 '진실한 유가(瑜伽)는 자기전변(自己轉換)이다.'라고 했다. 마음의 전환이 요가요, 마음의 전환이 성불이다. 사의지는 마음의 그침이니 마음의 전변이다. 그 자리에서 그릇된 마음이 청정한 마음으로 바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