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12-12. 나와 남의 몸을 모두 觀하는 일

通達無我法者 2007. 12. 5. 20:46

12-12. 나와 남의 몸을 모두 觀하는 일

 

어떤 때에는 스스로의 몸을 관하고 남의 몸을 관하지 않으며, 어떤 때에는 마땅히 남의 몸을 관하고 마땅히 스스로의 몸은 관하지 말라. 어떤 때에는 스스로의 몸을 관하고 또한 남의 몸도 관하며, 어떤 때에는 스스로의 몸을 관하지 말고 또한 남의 몸도 관하지 말아야 한다.

해설
앞에서는 나의 몸을 관하고 남의 몸도 관하여 인연법을 알면 마음이 그친다고 설했다. 그러나 나와 남은 다르면서도 같으므로 나만 관하거나 남만 관할 수도 있다. 내 속에서 남을 보고, 남에게서 나를 보면 된다. 곧 나에게서 남을 보면 인연법을 본 것이요, 남에게서 나를 보면 연기법을 본 것이다.

'어떤 때에는 스스로의 몸을 관하고 남의 몸을 관하지 않는다.'는 내 속에서 남을 보았으니 나와 남의 인연법을 본 것이다. '어떤 때에는 마땅히 남의 몸을 관하고 스스로의 몸은 관하지 말라.'는 남의 몸 속에서 나를 보라는 가르침이다. 연기법을 본 사람은 내 속에서 일체를 보고, 일체 속에서 나를 본다.

또한 경에서 '어떤 때에는 스스로의 몸을 관하고 또한 남의 몸도 관하라.'고 했다. 자신의 몸은 관하고 남의 몸을 관하지 않음은 내 몸 속으로 남의 몸이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들어오면 다시 나가는 법이다.

그러므로 나의 몸을 관하고 남의 몸도 관하라고 했다. 남의 몸을 관하면 마음이 나가기 때문이다. 호흡의 들어오고 나가는 원리와 같다.

또한 '어떤 때에는 스스로의 몸을 관하지 말고 남의 몸도 관하지 말라.'고 했다. 절대 진리는 이것과 저것을 모두 부정하는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몸을 관하여 깨끗하지 않음을 알고, 다시 남의 몸을 관하여 깨긋하지 않음을 아는 일은 이승(二乘)의 견도(見道)에서 얻어진다.

그러나 보살이나 부처의 단계에서는 나의 몸이나 남의 몸을 관할 필요가 없다. 나와 남이 모두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다.

어찌 정(淨)이니 부정(不淨)이니 하는 말이 있을 수 있으며, 어찌 고(苦)니 낙(樂)이니 하는 분별이 있으며, 어찌 아(我)니 무아(無我)니 하는 말이 있으며, 어찌 상(常)이니 무상(無常)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이들 대립을 떠나고 부정과 긍정을 떠나서 절대긍정의 세계에 머물러서 일체의 분별을 그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