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13-9. 六通智의 세계

通達無我法者 2007. 12. 5. 21:12

13-9. 六通智의 세계

 

사라(沙羅)와 타태(惰怠)란 육통지이다. 첫째는 신족이요, 둘째는 철청이요, 셋째는 타인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넷째는 본래 따라서 온 바를 안다. 다섯째는 어느 곳으로 왕생하는가를 안다. 여섯째는 본래의 누진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여섯이다.

해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지혜를 얻은 사람은 남다른 능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육신통으로 육통지라고도 한다. 신통은 앞에서도 설명한 바 있으므로 다시 되풀이하지않겠으나 여기서 설하고 있는 여섯 가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런데 경문에서 '사라타태자(沙羅惰怠者)'라고 했다. 이 말 역시 팔리어를 생각하게 하는데, 사라(沙羅)는 사다(sada)가 음변하여 사라(sala)로 된 것이라 볼 수 있고, '타태(惰怠)'는 팔리어 디타(dittba)의 음역으로 '보이는 것'이니, 곧 '여섯 가지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깨달은 자에게서 나타나는 능력으로 육신통에 해당한다. 육신통은 사다비즈나(sadabijna)라는 말인데, 이 말이 잘못 전해져서 '사라태타'라고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라태타'는 '사라디타'의 변음으로 전해졌다고 가정한다면 사다디타(sadadittba)→사라디타(saladittba)로 되어서 음대로 적어서 '사라태타'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육신통은 여섯 가지로 나타나는 불가사의한 마음의 능력이니, 마음의 힘이 눈으로 보이게 나타난 것이 육신통이다. 그리하여 그 여섯 가지는 첫째로 신족, 곧 신통신변(神通神變)이다. 신통신변은 팔리어 장부(長部)의 《등송경(等誦經)sangiti-suttanta》에서 보면 '이디파티하리야(iddbipatibariya)라고 하여 "견고(堅固)여, 신통신변이란 어떤 것인가. 견고여, 여기 한 비구가 여러 가지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 한 몸으로 많은 몸이 되고 많은 몸으로 한 몸이 된다. 나타나기도 하고 숨기도 하고, 벽을 뚫고 담을 지나가고, 산을 뚫고 걸림이 없음이 마치 허공과 같고, 대지로부터 나타나거나 대지로 들어가는 것이 마치 물에서와 같고, 물에 빠지지 않고 감이 마치 땅위를 가는 것과 같고, 또한 결가부좌한 채로 허공을 수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를 가진 새와 같다. 또한 저와 같이 대신통이 있고, 저와 같이 대위력이 있어 해와 달에 손을 대어 만지며, 또한 범천계에 이르기까지도 지배한다."고 했다. 

둘째 철청은 천이통(天耳通)이다. 천이통은 청정하여 듣는 힘이 뛰어나서 사람이나 동물이나 기타 지상의 모든 소리를 듣고, 또한 하늘의 귀가 뛰어나서 멀고 가까운 곳을 잘 듣는 힘이다. 셋째는 타심통이다. 즉 타인의 생각을 아는 능력이니, 자신의 마음으로 다른 중생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탐내는 마음, 탐내지 않는 마음, 진심의 유무, 어리석음의 유무, 산란심의 유무, 크고 작은 마음, 뛰어나고 낮은 마음, 고요하고 고요하지 않은 마음, 해탈한 마음이나 해탈하지 못한 마음 등을 모두 안다. 넷째는 숙명통(宿命通)이다. 수많은 전생의 일을 알아서 수많은 성겁, 괴겁, 성괴겁에 있어서, 그곳에서의 이름이나 성씨나 종족이나 직업이나 경험된 고락, 수명의 양과 죽은 곳, 다음 세대의 출생처 등 상세한 것을 모두 생각해내는 것이다. 다섯째는 천안통(天眼通)이다. 곧 죽어서 어느 곳으로 가는지를 아는 힘이다. 마음이 청정하여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천안을 가지고 중생의 생과 사, 우열, 미추, 행불행의 각각의 업에 따라서 생이 바뀜을 안다. 가령 저 삶은 신, 구, 의 삼업이 악하여 성자를 비방하고 그릇된 견해와 그릇된 업을 지었으므로 사후에 고를 받는 악취로 가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거나, 또는 이 사람은 신, 구, 의 삼업이 선행을 닦고, 성자를 비방하지 않고, 정견을 가지고, 정업을 닦아서 죽은 뒤에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아는 것이다. 여섯째는 누진통(漏盡通)이니, 여러 가지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고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를 얻어서 법을 알고 법대로 깨달음에 머무는 것이다.

수행의 과정에서 위와 같은 뛰어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신족통이나 타심통을 쓰지 말라고 하셨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들 여섯 가지 신통 중에서 누진통을 제외하고는 붓다가 본래 설하신 것이 아니며, 누진통과 교계신변(敎誡神變)만이 붓다가 설하신 신통이라고 한다. 교계신변은 중생을 가르치는 묘용과 그 변화를 말한다. 해야할 일과 하면 안 될 일을 알고 그때 그때에 따라서 가르쳐 보이는 뛰어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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