話頭·參禪

[종호스님의 참선강좌] 선수행의 목적 (2)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8:00
[종호스님의 참선강좌] 선수행의 목적 (2)

시작과 회향은 중생제도에 귀결돼...

지난 호에서 밝힌 자신의 마음에 대한 깨달음이 선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선수행의 시작과 회향은 오직 중생제도에 귀결되어 있다. 자신이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다른 중생을 제도하느냐며 자기 수행에만 치우친다면 그것은 선자의 마음가짐이 아니다.

물론 선은 보시나 지계 등 바라밀행의 실천으로 개공성불(皆共成佛)을 지향하는 것과는 달리 내적 깨달음의 추구라는 점에서 자기 수행만으로 비쳐지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입문 단계에서부터 강조되고 있는 관점은 분명하다.

우선 선수행의 방법을 기술하고 있는 자각종색선사의 좌선의(坐禪儀)에는 선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자세에 대해 ‘먼저 마땅히 대비심을 일으켜 큰 서원을 세워야 한다. 곧 삼매를 정밀히 닦아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하며, 결코 자신의 한 몸을 위한 해탈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수행의 목표를 자기 한 몸의 해탈 추구가 아니라 중생의 제도에 두어야 하며, 그렇게 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타불이(自他不二), 곧 나와 내 가족, 나아가 일체중생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은 초조 달마부터 일관되고 있는 관점이다. 달마는 진리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는 해여응물(解如應物)을 설하고 있으며, 혜능은 중생을 제도하여 부처를 이루도록 함(化導令得見佛)을, 임제는 깨달음을 얻고 미묘한 능력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조불(祖佛)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육조가 중생을 구제하고 모름지기 스스로 수행하라(求度世人須自修)고 하거나, 신회가 자신은 깨닫지 못했어도 먼저 다른 이를 구제하라(自未得度先他度)고 하며 자신의 수행보다 타인의 제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선수행자가 지녀야 할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여실하게 나타내주고 있는 내용이다.

또한 송대의 곽암은 저술 십우도(十牛圖)의 맨 마지막에서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지 않고 이전 성인들이나 현자들의 가르침에도 얽매임 없이 세상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중생을 제도, 성불케 하는 입전수수(入纏垂手)를 밝히고 있다. 선자가 살아가는 최고의 이상적 모습으로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중생들의 환경과 근기에 맞춰 제도하는 삶이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진리를 주장함은 다른 이를 얽어매는 것이요, 이전 성현들의 가르침에 의거함도 다른 사람들을 속박하는 것일 뿐이다.

오로지 삶의 현실에서, 각각의 사람들에게 알맞는 무한한 묘용력으로 그들을 제도하여 성불케 하는 각자(覺者)의 삶이야말로 선자의 이상적 모습인 것이다.

선수행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굳은 결의가 있어야 하며, 이런 마음자세로 수행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세상과 함께 하며 그들의 근기에 맞춰 제도하는 입전수수적 조불의 실천행이 뒤따라야 한다. 중생 제도의 실천행, 여기에 선수행의 참된 목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