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감(人天寶鑑)
자수사 묘총(妙總)선사는 소씨 원우(元祐 : 1086~1093)년 간에 승상을 지낸 분의 손녀다. 열다섯살 때 선(輝)이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몰랐으나, 사람이 세상을 사는데 생은 어디서 오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 기세 대해 유투심을 냈다. 그 생각만 하다가 홀연히 깨달은 있었으나 스스로 별것 아니라 여기고, 사람이면 다 그런 줄 알고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부모의 명을 순종하여 서서(西徐)의 허수원에게 시집갔는데 얼마 안돼서 세상살이가 매우 싫어졌다. 재계하고 몸가짐을 깨끗이 함으로써 족했으며, 나아가 세속 바깥에 높이 노닐고 끼였다. 뜻을 세워 옛 사람을 흠모하고 마침내 천암사의 원(圓)선사를 찾아뵈니 원선사 물었다.
“규중의 숙녀가 어떻게 대장부의 일에 끼겠는가?”
“불법에서 남녀 등의 모습을 나둡니까?”
원선사가 따져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니 마음이 부처다는데,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오래 전부터 스님의 이름을 들어 왔는데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덕산스님의 문하에 들어간다면 몽둥이를 맞겠구나.”
“스님께서 만일 천의 공양을 헛받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이에 묘총이 손으로 향로 탁자를 한번 때리니 원선사가 “향로 탁자가 있으니 마음대로 치지만 없었으면 어찌하였겠나?”하고 물었다.
묘총이 밖으로 나가버리자 원선사가 부르며서 말하였다.
“그대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이러는가?”
“밝고 밝게 보니 한 물건도 없다.”
“그 말은 영가스님의 말이다.”
“남의 말을 벌어서 내 기분을 나타낸들 무엇이 안될 것이 있습니까?”
“진짜 사자쌔끼구나.”
당시 진혈선사가 의흥(宜興)에 암자인지를 짓고 살고 있었는데 묘총선사가 그곳을 찾아갔다. 진헐선사는 선상에 단정히 앉아 있다가 묘총이 문으로 들어서다 물었다.
“범부인가, 성인인가?”
“이마에 눈은 무엇 때문에 달려 있소?”
“직접 대면해서 자기 경계를 드러내 보이면 어떻겠는가?”
묘총이 좌구를 집어들자 진헐선사가 말하였다.
“이건 묻지 말라.”
“틀렸다.”
진헐선사가 대뜸 악!하고 할을 하자 묘총도 할을 하였다.
묘총은 강철(江激)지방의 큰스님들을 거의 다 찾아뵙고 법을 묻다가 허수원(許壽源)이 가화(嘉未) 태수로 발령이 나서 따라 가게 되었는데, 오직 묘희(妙喜)선사를 만나뵙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때 마침 묘희선사가 빙제천(潤濟川)과 함께 배를 몰고 가화성에 도착하니 묘총이 소식을 듣고 찾아가 절하고 존경을 표하였다. 인사만 했을 뿐인데 묘희선사는 빙제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온 도인은 천신도 보고 귀신도 보고 온 사람인대 단지 대장간의 풀무로 담금질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마치 만 섬을 실은 배가 물을 건널 것은 아니겠습니다.” 때 아직 움직이지 않았을 뿐인 것과 같다.”
벙제천이 껄껄 웃으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쉽게 하십니까?”하자 대혜스님이 말하였다.
“그 사람이 고개를 돌리기만 한다면 분명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이튿날 허수원이 묘회선사에게 설법을 명하니 묘회선사가 대중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지금 이 가운데는 어떤 경계를 본 사람이 있다. 이 산승은 사람을 간파할 때 마치 관문을 맡아보는 관리와 같아서 누가 오는 것을 보자마자 세금을 가져왔는지 안가져 왔는지 알아차린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자 묘총이 마침내 법호를 지어달라고 하여 대혜선사는 ‘무착(無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다음 해에 경산(徑山)의 법석이 성하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하안거를 보냈는데 하루저녁은 좌선을 하다가 홀연히 깨닫고 송을 지었다.
갑자기 본래면목에 부딪히니
온갖 재주가 얼음녹듯, 기와장 무너지듯 했네
달마는 하필 서쪽에서 와가지고
2조의 헛된 삼배를 받았는가
여기에 이걸까 저걸까 물어본다면
좀도둑 한떼거리가 대패했다 하리라.
騫然撞著鼻 伎倆氷消瓦解
達廣伺必西來 二祖枉施三拜
夏問如伺 一隧草賊大販
묘희선사가 그 송을 다시 읊어보고서 말하였다.
그대는 이미 산 조사의 뜻을 깨달았으나
단칼에 두쪽내듯 당장에 알아버렸다
기연에 임해서는 하나하나 천진에 맡겨라
세간 출세간에 남고 모자람 없도다
내가 이 게를 지어 증명하니
사성육범이 모두 놀라는구나
놀랄 것 없다.
파란눈이 오랑캐는 아직 깨닫지 못했느니라.
그리하여 묘총은 입실(入室)하게 되었는데 대혜선사가 물었다.
“지금 온 이 스님은 오직 그대만을 상대하는데 한 번 말해 보아라. 노승이 무엇 때문에 그를 인정하지 않았겠느야?”
“어찌 저를 의심하십니까?”
대혜선사가 죽비를 들고 말하였다.
“그대는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겠느냐?”
“아이고! 아이고!”
대혜선사 갑자기 때리자 묘총이 말하였다.
“스님을 뒷날 사람을 잘못 때렸다 할 때가 있을 겁니다.”
“때렸으면 그만이지 잘못이고 아니고가 무슨 상관인가?”
“이 법을 펴는 데 전념하겠습니다.”
하루는 묘총이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묘희선사가 물었다.
“그대가 산을 내려가다가 누가 이곳의 법도를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경산에 와 본 다음에는 어떤가?”
“이른 봄은 아직도 춥더라고 말하지요.”
“그렇게 대답하면 나를 얕보는 것이 아닌가?”
묘총은 귀를 막고 떠나버렸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대중이 그를 칭찬하여 세상에 무착이란 이름이 유명해졌다. 그는 오랫동안 숨어 살다가 마침내 승복을 입었다. 선사는 나이와 덕망이 높았으나 몹시 엄하게 계율을 지켰고 고행과 절도로 스스로를 격려하여 옛 고승의 면모가 있었다. 태수 장안국이 선사의 도와 덕망을 높이 사서 자수사 주지를 맡아 세상에 나가도록 명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주지를 그만두고 노년을 집에 돌아가서 보냈다.
이암 권선사는 임암부 창화현사람으로 기씨 자손이다. 어려서부터 몸가짐이 무게가 있고 의젓하여 어른 같더니, 14세에 출가하여 불교뿐 아니라 다른 학문에도 통달하고, 무암 전 선사에게 귀의하였다. 거기서 매우 열심히 공부 했는데 하루 해가 저물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며 “오늘도 이렇게 시감만 보냈고 내일 공부도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구나!”하였다. 선사가 대중 속에 있을 때, 사람들과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꼿꼿하게 처신하니 아무도 가까이 하거나 멀리 할 수 없었다. 한번은 밤부터 새벽까지 계속 좌선하는데 죽을 돌리는 사람이 와도 발우 펴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이 손으로 건드리자 깨달아 게를 지었다.
칠흑 같은 곤륜이 낚시대 잡고
낡은 돛대 높이 올리고 쏜살같이 여울 내려가
갈대꽃 그림자 속에서 달구경하다가
눈 먼 거북 덩겨울려 배 위에 실었노라
黑漆崑崙把釣竿 高帆古掛下驚湍
蘆花影裏玗明月 引得盲龜上釣船
무암선사는 기뻐하며 자기와 비슷한 경지라고 하였다. 건도(乾道 :1163~1173)년 간에 세상에 나와 만년사(萬年寺)의 주지로 갔다. 그곳의 공부 많이 한 노스님들도 그의 몸가짐을 보고 그의 법어를 듣고는 모두 팔장을 끼고 심취하였고, 안팎 천명의 대중은 질서 정연하게 마치 관청에 들어가듯 하였다. 선사가 가는 곳마다 대중과 함께 고생하며 수행하니 상서(尙書) 우포(尤覆)가 말하였다.
“주지는 편안히 앉아서 법을 설하면 되는데 어째서 몸소 고행까지 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말법의 비구들은 증상만(增上慢)이 있어서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하면서 제멋대로 합니다. 내가 몸소 실천해도 오히려 따라 오지 않을까 두려운데 하물며 감히 스스로 편하려 할 수 있겠습니까?”
근세에 선림의 모범을 말할 때는 반드시 선사를 첫째로 꼽는다.
동산 연(東山淵)선사는 하는 일이나 행동이 단정하고 결백하기로 총림에 알려졌다. 선사가 동산사에서 오봉사(五峰寺)로 옮겨왔을 때였다. 부젓가락을 보니 동산사에서 쓰던 것과 다르지 않아 마침내 몸종에게 따져 물었다.
“이것은 동산사 방장실의 물건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여기나 저기나 절집에서 쓰는 물건이라 이해를 따지지 않고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연선사가 타일렀다.
“무지한 너희들이 인과법에 ‘섞어 쓰는 죄따用罪’가 있는 줄을 어찌 알겠느냐?”
그리고는 급히 돌려보냈다.
별봉 인(別뿔寶印 : 1109~119이선사가 설두산(雪頭山)에 주지할 때였다. 제자 하나가 수좌의 허물을 일러바치자 성이 나서 큰소리로 말하였다.
“너는 나의 제자로 아래 ·윗사람들을 감싸줘야 할 처지에 도리어 남의 허물을 이야기 하느냐?
곁에 두었다간 반드시 내 일을 망치겠다.”
그리고는 주장자로 때려서 내쫓았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명석하냐고 감탄하였다
단하순(판露子請 :1064~1117)선사는 검주(劍州) 사람이다. 단하산에 주지할 때 굉지(宏智正覺)선사가 시자로 있었는데, 그는 요사채에서 한스님과 공인을 따져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었다. 그때 마침 단하선사가 그 방문 앞을 지나갔는데, 밤이 되어 핑지선사가 참문 할 때 단하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아까 어째서 크게 웃었는가?”
“한 스님과 화두를 따져보다가 그의 대답이 너무 서툴러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그대의 웃음소리 하나에 많은 좋은 일을 잃게 되었다. 옛 말을 듣지 못했느냐? 잠시라도 정신이 구도에 있지 않으면 죽은 사람과 같다 하였다.”
핑지선사는 공경히 절하고 승복하였으며 그 후에는 어두운 방 속에 있을 때라도 감히 한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성도(成都) 소각사(昭覺츄)의 조수좌(祖首座)는 오랜동안 원오(圓橋)선사에게 공부하였다. 방장실에 들어가 ‘마음이 부처다’한 말을 묻고, 여기서 깨달은 바 있어 원오스님이 분좌(分座)하도록 명하였다.
하루는 대중을 위해 대중방에 들어가 한 스님에게 물었다.
“생사가 닥쳐오면 어떻게 피하겠느냐?”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불자를 집어 던지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대중들이 깜짝 놀라 바라보다가 급히 원오선사에게 알리니 원오선사가 와서 “조수좌!”하고 불렀다. 조수화가 다시 눈을 뜨자 원오스님이 “정신차리고 관문을 뚫어라” 하니 다시 머리를 끄덕끄덕 하고는 드디어 영원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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