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정로
견성이 곧 성불이다(見性佛)
견성을 하면 즉시 구경의 무심경계가 나타나서 약과 병이 모두 없어지고 가르침(敎)과 수행(斷)을 함께 쉬게 된다.
진여지혜(數轉賽)의 무한한 광명은 항상 법계를 비추어 빛나지만 중생은 세 가지 미세한 망상〔三細〕*과 여섯 가지 거친 망상(六劃)인 무명의 어두운 구름이 가라고 있어 이를 보지 못한다. 하늘에 구름이 없어지면 푸른 하늘이 드러나 밝은 해를 보는 것과 같이 삼세의 극히 미세한 망념까지 남김없이 다 없애면 확철히 크게 깨쳐 진여인 본래 성품을 환히 본다. 그리하여 일체망념이 끊어져 없으므로 이를 무념(無念) 또는 무심(無心)이라 부르니 곧 남음 없는 열반이며 묘각(妙覺)이다.
그러므로 「기신론(起信論)」*에서 “견성은 미세함을 완전히 여윈 구경각(究竟覺)”이라 하였으며, 원효스님과 현수(賢首)스님도 그들의 기신론에서 “금강(金剛) 이하의 모든 중생은 무명의 생각이 없어지지 못했다”고 하였고, 또한 “부처지위는 무념이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금강유정(金剛兪定) 즉 등각(等覺) 이하의 일체중생은 망념과 생각이 남아 있어 등각도 부처님의 거룩한 가르침과 법의 약이 필요하다. 약과 병이 모두 없어지고 가르침과 수행이 함께 쉬어버린 무념과 무심은 무명이 영원히 없어져서 자기의 본성을 철저히 본 묘각뿐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모든 법을 말하심은 모든 마음을 제도하기 위함이다. 나는 모든 마음이 없으니 어찌 모든 법이 필요하리오”라고 하였으니, 과연 그렇다. 여러 부처님의 모든 법문은 중생의 온갖 병을 치유하기 위한 약의 처방이다.
병 없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죽은 사랍을 살릴 만한 신비한 처방의 묘약도 필요없는 것과 같이 범부심 ·외도심 ·현성심 ·보살심 등 한없는 중생의 본래 병인 일체의 생각과 망념을 모두 벗어난 구경무심지(究竟無心地)의 대해탈인에게순 아무리 심오하고 오묘한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이나 수행도 소용없다.
그리하여 법의 약과 중생의 병이 함께 없어져고, 거룩한 가르침과 오묘한 수행을 함께 쉬는 구경무심지만이 견성이다. 이것이 가장 높고 큰 도를 철저히 증득하여 배움이 끊기고 하릴없는 한가로운 도인의 마음의 경계이다.
「능가경」 게송에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천인과 범천이 타는 것〔乘〕과 성문 연각이 타는 것과 모든 부처님인 여래가 타는 것이 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타는 것은 유심(有心) 가운데서 굴러 변한 것이므로 모든 타는 것은 구경무심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만약 그 여러 종류의 유심이 다 없어지면, 모든 타는 것과 그 타는 것을 의지하는 타는 이도 없어서 타는 것이라는 이름조차도 세울 수 없는 대무심지이다. 이는 모든 타는 것을 초월한 오직 일승(一乘)이지만 중생을 인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분별하여 여러 타는 것을 말한다.
천인이 타는 것과 범천이 타는 것과 성문이 타는것과 연각이 타는것등을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부처님이 타는 것도 유심 가운데 굴러 변한 것이어서 구경이 아니다. 모든 부처님들이 타는 것까지도 모두 없어져 버린 무여열반안 구경무심이 즉 견성이다.
이것은 방편상 일승이라고 부르지만 이 일승은 삼승과 상대적인 일승이 아니라 모든 부처님의 여래승까지도 초월하여 ‘모든 타는 것〔乘〕과 그 타는 것을 의지하는 타는 사람〔乘者〕’도 없는 최상승 깊고 깊은 현묘한 경계인 대무심지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옛스님이 말하였다. 한 점 티끌이 눈을 덮으니 일천 가지 헛꽃이 어지러이 흩날리고, 한 가닥 망념이 마음 가운데 일어나니 항하의 모래 같은 생멸심이 생긴다. 눈의 티끌을 없애니 헛꽃이 다 없어지고 망념이 영영 없어져서 참 성품을 증득하니 천 가지 병이 나아서 만 가지 약을 물리치고 망념의 얼음덩이가 다 녹아서 참 성품의 깊은 물이 흘러 통한다. 신령한 불사약을 아홉 차례 달구니 무쇠가 녹아서 진금으로 바뀌고 자극히 묘한 이치는 한 마디 반 구절로 범부를 바꾸어 성인으로 만든다. 미쳐 날뛰는 허망한 마음을 쉬지 못하다가 쉬어버리니 가장 높은 보리요, 현묘한 거울이 청정하여 본래 마음이 환히 드러나니 본래 크게 깨친 세존이니라.
삼세육추의 모든 망념이 완전히 다 소멸되고 항상하여 변함없는 진여본성을 활연히 증득하니 이것이 곧 망념을 없애고 진여를 증득한 구경무심인 견성이다. 병이 나아서 약마저도 버리고 아무 일도 없고 할 것도 없는 크게 해탈한 사람은 얼음이 녹아 물 맑은 진여본성의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니 천상과 인간세상에서 비할 데 없이 홀로 높이 크게 깨친 여래이며, 인도와 이 땅에서 법의 등불을 서로 전한 바른 안목을 갖춘 큰스님이다.
이상이란 견성이란 망상을 없애고 진여를 증득함이며, 약과 병이 모두 없어지고 가르침과 수행을 함께 쉬어버림이며, 모든 부처님이 타는 것까지 다 없어진 무여열반이며, 구경 대무심지임이 분명하고 확실하다.
「종경록(宗鏡錄)」의 저자인 영명 연수(永明延壽)선사는 부처와 조사를 정통으로 전한 대법안(大法眼:법안 문익)선사의 3세 적손이다. 임제(臨濟)의 정통법맥인 중봉선사는 “고금을 통해서 천하의 사표는 영명이 아니면 그 누구란 말인가라고 찬탄하였다.「종경록」 100권은 종문의 지침서로서 용수이후 최대 저술로 추앙된다. 회당(廳堂:회당 조심)전사도 역시 엄제정전인 황룡파(黃龍派)의 개조 남선사의 가장 뛰어난 제자로서 불조의 정통법맥으로 천하가 추앙하는 바이다. 그는 항상 「종경록」을 아끼고 소중히 여겼다.
“보각(寶覺:觸堂)션사가 나이는 많으나 오히려 「종경록」을 손에서 놓지 않고 말하기를 ‘내가 이 책을 늦게 보게 된 것이 한스럽다’라고 하고 그 가운데 요긴한 것을 뽑아서 3권으로 만들고 「명추회요(頁樞賣要)」라고 이름하니 세상에 널리 유통되어 왔다”
이처럼 「종경록」에서 논하고 있는 것은 고금을 통하여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종문안 확정된 견해로 되어 있다.
보살지위의 마지막인 십지(十也)가 다 마치면 수도의 방편이 원만히 갖추어지고 무간도(無間道)인 한 생각에 상응한다. 망심이 최초로 일어나는 생상(生相)을 깨달아서 마음자리에 최초의 상이 전혀 없다. 처음 일어나는 생상인 극히 미세한 망념을 멀리 여의므로 자기 마음의 본래 성품을 꿰뚫어보아 심성이 담연히 항상하니 구경각이라 부른다. --「起信論」
등각인 금강유정에서 근본무명인 극히 미세한 망념올 다 없애면 활연히 크게 깨달아 진여본성을 환히 보니 이것이 구경각인 성불이다. 이처럼 대승불교의 총론이라 할 수 있는 「기신론」에서는 견성이 곧 구경각이며 성불임을 분명히 증명한 것이다.
무명업상(無明業相)의 움직이는 생각이 망념 가운데서도 가장 미세하므로, ‘미세망념’이라고 부른다. 이 미세망념이 전부 없어져서 영원히 그 흔적이 없으므로 ‘영원히 여의었다’고 한다. 이미세망념을 영영 여의었을 때에는 정확히 부처지 위에 머물게 된다. 앞의 세 지위는 미음의 근원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생상이 다 없어지지 않아서 생멸이 끊임없다가 이 지위에 이르러서는 영영 다 없어져서 한 마음의 본래 근원에 돌아가 다시는 일어나고 꺼지는 움직임이 전혀 없으므로 ‘본래 성품을 꿰뚫어 본다고 말한다. 견성을 하면 참마음이 확연히 항상하여 다시는 나아갈 곳이 없으므로 최후인 구경각이라 부른다.
업식(業識)의 움직이는 생각이 가장 미세하므로 미세망념이라고 부르나 생상을 말한다. 이 최초의 생상이 다 없어져서 영영 그 남아 있음이 없기때문에 ‘멀리 여의었다’고 하며, 허망한 헛모양을 벌리 여의었으므로 진여 자성이 꼼 나타나니 그런 까닭에 ‘성품을 본다고 한다. 앞의써 지위에서는 최초의 생상이 다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견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부처지위는 마세망념까지 영원히 없어진 무념이다. -元曉流「賢首義記」
원효스님과 현수스님은 교종에서 권위있는 스님이다. 미세한 무명인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이모두 없어지면 무여열반인 부처지위 즉 구경각이 다. 이것이 무념이며 무심이며 견성임은 불교의 근본원리이므로 원효스님이나 현수스님도 여의가 었을 수 없으며, 「종경록」애서 논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함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리고 ‘앞의 세 지위’라 함은 불각의 십신 (十信)과 상사각(相似覺)의 삼현과 수분각(隨分覺)의 십지를 말한다. 삼현십지가 전부 무명인 업식의 혀깨비와 꿈속에 있으므로 견성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기신론」은 량발심(證發心)에서 무분별지를 얻으므로 진여라고 거짓이름하지만, 업식의 마음이 미세하게 일어나고 꺼지며 무명아 다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견성이 아니다.
십지의 모든 현인(성인)들이 설법하기는 구름일듯하고 비가 오듯하여도, 견성함에 있어서는 앓은 비단을 가린 것과 같다.
분주와 운문(雲門)은 삼학(三學)에 통달하고 또 뛰어난 바른 안목을 갖춘 분이다. 십지보살도 견성을 하지 못했다 함은 분주·운문뿐만 아나라 종문정전의 공통된 원칙이니, 구경각인 여래지만 이 견성인 까닭이다.종문에서 말하는 십지는 권교(權敎)의 십지가 아니라 일승의 십지이다. 십지 이후에 아뢰야식의 미세한 망상을 영원히 끊어야만 견성이라고 하니,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것 같으나 화두공부가 꿈속에서도 한결같이 되면 「화엄경」에서 말하는 7지이고, 또 깊은 잠속에서도 한결 같으면 아뢰야식의 미세망상 가운데 자재한 보살지위이다.
선문에서 바른 안목을 갖춘 큰스님 중에서 숙면일여를 뚫고 지나가지 않고서 견성했다고 말한 사람은 없다. 이는 구경각을 성취한 까닭이니 오매일여(鷹媒一如)편에서 자세히 말한다.
마치 눈 뜬 사람이 앓은 비단을 가리고서 모든 물건을 보는 것과 같이 구경지보살도 일체 경계에 있어서 이와 같으며, 마치 눈 밝은 사람이 가림이 없이 모든 물건을 보는 것과 같이 여래도 모든 경계에 있어서 이와 같다. 눈 밝은 사람이 어두 컴컴한 데서 모든 물건을 보는 것처럼 구경지보살도 이와 같으며, 눈 밝은 사람이 모든 어둠을 떠나서 여러 물건을 보는 것처럼 여래도 이와 같느니라.
구경지보살과 등각보살은 아뢰야식 미세망념이 남아 있어 이것이 자성을 덮어서 모든 경계에 환히 밝지 못하니 마치 앓은 비단으로 눈을 가린 듯하며 또 어둠 속에서 물건올 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따라서 불성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명료하지 못하므로 부처와 조사는 “십지보살도 견성함에 있어서는 앓은 비단을 가린 것 같고, 어둠속에서 물건을 보는 것 같다”고 꾸짖었다.
이 미세한 망념이 모두 없어지고 마음의 눈이 크게 열리면 앓은 비단과 어둠올 영원히 여왼 일승의 부처지위〔佛界〕를 성취하여 모든 경계에 환히 밝으므로 「열반경」에서는 “여래가 불성을 봄은 대낮에 물건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는 “보살지가 다 끝나고 미세망념을 완전히 여의면 마음의 본래 성품을 보게 되니 구경각이라고 한다”는 「기신론」에서 말한 것과 같은 내용이다. 앓은 비단으로 가린 듯하거나 희미한 어둠속에서 물건을 보는 것은 바르게 본 것이 아니므로 부처와 조사를 바로 전한 분들은 견성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제8마계(第八魔界)라 하여 끝까지 배격하였다.
이와 같이 구경지보살도 견성함이 아니니 그 나머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불교에서 만대의 표준이 되는 「기신론」과 「유가론」에서 구경지보살도 견성하지 못했다고 하는 원칙에서는 일숭의 부처과위 이외의 견성설은 단연코 용인할 수 없다.
번뇌가 나지 않음이란 곧 부처성품을 바로 보며, 부처성품을 바로 봄으로 대열반에 안주하니 이를 나지 않음〔不生〕이라 한다.
번뇌가 나지 않음이란 곧 남이 없음(無生) 이니, 미세한 번뇌망상까지 모두 없어진 대무심지이다. 대열반은 무심한 경지인 무여열반이니 곧 구경각이다. 그러므로 견성이란 곧 무심이요, 구경각이며 대열반연 것이다.
* 삼세 : 군본무명에서 일어나는 세 가지 망상.
* 육추 : 현상의 경계에서 생기는 여섯 가지 망상.
* 기신론 : 대승불교의 총론이라고 할 수 있는 논서로서 4~5세기경에 마명(勳劇)이 지었다고 한다.
* 제8아뢰야식 :유식학에서는 식(議)을 모두 8가지로 나눈다. 즉 안·이 ·비 ·설 ·식의 다섯 가지 식과 이를 총괄하는 의식(意識:제6식), 그리고 잠재의식인 제7식, 무의식인 제8식이다. 제8식은 모든 것을 다 간직한다고 하여 아뢰야식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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