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산록(仰山錄)

앙산록 7

通達無我法者 2008. 2. 15. 10:03

61.

스님께서 눈을 감은 채 앉아계신데 한 스님이 가만히 곁에 와 섰다. 스님은 눈을 뜨시더니 땅 위에다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는 그속에 수(水)자를 쓴 뒤에 그 스님을 되돌아보았으나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62.

스님께서 주장자를 하나 짚고 다니시는 것을 보고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스님은 얼른 등 뒤로 숨기시면서 "보이느냐?" 하니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63.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무엇을 할 줄 아느냐?"

"점을 칠 줄 압니다."

스님은 불자를 번쩍 세우시며 말씀하셨다.

"이것은 64괘(卦) 중에서 어느 괘에 해당되는가?"

그 스님이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조금 전엔 뇌천대장괘(雷天大壯卦:길한 괘)이더니 지금은 지화명이괘(地火明夷卦:흉한 괘)로 변했구나."

64.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이름이 무엇이냐?"

"영통(靈通:영험한 신통이라는 뜻)입니다."

"등롱(燈籠) 속으로 들어가 보아라."

"벌써 들어와 있는걸요."

* 법안(法眼)스님은 말하였다.

"무엇을 등롱이라 하는가?"

65.

한 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물질〔色〕을 보는 그것이 마음을 보는 것이다' 하였읍니다. 선상(禪滅)은 물질입니다. 스님께서는 물질을 떠나서 저의 마음을 지적해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이 되물었다.

"어느 것이 선상인지 가리켜 보아라."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 현각스님은 말하였다.

"홀연히 그가 선상(禪滅)을 가리켰다면 어떻게 대꾸해야 하겠는가?"

그러자 어떤 스님이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하니, 현각스님은 대답 대신에 손뼉을 세 번 쳤다.

66.

한 스님이 묻기를

"누가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스승입니까?" 하자 스님은 그를 꾸짖으셨다. 그 스님이 다시 "누가 스님의 스승입니까?" 하니 스님은 "무례하게 굴지 말라."고 하셨다.

67.

스님께서 한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곁에 있던 스님이 말하였다.

"말 하면 문수이고, 묵묵히 있으면 유마힐입니다."

"말하지도 않고, 묵묵하지도 않음은 네가 아니냐…."

그 스님이 묵묵히 있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왜 신통을 나타내지 않느냐?"

"신통을 나타내는 것이야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스님께서 교학에 빠져들까 염려스러울 뿐입니다."

"그대가 하는 짓을 살펴보니 교학 바깥 경계를 볼 안목이 없구나."

68.

한 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천당과 지옥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스님은 주장자로 땅에다 휙 그으셨다.

69.

스님께서 관음원(觀踵院)에 계실 때 다음과 같은 벽보〔〕를 거셨다.

"내가 경을 보는 동안에는 아무도 문안인사를 오지 말라."

어떤 스님이 문안을 드리러 왔다가 스님께서 경을 보시는 것을 보고는 곁에 서서 기다리자 스님은 보던 경을 덮으시며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저는 경을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겠읍니까?"

"차차 알게 될 것이다."

그 스님이 암두스님의 처소에 이르렀는데 암두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강서(江西)의 관음원에서 옵니다."

"스님께선 요즈음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그 스님이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암두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이 케케묵은 종이에 매몰당했다고 말해주려 했더니 그렇지는 않았군."

70.

사익(思)스님이 물었다.

"선종(禪宗)에서 단박 깨달아〔頓悟〕 완전한 경지에 든다고 하는 이치가 무엇입니까?"

"이 이치는 지극히 어렵다. 조종문하(祖宗門下)의 상근상지(上根上智)라면 하나를 듣고 천을 알아 대법문을 깨닫겠지만 근기가 미약하고 지혜가 얕은 이들은 선(禪)을 닦지 않거나 생각을 고요히 하지 않으면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조리 아득해진다."

"이 방법 말고 또다른 방편이 있읍니까?"

"있지."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유주(幽州) 사람입니다."

"그 곳의 일을 생각한 적이 있느냐?"

"항상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주체는 마음이며, 생각되어지는 대상은 경계이다. 그곳에는 누각과 술과 사람과 말 따위가 들끊는데 그대는 그 생각하는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보라. 앞에 이야기한 그 많은 경계들이 있느냐?"

"이 경계에서는 모조리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알음알이가 남아 있으니 믿음의 경지〔信位〕까지는 갔으나 깨달음의 경지〔人位〕는 얻지 못했다."

"이것 밖에 다른 뜻이 있는지요?"

"다른 뜻이 있거나 없거나 그대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대가 이해한 정도는 단지 현묘함만을 얻었을 뿐이니 자리를 잡고 앉아 옷을 풀어헤치면 뒷날 저절로 알게 되리라."

사익스님은 절을 하고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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