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산록(仰山錄)

앙산록 8

通達無我法者 2008. 2. 15. 10:07

71.

한 스님이 물었다.

"대이 삼장(大耳三藏)이 세번째에는 무엇 때문에 혜충(慧忠)국사를 보지 못하였을까요?"*

"앞의 두 차례는 경계에 빠졌기 때문이며, 뒤에는 자수용삼매(自受用三昧:깨치고 나서 스스로 법락을 누리는 경계)에 들어갔기 때문에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72.

위산스님께서 스님에게 물으셨다.

"백장(百丈)스님이 두번째 마조(馬祖)스님을 참례한 인연*에서 이 두 큰스님의 뜻은 무엇이겠는가?"

"큰 본체와 그 작용〔大機大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럼 마조스님이 84명의 선지식을 배출하였는데 몇 사람이 대기를 얻고 몇 사람이 대용을 얻었겠느냐?"

"백장스님은 본체를 얻었고 황벽(黃)스님은 작용을 얻었으며, 나머지는 모조리 남의 말이나 읊조리는 창도사(唱導師)들이었읍니다."

위산스님은 "그래, 그렇지" 하셨다.

73.

위산스님께서 백장스님의 야호화두(野狐話頭)를 들려주고는〔擧揚〕스님에게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황벽스님은 항상 이 기연을 사용하셨읍니다."

"그것을 날 때부터 얻었느냐, 배워서 얻었느냐?"

"스승께 받기도 하였고, 자성(自性)으로 종지를 깨치기도 하였읍니다."

그러자 위산스님은, "그렇지, 그렇네" 하셨다.

74.

백장스님이 황벽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대웅산(大雄山) 밑에서 버섯을 따옵니다."

"호랑이를 보았느냐?"

황벽스님이 어흥, 소리를 내자 백장스님은 도끼를 들고 찍는 시늉을 하였다. 황벽스님이 백장스님을 한 대 후려치자, 끙끙 신음하다가 웃고는 돌아가 큰방에 올라가서 대중에게 말하였다.

"대웅산 밑에 큰 호랑이가 한 마리 있으니 그대들은 살펴다니라. 나도 오늘 된통 한 차례 물렸느니라."

이 기연을 들려주고는 위산스님께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떠한가?"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백장스님이 그때 그 자리에서 도끼 한 방에 찍어 죽었다면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백장스님은 호랑이의 머리만 탈 줄 알았을 뿐, 꼬리를 붙잡을 줄은 몰랐읍니다."

"그대는 말이 좀 험악하구먼."

75.

남전스님이 황벽스님에게 물었다.

"정(定)과 혜(慧)를 균등하게 배워 불성을 분명히 본다고 한 이 이치는 무엇인가?"

"하루종일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그런 경계를 보았는가?"

"감히 그렇겠읍니까."

"물〔獎水〕값은 우선 그만두고라도 짚신값은 누구에게 받지?"

황벽스님은 그만두어 버렸다.

이 기연에 대해 위산스님께서 스님에게 물으셨다.

"황벽스님이 남전스님을 붙들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습니다. 황벽스님에겐 호랑이를 사로잡는 덫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대의 견처가 이렇게나 자랐다니…."

76.

황벽스님이 남전스님의 처소에서 수좌(首座)가 되었다. 하루는 발우를 들고 남전스님의 자리에 앉았는데, 남전스님이 큰방에 들어가 보더니 물었다.

"장로는 언제적에 도를 닦았는가?"

"위음왕불(威踵王佛) 이전입니다."

"그래도 이 남전의 손자뻘이 되는군."

황벽스님이 곧 두번째 자리로 가서 앉자 남전스님은 거기서 그만두었다.

이 기연에 대해서 위산스님은 말씀하셨다.

"적을 속이는 자는 망한다. 자! 말해보라."

앙산스님이 "그렇지 않습니다. 황벽스님에겐 호랑이를 사로잡는 덫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자 위산스님은 "그대의 견처가 이렇게나 자랐군" 하였다.

77.

황벽스님이 시중(示衆)하였다.

"그대들은 모조리 술찌꺼기나 먹는 놈들이다. 이처럼 수행하다간 어찌 다시 오늘을 맞겠는가! 이 큰 나라에 선사가 없는 줄을 아느냐!"

이때에 어떤 스님이 말하였다.

"제방에서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대중을 거느리는데 이것은 무엇입니까?"

"선(禪)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스승이 없을 뿐이다."

이런 기연에 대해 위산스님께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위 왕은 우유만을 골라 먹으니 아예 기러기 따위와는 비교도 안됩니다."

"그것은 정말로 가려내기 어려운 일이다."

* 위산스님과 앙산스님의 두 스승과 상좌가 북치고 노래한 기연(機緣)을 말로 다 하자면 많다. 『임제록(臨濟錄)』에 실려 있는 것은 여기에 거듭 수록하지 않는다.

78.

할()상좌가 백장스님의 처소에 도달하자 스님은 말하였다.

"그대는 일이나 물건을 놓고 그것을 통해 물으려는가."

"말이 아니었다면 어찌 갈피를 잡을 수 있겠읍니까?"

"안남(安南)을 수습하더니 이제는 북쪽 변방을 근심하는군."

그러자 할상좌는 가슴을 열어제치고 말하였다.

"이렇습니까, 이렇지 않습니까?"

"참으로 붙들기 어렵군."

"알면 됐읍니다. 알면 됐읍니다."

이 기연에 대해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두 사람의 귀결점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하다 하겠지만, 분별하지 못하면 대낮에 길을 잃은 격이다."

79.

오봉(五峰)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들에서 옵니다."

"소를 보았느냐?"

"보았읍니다."

"왼쪽 뿔을 보았느냐, 오른쪽 뿔을 보았느냐?"

그 스님이 대꾸가 없자 오봉스님이 대신 "보는 데는 좌우가 없다" 라고 하였다.

이 기연에 대해 스님께서 달리 말씀하셨다.

"어찌 좌우를 분별하느냐!"

80.

한 행자(行者)가 법사를 따라서 법당으로 들어갔는데 행자가 부처님에게 침을 뱉자 법사는 말하였다.

"행자는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부처님께 침을 뱉느냐?"

"부처님이 없는 곳을 말해 보시오. 그러면 그곳에다 침을 뱉겠읍니다."

법사가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

이 일에 대해 위산스님은 말씀하셨다.

"어진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고, 나쁜 사람이 도리어 어진 사람이 되었군."

스님은 법사를 대신하여 "행자에게 침을 뱉아라!" 하시고는 다시 "행자가 말을 하는 순간 이렇게 말해주리라. 나에게 행자(行者)가 없는 곳이 어디인지를 말해 보라고."하였다.

81.

스님은 기연(機緣)에 따라 지도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여 종문의 표준이 되셨다. 입적하시려고 동평산(東平山)으로 돌아가셨는데 임종에 앞서 몇분 스님이 모시고 서 있자 스님은 게송으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반듯한 눈이 다시 쳐들고 살핀다

두 입 한결같이 혀 없는 것이

바로 나의 종지이다.

一二二三子 平目復仰視

兩口一無舌 卽是吾宗旨

정오가 되자 법좌에 오르시어 대중을 하직하면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이 일흔 일곱이 되도록

덧없이 오늘까지 살았네

둥근 해는 한 가운데 떴는데

두 손으로 굽은 무릎 잡아보네.

年滿七十七 無常在今日

日輪正當午 兩手攀屈膝

말이 끝나자 두 손으로 무릎을 안고 임종하셨다.

그 이듬해에 남탑 광용(南塔光涌)스님이 영골(靈骨)을 옮겨 앙산으로 돌아가서 집운봉(集雲峯) 기슭에 탑을 세웠다. 시호는 지통(智通)선사이고 탑호는 묘광(妙光)이라 하였다.

* 통(通)스님:선가에서는 이 스님을 말수가 적은 분이라 하여 말 안하는 통스님〔不語通〕이라고 한다.

* 탐원(耽源)스님:생몰연대는 불확실하나 남양 혜충(慧忠) 스님의 시자로서, 원상(圓相)에 대해 주로 공부했다고 한다.

* 직세(直歲):한해 동안의 모든 일을 맡아 보는 소임.

* 노주(露柱):절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장엄구.

* 백추(白槌):선방에서 개당(開堂)할 적에 추(椎)를 쳐서 대중에게 알리는 것.

* 당(唐)나라는 이연(李淵)이 건국했다.

* 사계(謝戒):선림에서 사미가 득도수계한 뒤에 스승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절을 올리는 것.

* 광전절후(光前絶後):고금(古今)을 초월하여 빼어난 상태를 말한다.

* 구고(九皐):깊은 연못.

* 누지(婁至)는 법어로 운다는 뜻. 누지불은 현겁의 마지막에 성불하여 생사 속에서 불법을 지키고 펴나간다는 부처님. 여기서는 우는 시늉을 했다는 말이다.

* 인도 대이(大耳)삼장이 장안에 왔는데 타심통(他心通)을 얻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왕이 혜충국사에게 시험해보라고 하여 국사가 삼장에게 물었다. "타심통을 얻었다니 정말이오?" "부끄럽소." "그렇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해 보시오." "스님께선 한 나라의 국사가 되어 가지고 어찌 인도에 가서 뱃놀이를 구경하십니까?" 국사가 잠자코 있다가 다시 물었다. "지금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보시오." "스님께선 한 나라의 국사가 되어 어째서 천진교(天津橋)에 가서 원숭이 놀음을 구경하십니까?" 국사가 세번째 같은 질문을 던지니 삼장이 어쩔 줄 몰랐다. 국사가 "이 여우 같은 혼신아, 타심통이 무슨 말이냐" 하고 꾸짖자 삼장은 말이 없었다.

* 백장스님이 두번째로 마조스님을 뵈니 마조스님이 불자(拂子)를 세웠다. 백장스님이 "이것을 통해서 활용하오리까. 이것을 떠나서 활용하오리까?"하고 물으니 마조스님은 불자를 제자리에 세워 두었다. 백장스님이 잠자코 있으니 마조스님이 "그대는 뒷날 무엇으로 중생들에게 설법하려는가?"하니 백장스님이 불자를 세웠다. 마조스님이 "이것을 통해서 하겠느냐, 이것을 떠나서 하겠느냐?"하니 백장스님도 그것을 제자리에 세워 두었다. 그러자 마조스님이 벼락같이 할(喝)을 하니 백장스님은 사흘간 귀가 먹었다.

ㅡ終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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